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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범과 형량 같은 민식이법···이 핵심 질문엔 답변 피한 靑

중앙일보 2020.05.21 05:00
김계조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이 20일 청와대 사랑채 스튜디오에서 민식이법 개정과 관련한 국민청원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제공]

김계조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이 20일 청와대 사랑채 스튜디오에서 민식이법 개정과 관련한 국민청원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제공]

이른바 ‘민식이법’의 처벌이 과도하다는 국민청원에 대해 청와대가 “다소 과한 우려일 수 있다”고 20일 답변했다. 지난 3월 ‘민식이 법 개정을 청원합니다’는 제목으로 올라온 국민청원이 35만여명의 동의를 받으면서 이뤄진 답변이다.
 
답변자로 나선 김계조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지난 3월 25일 (민식이법으로 불리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개정 시행된 이후 과잉 처벌이라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기준 이하의 속도를 준수하더라도 사고가 나면 무조건 형사처벌 대상이라는 불안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 본부장은 “현행법에 어린이안전의무 위반을 규정하고 있고, 기존 판례에서도 운전자가 교통사고를 예견할 수 없었거나 사고 발생을 피할 수 없었던 상황인 경우에는 과실이 없다고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현행법과 기존 판례를 감안하면 무조건 형사처벌이라는 주장은 다소 과한 우려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스쿨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숨진 고(故) 김민식 군 어머니 박초희 씨와 아버지 김태양 씨가 지난해 12월 10일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을 나와 스쿨존 내 과속단속 카메라 설치를 의무화하는 이른바 '민식이법'이 통과된 뒤 취재진에게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스쿨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숨진 고(故) 김민식 군 어머니 박초희 씨와 아버지 김태양 씨가 지난해 12월 10일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을 나와 스쿨존 내 과속단속 카메라 설치를 의무화하는 이른바 '민식이법'이 통과된 뒤 취재진에게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22일 만에 처리된 법안

지난해 9월 충남 아산에서 김민식군이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 내 횡단보도를 건너다 차량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다음 달 아산 갑·을이 지역구인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명수 미래통합당 의원은 특정범죄가중법과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스쿨존 내 교통사고 처벌을 강화하고, 스쿨존에 교통안전시설을 설치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법안은 민식군과 같은 사고의 재발을 막자는 취지라는 뜻에서 민식이법으로 불렸다.
 
발의 당시에는 법안이 국회에서 관심을 못 받았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가 변곡점이 됐다. 민식군의 부모가 출연해 눈물을 흘리며 조속한 법안 통과를 호소했고, 문 대통령은 “국회와 협력해서 법안이 빠르게 통과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이후 국회 논의가 급물살을 탔고, 법안은 ‘국민과의 대화’ 22일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민식이법' 시행후 순차적 등교가 시작된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 초등학교 앞에서 어린이들이 어린이보호구역 일대를 지나고 있다. 민식이법은 지난해 9월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김민식 군 사고 이후 발의된 법안으로, 2020년 3월 25일부터 시행됐다. [뉴스1]

'민식이법' 시행후 순차적 등교가 시작된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 초등학교 앞에서 어린이들이 어린이보호구역 일대를 지나고 있다. 민식이법은 지난해 9월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김민식 군 사고 이후 발의된 법안으로, 2020년 3월 25일부터 시행됐다. [뉴스1]

‘윤창호법’과 같은 형량 논란

민식이법은 국회 통과 직후부터 “여론에 등 떠밀려 졸속으로 처리됐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스쿨존에서 사고를 낸 운전자를 가중 처벌한다는 내용의 특정범죄가중법이 논란의 중심이었다. 개정법은 어린이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전해야 하는 의무를 위반해 스쿨존 내에서 사망사고를 낼 경우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을 개정한 애초 취지는 운전자가 안전운전 의무를 지키지 않아 스쿨존 내에서 사고가 자주 발생하니, 형량을 높여 경각심을 주자는 것이었다. 행안부에 따르면, 2009년~2018년 스쿨존 내 사고의 주요 원인 중 안전운전 의무 불이행과 보행자 보호 의무 위반이 전체 사고의 68.7%를 차지했다.
 
