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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랑 27년…'목포의 눈물' 구성지게 부른 네팔 사람 미누

중앙일보 2020.05.20 18:00
27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안녕, 미누'의 주인공인 네팔인 미누씨. [사진 영화사 풀, 영화사 친구]

27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안녕, 미누'의 주인공인 네팔인 미누씨. [사진 영화사 풀, 영화사 친구]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물결치듯 꺾은 음이 간드러진다.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가사 대목은 비를 머금은 바람처럼 가만가만 가슴을 파고든다.  
 

27일 개봉 다큐 '안녕, 미누씨'
한국서 18년 살다 강제추방…
평생 한국 못 잊은 네팔인 미누씨
46세 숨지기 전 마지막 2년 담아

한국서 4000㎞ 떨어진 네팔 어느 뱃머리에서, 한국 사람보다 더 구성지게 애창곡 ‘목포의 눈물’을 부른 그는 네팔 사람 미노드 목탄. 갓 스물에 한국에 일하러 와 18년간 청춘을 다 바쳤다. 히말라야보다 서울 창신동 달동네가, 네팔 시장보다 “골라, 골라” 하는 서울 좌판 할머니들 목소리가 더 익숙해진 그를, 한국 친구들은 ‘미누씨’라 부른다.
 
“한국인인 줄 알았어요. 저는 그런 착각으로 살았어요.” 생전 그의 말투가 서울 토박이 같았다.  
 

'한국 향수병' 걸린 네팔 사람 

27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안녕, 미누’(감독 지혜원)는 미누씨가 이주노동자 관련법조차 제대로 없던 1992년 한국에 와 2009년 강제 추방된 후 2018년 네팔에서 46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마지막 2년을 다뤘다. 사인은 심장마비. 그해 완성된 이 영화가 경기도 DMZ국제다큐영화제 개막작으로 초청돼 꿈에 그리던 한국을 딱 사흘간 다녀가고 난 뒤 한 달만의 부고였다.
다큐 '안녕, 미누'를 연출한 지혜원 감독이 15일 종로구 창신동 골목을 다시 찾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다큐 '안녕, 미누'를 연출한 지혜원 감독이 15일 종로구 창신동 골목을 다시 찾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번 개봉 버전은 재편집본이다. 개봉 전 시사회에서 지혜원(51) 감독은 “DMZ영화제 상영 때의 스토리는 한국에서 황금기를 보내며 여기서 모든 사회관·가치관을 정립한 사람이 네팔에서 어떻게 사는지에 집중돼 있었다. 미누씨 사망 소식을 듣고 재편집했다. 이주노동자 역사에서 미누씨가 차지했던 위치·역할을 더 큰 그림에서 그려야겠다고 생각해서다”라고 말했다.  
 
14일 지 감독을 미누씨가 봉제공장에서 일하며 살았던 창신동에서 만났다. 가파른 오르막 초입 네팔 음식점 앞엔 미누씨 같은 이주민들도 보였다. 지 감독이 “지금은 약간 관광지처럼 됐다. 미누씨가 야근하고 퇴근길에 재봉틀 소리를 들었던 때랑 달라졌다”고 말했다.  
 

"한국 사람들도 힘들게 일하는구나" 

“미누씨가 재봉일을 반지하에서 했대요. 섬유 가루, 먼지가 많아서 굉장히 힘든데 한국 아주머니들이 눈썹에 하얀 먼지가 쌓일 때까지 안 일어나는 걸 보고 ‘한국 사람들도 힘들게 일하는구나’ 했대요. 자기가 이주민 운동을 했지만 이주민만 위한 운동을 한 것 아니라고, 봉제공장에서 같이 일한 그 아줌마들 생각하면서 운동했다고 했죠.”
다큐 '안녕, 미누'에서 미누씨 예전 모습. 갓 스무 살에 한국에 온 네팔 청년은 식당, 봉제공장, 가스벨브 공장 등에서 일했다. 20~30대 청춘, 우정을 모두 한국에서 겪었다. 추방당한 후에도 한국을 추억하며 그는 "그래도 행복했다, 진짜"라고 말한다. [사진 영화사 풀, 영화사 친구]

