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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약 당첨시키려 임신진단 위조… 분양권 불법 전매 조직 적발

중앙일보 2020.05.20 11:56
2018년 어느 날. 30대 가정주부 A씨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검색하는 과정에서 솔깃한 광고를 보게 됐다. "청약통장을 산다"는 광고였다. 호기심에 연락한 A씨에게 브로커(구속)는 "통장가격 500만원에 청약에 성공하면 성공 보수까지 주겠다"고 말했다.  
'청약저축·예금 삽니다'라고 적힌 전단. 연합뉴스

'청약저축·예금 삽니다'라고 적힌 전단. 연합뉴스

브로커에게 넘어간 A씨의 청약통장은 경기도 하남 미사지구 한 아파트 청약에 쓰였다. 브로커는 아이가 2명인 A씨가 임신 9주인 것처럼 산부인과 명의의 임신진단서를 위조해 다자녀(3명) 특별공급으로 청약을 신청했다. 다자녀 특별공급은 아이가 많을수록 점수가 높기 때문에 A씨의 청약통장은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다. 이 아파트는 청약에 당첨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1억원의 프리미엄이 붙었다. 브로커는 이 아파트를 불법 전매해 A씨에게 3000만원을 건네고 자신은 7000만원을 챙겼다.
 

청약통장 구입해 부동산투기, 454명 적발 

청약통장을 구입해 부동산 투기 등에 사용한 조직이 무더기로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이 전국에서 불법 전매한 아파트만 445채에 이른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20일 주택법 공급질서 교란 행위 금지와 사문서위조, 주민등록법 위반 등 행위로 아파트 불법 전매 조직원 등 454명을 적발, 이들 중 8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적발된 이들 중 48명은 부동산 브로커다. 위조 전문가도 1명 있었다. 405명은 청약통장을 판 부정 청약당첨자다.   
부동산 브로커들은 2018년부터 최근까지 SNS 등을 통해 청약통장을 모집한 뒤 특별공급에 유리한 서류를 위조하는 방식으로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다. 분양권 가격이 오르면 불법 전매 방식으로 팔아 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분양권 불법 전매 흐름도.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분양권 불법 전매 흐름도.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경찰 조사 결과 브로커들은 SNS 등 광고를 보고 연락한 청약통장 판매자들에게 청약 가입 기간, 가족 관계, 장애 유무 등을 따져 200만~600만원을 주도 청약통장을 샀다. 그리고 불법 전매로 아파트 한 채당 2000만원에서 최대 7000만원까지 챙겼다. 적발된 브로커의 절반이 공인중개사(2명)나 중개보조인 경력자(10명), 분양대행업 종사자(8명) 등 부동산 업종 관련 근무 경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국에서 특별분양 등으로 445채 당첨 

이들의 범행 지역은 전국이었다. 경기 안양 평촌지역이 103곳으로 가장 많았고, 경기 화성 동탄 2지구가 42곳, 부산광역시가 58곳, 경기 평택 고덕지구가 33곳, 서울 청량리·송파지구 28곳, 경기 하남 미사지구 22곳 등이다.
 
이들은 전체 445건의 불법 청약 중 당첨 확률이 높은 특별공급(278건)을 주로 노렸다. 실제로 신혼부부 대상 특별공급에서 116건이 당첨됐고 장애인 특별공급에서 82건, 다자녀 54건 등 절반 이상이 특별공급 당첨이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연합뉴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연합뉴스

위장 전입으로 당첨된 사례도 있었다. 브로커 B씨(구속)는 울산시에 사는 C씨의 청약통장을 수도권 아파트에 당첨되도록 하기 위해 11차례에 걸쳐 위장 전입을 해 아파트 2채를 분양받았다. 이 아파트는 700만원의 프리미엄을 받고 팔렸다. 브로커들은 주로 전매제한 기간이 짧은 분양권을 범행대상으로 노렸다. 범행 대상이 된 아파트 445채 중 405채의 전매제한 기간이 1년 이하였다.
 
경찰은 적발된 브로커와 부정당첨자 454명에 대해 국토교통부에 최대 10년까지 청약 자격을 제한하거나(공공분양 10년, 투기과열지구 5년, 기타 3년 제한), 이미 체결된 주택의 공급계약을 취소토록 통보했다. 또 이들이 얻은 불법이익에 대해 국세청에 알렸다.
 
경찰 관계자는 "청약전문 브로커들이 특별공급분을 중점적으로 노린 만큼 관계기관에 제도적 허점을 보완토록 요청했다"며 "모집공고일 현재를 기준으로 하는 현행 분양공고제도 위장 전입의 허점이 있어 일정 기간 이상 거주를 의무화하도록 개선키로 했다"고 말했다.  
 
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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