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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월街 골드만삭스 사로잡은 18년 우유 배달 이야기

중앙일보 2020.05.21 17:19
사단법인 후원자에게 제공하는 기념품을 들고 있는 호용한 목사. 문희철 기자

사단법인 후원자에게 제공하는 기념품을 들고 있는 호용한 목사. 문희철 기자

호용한 이사장 인터뷰

 
"10만 달러(약 1억2300만원)를 보조할 수 있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20일 오전 7시 호용한(61) 서울 옥수중앙교회 목사는 새벽 예배를 마치고 서울 성동구 교회 본당 4층 집무실에서 컴퓨터를 켰다. 20일 00시 14분에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가 미국서 발송한 e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구호의 일환으로 자선펀드 골드만삭스 기브즈(Goldman Sachs Gives)가 우유 배달 사업에 10만 달러를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다. 한국에선 호용한 목사와 삼성서울병원 단 2곳만 지원대상이다.
20일 새벽 호용한 옥수중앙교회 목사가 골드만삭스로 부터 받은 e메일. 문희철 기자

20일 새벽 호용한 옥수중앙교회 목사가 골드만삭스로 부터 받은 e메일. 문희철 기자

미국 월가의 글로벌 금융기관은 왜 금호동 산중턱 600여명이 다니는 작은 교회의 호 목사를 지원하기로 했을까. 호 목사가 사단법인 '어르신의안부를묻는우유배달'의 이사장이라서다.   
 
이 단체는 독거노인에게 매일 아침 우유를 배달한다. 독거노인의 신변에 이상이 없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우유 배달원이 전날 배달한 우유를 독거노인이 수령하지 않은 경우 즉시 주민센터 사회복지 담당자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연락을 받은 주민센터는 미리 구축해둔 보호자·자녀에게 연락해 문제가 없는지 확인한다. 만약 세상과 단절해 혼자 사는 노인이 아프거나 쓸쓸하게 숨을 거뒀다면 24시간 이내에 이를 인지할 수 있다. 우유가 고독사를 방지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호 목사는 “우유를 통해 독거노인의 안부를 묻고 희망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본지와 인터뷰하는 호용한 목사. 그는 2000여명의 독거노인에게 우유를 배달하는 단체의 이사장이다. 문희철 기자

본지와 인터뷰하는 호용한 목사. 그는 2000여명의 독거노인에게 우유를 배달하는 단체의 이사장이다. 문희철 기자

홀아비 고독사 막는 메신저…우유

호 목사는 2001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옥수중앙교회에 부임했다. 당시 옥수동·금호동은 일용직 근로자가 주로 살던 달동네였다고 호 목사는 기억한다. 가파른 산중턱에 있어 골다공증과 영양 부족에 시달리는 주민들을 볼 때마다 칼슘이 풍부한 우유를 챙겨주고 싶었다.
 
2003년 드디어 기회가 왔다. 처남 임현순 마카스시스템 대표가 3년간 후원을 약속했다. 180mL 우유 한 팩을 한 달 동안 배달하려면 한 명당 2만1000원이 들었다(2003년 기준). 100명이면 210만원이었다. 매달 딱 210만원을 받아 정확히 100명에게 매일 우유를 배달했다.
 
임 대표가 약속한 3년이 지나 이번엔 옥수중앙교회 교인들이 바턴을 이어받았다. 25명의 성도가 매달 각각 10만원씩 6년 동안 갹출했다.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 배달 협약식에 참가한 김봉진 배달의민족 창업자(가운데)와 호용한 옥수중앙교회 목사(오른쪽). 사진 옥수중앙교회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 배달 협약식에 참가한 김봉진 배달의민족 창업자(가운데)와 호용한 옥수중앙교회 목사(오른쪽). 사진 옥수중앙교회

2011년엔 이 '우유 계주’에서 25명의 후원금을 한꺼번에 짊어지고 뛰겠다고 자청한 집사가 나타났다. 국내 최대 배달 애플리케이션 배달의민족을 창업한 김봉진(44) 우아딜리버리히어로아시아 회장이다. 어린 시절부터 이 교회에 다닌 김 회장은 25인의 후원자를 보면서 “언젠가 사업에 성공해서 우유 배달 비용을 다 책임지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사업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사이 "사업만 7번 말아먹은 걸로" 호 목사는 기억한다. 호 목사는 “김봉진 회장이 신규 사업을 할 때마다 개업 예배를 드렸다”며 “갈 때마다 ‘또 망했냐?’고 물었더니 ‘할 수 없죠’라며 민망하게 웃더라”고 말했다.
 