다큐 '안녕, 미누'에서 미누씨 예전 모습. 갓 스무 살에 한국에 온 네팔 청년은 식당, 봉제공장, 가스벨브 공장 등에서 일했다. 20~30대 청춘, 우정을 모두 한국에서 겪었다. 추방당한 후에도 한국을 추억하며 그는 "그래도 행복했다, 진짜"라고 말한다. [사진 영화사 풀, 영화사 친구]

 
미누씨는 네팔에 가서도 한국을 원망하지 않고 그저 그리워하며 살았다. “엄마가 집을 나가라고 하면 나가죠. 하지만 결국 엄마 품이 그리워져요”라면서다. 한국식 밥상을 차려먹고 한국 방송을 들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진다 했던 미누씨. 이번 영화는 영락없이 그런 그의 사모곡이다.
 

"단속 멈추라" 노래한 이유…

한국의 이주노동자 역사는 88올림픽 이후 시작됐다. 미누씨도 일손이 모자란 한국 산업 현장이 불러들인 1세대 이주노동자 중 하나였다. 그는 1993년 산업연수생제도 도입 한 해 전 한국에 왔다. 당시만 해도 관련 법안이 없어 이주노동자들이 관광비자로 들어왔단다.
 
2003년 정부는 고용허가제 도입을 앞두고 이들을 집중 단속해 대대적인 강제추방을 실시했다. “무리한 단속으로 빚어진 사고도 허다했다”고 했다. 미누씨가 단속을 멈추라는 뜻의 ‘스탑크랙다운(Stop Crackdown)’이란 이름의 다국적 밴드를 결성한 것도 이 때다. ‘월급날’ ‘베트남 아가씨’ 등 노동 현장 목소리를 실은 자작곡으로, 전국적으로 벌어진 이주노동자 집회와 농성뿐 아니라 인권 투쟁, 축제마다 참여했다. 그저 다 같이 사람답게 살게 해달라 외치기 위해서다.
 
2006~2007년엔 문화예술진흥기금으로 이주노동자를 위한 전국 순회공연도 했다. 한국 인권운동가들과 뭉쳐 직접 이주노동자 방송, 관련 다큐를 제작하기도 했다. 2009년 불법 체류자로 낙인찍혀 출근길에 맨몸으로 추방당한 후에도 그는 네팔에서 사회적 기업 트립티를 꾸려 현지 청년들을 교육하는 한편, 네팔과 한국 문화 사이 다리 놓기에 힘썼다. “배려심 깊고 점잖은 선비 같은, 이주민들한텐 맏형 같던 사람.” 지인들의 회고다.  
 

"우리가 필요해서 데려오고선 차별·혐오"

지 감독은 “미누씨가 추방당할 때 진짜 가방 하나 못 들고 출근길에 잡혀 네팔공항에 떨궈졌다”면서 “출입국관리소, 외국인보호소에도 미누씨를 아는 사람들은 안타까워했다”고 말했다.  

다큐를 촬영하던 2016~2018년 무렵 미누씨. 고향 네팔에 돌아가서도 현지 청년들이 자립하고 한국과 네팔 문화가 이어질 수 있도록 애썼다. [사진 영화사 풀, 영화사 친구]

다큐를 촬영하던 2016~2018년 무렵 미누씨. 고향 네팔에 돌아가서도 현지 청년들이 자립하고 한국과 네팔 문화가 이어질 수 있도록 애썼다. [사진 영화사 풀, 영화사 친구]

 
그는 “미누씨가 미흡한 법체계와 노골적인 표적 수사에 의해 한국을 떠나야 했다”고 본다. 강제 추방 후 5년이 지나면 한국을 다시 방문할 수 있다는 법이 유독 미누씨에게만 더 긴 10년으로 적용돼 있던 걸 예로 들었다. 2017년 사회적 기업 일로 네팔 한국대사관에서 제대로 비자를 발급 받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던 미누씨는 인천공항에서 법무부에 이런 사실을 통보받고 마중 나온 한국 친구들의 얼굴도 못 본 채로 발길을 돌렸다. 이후 DMZ영화제 방문도 확신 못했지만 극적으로 성사됐다. 
 
