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음 읽기] 옛사람의 시간

중앙일보 2020.05.20 00:29 종합 28면 지면보기
문태준 시인

문태준 시인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다가 서재 한쪽에 꽂혀 있던 한 권의 시집을 꺼내 읽게 되었다. 이성복 시인이 펴낸 『그 여름의 끝』이라는 시집이었다. 이 시집은 1990년 6월 1일에 초판이 나왔으니 출간된 지 거의 30년이 지난 시집이었다. 내가 지니고 있는 시집은 이제 많이 닳았고 군데군데에는 얼룩이 졌다. 나는 이 시집을 꽤 여러 권 샀던 기억이 있다. 아는 분들에게 선물로 주기도 했고, 스스로 잃어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은 군대 생활 때에 휴가를 나와서 다시 산 것이다.
 

누구나 사랑과 고통을 체험해
우리는 더불어 살아야 할 개인
때론 옛사람 생각에 살았으면

시집에 실려 있는 시 ‘그대 가까이 2’가 1990년대 중반 무렵 한 대학의 선후배 사이에 있었던 옛사랑의 시간을 되짚어가는 드라마에서 소개되었다. 시의 일부분은 이러하다. “자꾸만 발꿈치를 들어보아도/ 당신은 보이지 않습니다/ (······) / 우리는 만나지 않았으니/ 헤어질 리 없고 헤어지지/ 않았어도 손잡을 수 없으니/ 이렇게 기다림이 깊어지면/ 원망하는 생각이 늘어납니다”
 
이 시집 뒤쪽에 실린 해설의 글에는 “사랑과 고통의 체험을 가진 사람만이 음악을 이해한다”라는 장클로드 피게의 문장이 실려 있고, 해설자는 이 시집의 시편들이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사랑 노래들의 악보”라고 적었다. 나와 타자에 대한 진정한 사랑의 어려움을 현란한 수사를 동반하지 않고 평이하게 드러내지만 뛰어난 서정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시편들이 바로 이성복 시인의 작품들이라는 평가가 있어왔는데,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이 시집의 시 구절을 읊는 것을 보는 일은 신선하고 반가웠다. 그리고 이 시집을 펼쳐 읽는 시간도 나에겐 행복했다. 무엇보다 이 시집 해설문에 함께 인용된 “사랑의 체험은 남의 말을 듣기 위해 필요하고 고통의 체험은 그 말의 깊이를 느끼기 위해 필요하다”라는 문장을 나는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고통과 사랑의 체험은 문학이 다뤄온 아주 오랜 화두 같은 것이다. 문학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가 고통과 사랑이라는 체험의 연속이다. 그 체험은 인생이라는 책의 갈피 속에 끼워져 있다. 우리는 이 고통과 사랑의 체험을 통해 보다 자아가 성숙하게 되고, 또 다른 존재에 대한 이해의 정도를 넓혀간다. 그리고 이 고통과 사랑의 체험 한가운데에는 옛사람의 시간이 있다.
 
만남과 이별을 노래한 시 가운데, 옛사람의 시간을 노래한 시 가운데 내가 손꼽는 시 한 편은 이홍섭 시인의 시 ‘서귀포’다. “울지 마세요/ 돌아갈 곳이 있겠지요/ 당신이라고/ 돌아갈 곳이 없겠어요// 구멍 숭숭 뚫린/ 담벼락을 더듬으며/ 몰래 울고 있는 당신, 머리채 잡힌 야자수처럼/ 엉엉 울고 있는 당신// 섬 속에 숨은 당신/ 섬 밖으로 떠도는 당신// 울지 마세요/ 가도 가도 서쪽인 당신/ 당신이라고/ 돌아갈 곳이 없겠어요” 사랑을 잃고 난 후의, 혹은 사랑에 이를 수 없는 처지의 정처 없음을 노래한, 가슴이 먹먹해지는 시다. 동시에 유랑하는 인생에 대한 은유의 시라고도 하겠다. 우리는 서로에게 “섬 속에 숨은” 존재이면서 “섬 밖으로 떠도는” 존재인 것이다.
 
옛사람의 시간을 떠올릴 때 옛사람은 누구나 될 수 있다. 가족 혹은 학교 교실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 한 때의 직장 동료도 우리의 옛사람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옛사람은 그 시절로부터 멀어질수록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그리고 조금 더 흐릿한 윤곽으로 존재한다. 그 옛사람은 슬픔과 기쁨의 옷을 번갈아가며 입고도 있다. 옛사람의 시간에 아주 많은 것들이 들어 있음은 물론이다. 그때 그 시절의 사회 상황, 유행가와 옷차림, 찾아갔던 장소, 독특한 습관, 말씨와 마음 씀씀이 등을 망라한다. 한 사람에 대한 기억은 이런 것들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과거의 시간으로의 회고가 퇴행적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굳이 과거의 시간을 회피하거나 부정할 이유가 없고, 또 그렇게 할 수도 없다. 땅으로부터 뿌리 뽑힌 꽃나무는 더 자랄 수 없다. 우리는 과거의 시간으로부터 줄기와 잎과 꽃을 얻게 된 꽃나무와도 같은 존재다. 그러므로 우리는 옛 시간을, 옛사람의 시간을 함께 살면 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우리는 이른바 비대면이라는 새로운 세태를 경험하고 있지만 동시에 대면에 대한 그리움과 소중함도 새삼 함께 느끼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더불어 살아야 할 개인을 경험하고, 또 내가 타인과 어울려 살았던 그 과거를 되돌아보는 때를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게 적절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시간을 옛사람의 시간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문태준 시인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