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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 나쁜 회사채·CP···정부·중앙은행 손잡고 10조 풀어 산다

중앙일보 2020.05.20 17:04
저신용 등급을 포함한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사들이는 기구(SPV)가 한시적으로 가동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기업을 지원하는 성격이다. 정부와 중앙은행, 정책금융기관이 손을 잡고 회사채 시장에 개입하는 첫 사례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제1차관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제4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왼쪽부터 권기섭 고용노동부 고용정책실장, 윤면식 한국은행 부총재, 김 1차관,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고규창 행정안전부 지방재정경제실장. 뉴스1

김용범 기획재정부 제1차관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제4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왼쪽부터 권기섭 고용노동부 고용정책실장, 윤면식 한국은행 부총재, 김 1차관,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고규창 행정안전부 지방재정경제실장. 뉴스1

 
정부가 20일 제4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경제 중대본) 회의를 열고, 저신용등급 회사채·CP 매입기구 설립 방안을 의결했다. 정부와 산은, 한은이 직접 나서 회사채를 사들이겠다는 의미다. 규모는 일단 10조원이다. 자본금 성격의 1조원은 정부가 산업은행을 통해 출자한다. 1조원(후순위)은 산업은행이, 나머지 8조원(선순위)은 한국은행이 대출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3월 중순 크게 출렁였던 회사채 시장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상태다. 4월 들어선 AA등급 이상 우량채 회사채 발행금액이 다시 증가하고 있다. 2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를 가동하고, 회사채 발행지원 프로그램(4조원) 등을 도입한 효과다. 하지만 A등급 이하 비우량 회사채 시장은 여전히 부진하다. 발행금액이 크게 줄고, 3년 미만의 단기물만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하다.  
 

“매입한 회사채 손실 위험은 정부가 우선 흡수” 

SPV 설립은 이런 사각지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신용 충격에 대응하는 차원이다. 윤면식 한국은행 부총재는 “기업이 코로나19에 따른 실적 악화에 더해 자금 공급 기피로 어려움에 부닥친 상황”이라며 “이런 현상이 지속하면 고용 등 영업 규모를 축소할 수밖에 없고, 그 영향으로 실물경제 부진과 금융 불안이 심화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채안펀드가 주로 우량 회사채를 사들인다면 이번에 설립하는 SPV는 비우량 등급 채권, CP도 매입한다. 매입 대상은 회사채 AA∼BB등급, CP·단기사채 A1∼A3다. 회사채는 AAA~AA는 우량, A~BBB는 비우량으로 분류한다. 여기까진 투자등급이지만 BB는 투기등급에 해당한다. 한은 관계자는 “단 BB등급은 코로나19 충격으로 투자등급에서 투기등급으로 하락한 경우로 제한한다”고 말했다.
회사채·CP 매입기구(SPV) 재원조달 구조.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회사채·CP 매입기구(SPV) 재원조달 구조.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이자보상비율이 2년 연속 100% 아래로 떨어진 기업도 대상에서 제외한다. 이자보상비율이 100%에 못 미치는 건 영업이익보다 이자로 나가는 비용이 더 많다는 의미다. SPV를 통한 회사채 매입은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만을 대상으로 하겠다는 의미다. 만기 3년 이내의 회사채·CP만 매입하기로 한 것도 한시적인 유동성 공급임을 분명히 하려는 목적이다. 기업이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려는 노력을 먼저 하도록 시장금리에 일부 가산 수수료(최대 1%포인트)도 붙인다.
 
이번 SPV 설립은 한국은행이 위기 대응 의무(한은법 제80조)를 활용해 직접 대출에 나선 첫 사례다. 대출은 SPV가 자금을 요청하면 빌려주는 캐피털 콜(Capital call) 방식으로 이뤄진다. SPV 모형은 미국과 유사하다. 미국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 3월 PMCCF·SMCCF 등 5개 회사채 매입기구(SPV)를 설립해 시중에 자금을 공급했다. 재무부가 각 SPV에 100억 달러를 출자해 Fed의 신용 부담을 더는 구조다. 한국도 정부가 10%(1조원)를 출자한다.
윤면식 한국은행 부총재가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제4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뉴스1

윤면식 한국은행 부총재가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제4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뉴스1

애초에 비우량 기업 지원에 초점을 맞춰 만드는 SPV이기 때문에 손실 위험을 피할 순 없다. 낮은 등급의 회사채를 어느 정도까지 매입하느냐가 관건이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정부의 출자금과 산은의 후순위대출(1조원)이 있기 때문에 혹 신용위험이 발생해도 20%는 정부와 정책금융기관이 먼저 흡수하는 구조”라며 “(손실이) 2조원 이상일 경우엔 중앙은행도 위험에 노출되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SPV는 산은에 설치한다. 정부·한은·산은 관계자 등이 참여하는 운영위원회(가칭)를 구성해 구체적 사항을 결정하기로 했다. 실제 출범 시기는 미정이다. 정부 출자금 중 절반(5000억원)이 3차 추경안에 포함될 예정이라 일단 국회 문턱을 넘어서야 한다. 
 
정부는 SPV를 6개월간 운영한 뒤 시장 상황을 고려해 연장 여부를 판단하기로 했다. 필요하면 지원 규모를 20조원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할 계획이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대학 명예교수는 “시급한 상황에서 회사채 시장을 안정시키려는 노력은 필요하지만 어찌 됐건 한은으로선 부채를 진 것”이라며 “무리해서 더 확충하면 국가신용도 하락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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