김봉진 회장이 8번째로 손댄 사업이 바로 배달의민족이었다. “김 회장이 우유 배달을 좋아해서 사명도 배달의민족으로 결정했다”고 말한 걸로 호 목사는 들었다.
 
창업 6개월차 적자 벤처기업 창업자가 호기롭게 월 500만원을 후원하겠다고 큰소리치자 걱정이 앞섰다. 호 목사는 “7번 망한 사람이 8번째는 성공할까 싶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김봉진 회장은 지금까지 7년째 약속을 지키고 있다. 후원금도 2배로 늘렸다(월 1000만원). 덕분에 우유를 매일 마시는 독거 노인도 250명으로 늘었다.
호용한 목사의 명함도 김봉진 배달의민족 창업자가 재능기부 차원에서 디자인했다. 문희철 기자

호용한 목사의 명함도 김봉진 배달의민족 창업자가 재능기부 차원에서 디자인했다. 문희철 기자

릴레이 후원에 100명에게 우유 배달

매일유업 소화가 잘 되는 우유. 제품 좌측 상단에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 배달'이라고 적혀있다. 문희철 기자

매일유업 소화가 잘 되는 우유. 제품 좌측 상단에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 배달'이라고 적혀있다. 문희철 기자

당시 한 번도 흑자를 못 낸 벤처기업이 매달 꾸준히 기부를 한다는 사실은 투자자 입장에선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배달의민족에 3600만 달러(440억원)를 투자한 골드만삭스가 그랬다. 골드만삭스는 2012년 감사에 착수했다. 아시아를 담당하는 홍콩 본사에서 2명을 파견해 이들이 교회까지 찾아왔다. 
 
호 목사는 “영어를 막 쓰는 까만 머리 외국인 2명이 왔었다”며 “독거노인에게 우유를 배달하는 모습을 확인하고 감동했다”고 말했다. 그들이 떠나고 며칠 후 골드만삭스는 우유 배달에 써달라며 15만 달러(1억8500만원)를 기탁했다.
 
이 돈으로 호 목사는 사단법인 어르신의안부를묻는우유배달을 설립했다. 사단법인 출범 후 체계적인 배달 시스템도 갖췄다. 연간 1억원을 부담하는 최대 후원자 매일유업을 비롯해 20개 기업과 500여명의 개인 기부자가 후원한다. 덕분에 서울시 16개구 2000여명의 독거노인은 오늘도 매일 아침 신선한 우유를 받는다. 이번에 골드만삭스가 추가로 약속한 기부금을 받으면, 현재 우유를 배달하지 않는 서울시 4개구에서 600명에게 추가로 우유를 배달할 계획이다.
서울 옥수동 극동그린임대아파트에 배달 중인 우유. 사진 옥수중앙교회

서울 옥수동 극동그린임대아파트에 배달 중인 우유. 사진 옥수중앙교회

김봉진 회장 ‘형이 거기서 왜 나와’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인 정의기억연대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하면서 후원을 꺼리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골드만삭스로부터 제법 큰 규모의 기부를 받은 데 대해 호 목사는 “공익사업을 하는 단체도 정직한 회계 관리와 투명한 사업절차 공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호 목사는 사단법인 이사장이지만 사단법인에선 월급을 한 푼도 안 받는다. 지난해 공인법인 결산서류에 따르면, 이 단체가 공시한 지난해 지출 항목은 딱 3개다. 간사 인건비(한 달 80만원)와 업무용 노트북 구매비(2개), 그리고 우유 구매비가 전부다. 우유 배달 대상자 선정 과정도 투명하다. 구청에 전적으로 맡긴다. 교회는 물론 후원사도 전혀 압력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호용한 목사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정부가 관리할 수 있지만, 차상위 계층까지 정부가 모두 관리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가 우유를 배달한다”며 “풀뿌리처럼 전국에 산재한 대한민국 교회가 다 함께 나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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