지 감독은 미누씨의 첫 일터였던 의정부 먹자골목을 다큐 촬영차 찾아 나섰을 때 일화를 들려줬다. “한 식당 아주머니가 혹시 네팔 노동자 알면 소개해달라더군요. 일손 모자란다고, 먹고 자고 다 할 수 있다고요. 그 일이 굉장히 기억에 남았죠. 우리가 필요해서 데려오고서는 차별하고 혐오하는구나.”

 
입장 바꿔보면 어떨까. 지 감독이 2016년 이 영화를 출발한 계기다. 그는 “2016년 미국 대선 경선에 트럼프가 등장하면서 반이민자 정책들이 마구 폭력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정책들 속에서 한국인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테니 그런 이야기를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며 “그리 멀리서 찾을 것 없이 한국에서도 있던 일이니 가까이서 시작해보자, 자연스럽게 (이주민 운동으로 잘 알려져있던) 미누씨를 떠올렸다”고 했다.  
 

'J에게''목포의 눈물'…그의 인생 노래

“나를 불쌍하게 그리지 마세요.” 미누씨가 다큐 제작에 요구한 딱 한 가지 원칙이었다.  
 
영화엔 낙천적이고 유쾌한 미누씨 모습도 많다. 특히 스탑크랙다운 밴드 무대가 흥겹다. 미얀마인‧한국인 멤버들이 네팔을 찾으며 9년 만에 성사된 공연도 담겼다. 음악으로 하나되는 다큐는 지 감독의 특기이기도 하다. 25년차 다큐 베테랑인 그는 한국 성악가가 은퇴 후 인도 빈민가 가족들과 합창단에 도전한 다큐 ‘바나나쏭의 기적’(2018)으로 세계 다큐 무대에서 주목받은 바 있다.
네팔 가족에게로 돌아간 뒤에도 미누씨는 한국을 그리워했다. 지혜원 감독에 따르면, 그는 가족과 번듯한 집에서 살 수 있음에도 한국에서 살던 곳 같은 옥탑방에서 수년간 지냈다고 한다. [사진 영화사 풀, 영화사 친구]

네팔 가족에게로 돌아간 뒤에도 미누씨는 한국을 그리워했다. 지혜원 감독에 따르면, 그는 가족과 번듯한 집에서 살 수 있음에도 한국에서 살던 곳 같은 옥탑방에서 수년간 지냈다고 한다. [사진 영화사 풀, 영화사 친구]

 
미누씨도 “내 인생의 굽이굽이에 한국노래가 결부돼있다” 했다고 한다. 지 감독에 따르면 그가 가장 먼저 기억한 노래는 이선희의 ‘J에게’. “미누씨가 처음 한국에 올 때 비행기에서 ‘J에게’가 나오는데 그 땐 한국말을 아무것도 못 알아들어서 ‘J, J’만 들리더래요.”(웃음) ‘목포의 눈물’은 의정부 식당에서 일할 때 목포 아주머니에게 배웠단다. “고향 버리고 돈 벌러 한국 왔다니까 그렇게 챙겨주셨대요. 전라도 청년들도 ‘나도 고향 못 가고 있다. 소주 한 잔 하자’며 친해졌대요. 정을 많이 나눴던 거죠.”
 