하지만 개정법에서 높인 형량이 과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교통사고는 과실에 의한 사고일 가능성이 높은데, 고의에 의한 범죄와 형량이 비슷해 형벌의 비례성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예를 들어 일명 ‘윤창호법’으로 불리는 음주운전 사망사고 형벌은 민식이법과 같은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이다. 법학계에선 “나쁜 의도로 저지르는 강간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인데 이보다 처벌이 강하다는 건 형평에 안 맞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주백 충남대 법학전문대 교수는 “법 원칙 중에는 ‘체계 정당성의 원리’라는 게 있다. 책임에 따라 형벌도 그에 비례해서 높아져야 하는데, 특정 법 조항만 형벌이 높다면 체계 정당성의 원리에 안 맞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식이법 관련 국민청원을 쓴 이도 “음주운전 사망사고의 경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행위로 간주하는데, 이러한 중대 고의성 범죄와 순수과실범죄가 같은 선상에서 처벌 형량을 받는다는 것은 이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다.
 
‘민식이법’과 유사한 형량의 범죄

‘민식이법’과 유사한 형량의 범죄

커진 운전자들의 불안감

지난 3월부터 민식이법이 시행된 후 운전자들 사이에선 스쿨존 사고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 민식이법 시행 이후 스쿨존을 피해갈 수 있는 내비게이션이 등장하기도 했다. 내비게이션 앱 아틀란은 스쿨존 회피 경로 안내 기능을 추가한 후 앱 다운로드 수가 전보다 3배 이상 증가했다.
 
불안한 마음에 운전자보험에 가입하는 운전자도 크게 늘었다. 운전자보험 판매 건수는 지난 1분기 월평균 34만건이었는데, 민식이법 시행 이후인 지난 4월엔 약 2.4배인 82만9000건으로 증가했다. 운전자보험은 기존엔 주로 최대 2000만원까지의 벌금을 보장했는데, 그 한도를 3000만원까지 높인 상품도 나왔다. 스쿨존 안에서 어린이를 다치게 하는 사고를 내면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기 때문이다.
 
운전자들의 오해도 있었다. ‘스쿨존 내에서 사고를 내면 무조건 가중처벌된다’는 오해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개정법은 ‘어린이의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전하여야 할 의무를 위반하여’ 사고를 낸 경우로 가중처벌의 단서를 달고 있다. 스쿨존 내에서 시속 30㎞를 넘겨 운전하는 등의 경우에만 가중처벌한다는 의미다.
 
미래통합당 강효상 의원이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민식이법(도로교통법,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중 특가법상 형벌 수위를 개정 이전 수준으로 환원하거나 완화하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하며 민식이법 개정안을 21대 국회 1호 민생법안으로 다룰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래통합당 강효상 의원이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민식이법(도로교통법,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중 특가법상 형벌 수위를 개정 이전 수준으로 환원하거나 완화하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하며 민식이법 개정안을 21대 국회 1호 민생법안으로 다룰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전히 계속되는 개정 요구

청와대의 국민청원 답변에도 불구하고 민식이법 비판 논리가 완전히 해소된 건 아니다. 김계조 본부장은 답변에서 기존 판례에서 운전자가 사고 발생을 피할 수 없었던 경우에는 과실이 없다고 인정하고 있어 스쿨존 내에서 항상 형사처벌되고 가중처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민식이법의 처벌 수준이 다른 과실 범죄 관련 법에 비해 높아 ‘형벌의 비례성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에는 답변하지 않았다. 비판의 핵심을 비껴간 것이다.
 
국회에서도 일부 의원으로부터 재개정 요구가 나왔다. 강효상 미래통합당 의원은 19일 “민식이법 개정안을 21대 국회 1호 민생법안으로 다루자”고 촉구했다. 민식이법 중 특정범죄가중법의 형벌 수위를 개정 이전 수준으로 환원하거나 완화하는 방향으로 개정하자는 주장이다. 강 의원은 민식이법 개정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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