박노해 시 노래한 '손무덤' 대표곡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공저한 '고용허가제 한국어능력시험을 위한 한국어 표준교재'. 다큐에도 미누씨가 한국에 갈 네팔 청년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쓰는 이 교재에는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현실이 담긴 대화가 실용 예문으로 실려 있다. 나원정 기자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공저한 '고용허가제 한국어능력시험을 위한 한국어 표준교재'. 다큐에도 미누씨가 한국에 갈 네팔 청년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쓰는 이 교재에는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현실이 담긴 대화가 실용 예문으로 실려 있다. 나원정 기자

“눈물로 피 쏟은 잘린 손목을 싸안고/타이탄 짐칸에 앉아 병원에 갔네”란 구절로 시작하는 스탑크랙다운의 대표곡 ‘손무덤’은 박노해 시인이 자신의 동명 시를 가사로 헌정해 만든 노래다. 미누씨가 무대에 오를 때마다 끼던 손가락 부분을 잘라낸 빨간 목장갑은 기계에 잘려나간 이주노동자들의 손을 의미했다.
 
“미누씨 장례식 다녀와서 다큐를 재편집하다 저도 모르게 미누씨한테 전화를 했다. ‘아, 미쳤구나’ 하고 그만두곤 6개월간 아무 것도 못 했다”는 지 감독은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법‧제도에 못 미친다”며 안타까워했다. “최근 한국 의식조사에서 해외 이민은 국익에 도움 된다며 찬성하는 의견이 많지만 이민 오는 건 반대하더군요. 영화 속에 네팔에서 한국인 등산객 일행이 미누씨가 한국말을 하는 것을 보고 반가워하잖아요. ‘어우 여기서 만나니 더 반갑네’ 라며. 그런데 한국에 살면 왜 안 반갑고 불편할까요. 같은 존재인데.”

미누씨가 네팔 집 액자에 넣어둔 한국식 빨간 목장갑. 스탑크랙다운 공연 때마다 손가락 부분만 잘라낸 이 목장갑을 트레이드 마크처럼 꼈다. 기계에 잘라나간 이주노동자들의 손을 기억하잔 의미였다. 그와 알고 지낸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이번 영화 개봉 전 시사회에 참석해 이렇게 털어놓으며 눈물을 쏟았다. ’2008년인가 2007년 송년회 때 미누가 자꾸 ‘손무덤’ 을 부르는 겁니다. 저도 노동운동 열심히 한다고 감방도 갔다 오고 했는데, 박노해 시가 나온 80년대엔 리얼했겠지만 지금 내 감각엔 노동자 현실과 거리가 있는 것 같다, 하니 미누가 정색하며 얘기하는 겁니다. 작년에 마석에서 만난 어린 네팔 후배 오른팔이 없더라고. 2 년 전 프레스 작업하다 옷깃이 말려들어 팔이 잘렸다고. 80년대 한국 시 속 현실이 2000년대 이주노동자들에게 옮아가 있었던 겁니다.“ [사진 영화사 풀, 영화사 친구]

미누씨가 네팔 집 액자에 넣어둔 한국식 빨간 목장갑. 스탑크랙다운 공연 때마다 손가락 부분만 잘라낸 이 목장갑을 트레이드 마크처럼 꼈다. 기계에 잘라나간 이주노동자들의 손을 기억하잔 의미였다. 그와 알고 지낸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이번 영화 개봉 전 시사회에 참석해 이렇게 털어놓으며 눈물을 쏟았다. ’2008년인가 2007년 송년회 때 미누가 자꾸 ‘손무덤’ 을 부르는 겁니다. 저도 노동운동 열심히 한다고 감방도 갔다 오고 했는데, 박노해 시가 나온 80년대엔 리얼했겠지만 지금 내 감각엔 노동자 현실과 거리가 있는 것 같다, 하니 미누가 정색하며 얘기하는 겁니다. 작년에 마석에서 만난 어린 네팔 후배 오른팔이 없더라고. 2 년 전 프레스 작업하다 옷깃이 말려들어 팔이 잘렸다고. 80년대 한국 시 속 현실이 2000년대 이주노동자들에게 옮아가 있었던 겁니다.“ [사진 영화사 풀, 영화사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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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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