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큰 공장 1개 컴백에 울산 들썩이는데···머나먼 기업 유턴

중앙일보 2020.05.19 05:00 경제 1면 지면보기
현대모비스가 울산 북구 이화산업단지에 15만㎡ 규모로 짓고 있는 전기차 전용 부품공장 건설 현장 모습. 오는 7월 완공하면 시험 생산을 거쳐 내년 초 양산에 들어간다. 울산=김영주 기자

현대모비스가 울산 북구 이화산업단지에 15만㎡ 규모로 짓고 있는 전기차 전용 부품공장 건설 현장 모습. 오는 7월 완공하면 시험 생산을 거쳐 내년 초 양산에 들어간다. 울산=김영주 기자

지난 14일 찾은 울산 북구 이화산업단지 내 현대모비스 전기차 부품공장 공사장. 크레인 10여대를 비롯한 중장비와 인력이 3만㎡의 본동 외관 공사를 마무리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현대모비스 유턴 울산공장 가보니
중국 가려다 대기업 첫 리쇼어링
“5000만원대 일자리 1000개 생겨”

‘유턴 중기’는 이미 상당수 폐업
정치적 구호로 추진땐 실패 반복

뒷산에 올라 내려다보니 전체 부지 15만㎡(약 4만5000평)의 공장 규모가 한눈에 들어왔다. 울산시 관계자는 “울산의 매곡·중산 산업단지를 포함해도 큰 규모”라며 “최근 수년간 이렇게 큰 공장이 들어선 적이 없었다”고 했다.
 
지난해 8월 착공한 전기차 부품공장은 7월 준공 후 시범 가동을 거쳐 내년 1월부터 연간 10만대 분량의 전기차 배터리 시스템을 생산한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현재 공정률은 70% 정도로, 내년 본격 양산을 위한 공사가 차질없이 진행중”이라고 말했다.
현대모비스가 울산 북구 이화산업단지에 15만㎡ 규모로 짓고 있는 전기차 전용 부품공장 건설 현장 모습. 2013년 정부가 유턴기업 지원법을 제정한 뒤 대기업이 법 적용 대상이 된 건 이 공장이 유일하다. 사진 현대모비스

현대모비스가 울산 북구 이화산업단지에 15만㎡ 규모로 짓고 있는 전기차 전용 부품공장 건설 현장 모습. 2013년 정부가 유턴기업 지원법을 제정한 뒤 대기업이 법 적용 대상이 된 건 이 공장이 유일하다. 사진 현대모비스

현대모비스 전기차 부품공장이 눈길을 끄는 건 2013년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에 관한 법률’(유턴기업 지원법)이 제정된 뒤 처음 대상이 된 대기업 생산시설이어서다. 이른바 대기업 리쇼어링(Reshoring·해외로 간 제조업 생산시설이 자국으로 돌아오는 현상)의 첫 케이스인 셈이다. 현대모비스는 유턴기업 지원법에 따라 토지 관련 비용 일부와 세제 혜택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경제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울산 북구청 관계자는 “협력업체 50개가 들어오고, 평균 연봉 5000만원대의 일자리 1000여개가 생길 것으로 기대한다”며 “지방세 추가 수입도 연간 약 170억원(추정치) 가량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또 나왔다…정부의 ‘리쇼어링’ 대책

해외진출 제조업 5.6% 돌아왔을 때 늘어나는 일자리.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해외진출 제조업 5.6% 돌아왔을 때 늘어나는 일자리.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정부는 경제활성화 방안의 하나로 ‘리쇼어링’ 정책을 꺼내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한국 기업의 유턴은 물론 해외 첨단산업과 투자 유치를 위해 과감한 전략을 추진하겠다”며 “대한민국이 ‘첨단산업의 세계 공장’이 돼 산업지도를 바꾸겠다”고 말했다.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리쇼어링’ 정책이 부활한 건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가치사슬(공급망)의 붕괴 때문이다. 현대차그룹 역시 중국에서 생산하는 와이어링 하니스(자동차의 전기 신경망 부품) 공급 차질로 국내 공장이 셧다운(일시 정지)되기도 했다.
 
3만개 넘는 부품으로 이뤄지는 완성차 공장은 적기에 부품을 납품하는 적기생산방식(JIT·Just In Time)으로 가동되는데, 제조원가가 싸고 시장에 가까운 곳에서 대량 생산해 전 세계에 공급하는 글로벌 가치사슬이 필수적이라는 게 그간의 인식이었다. 
코로나19 이후 리쇼어링 유도 나선 나라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코로나19 이후 리쇼어링 유도 나선 나라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하지만 코로나19로 ‘세계의 공장’인 중국·인도가 ‘셧다운’하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자국에 생산시설을 늘리려는 보호무역주의도 강해졌다. 
 

해외시장이 더 큰 데, 리쇼어링 가능할까 

한국 기업의 국내 유턴은 그럼 얼마나 현실성이 있을까. 현대차그룹은 2017년부터 미래 차 변혁을 염두에 둔 전기차 전용 부품공장 건립을 검토했다. 글로벌 전기차 1위 시장인 중국에 공장을 세워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지만, 당시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로 중국 내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현대모비스 전기차 부품공장을 국내에 세우겠다고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대차그룹 전체로 보면 해외에 나간 생산시설을 국내에 들여올 이유가 별로 없다. 해외 시장이 더 크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의 해외 생산 비중은 56%(2019년 기준)에 달하고 판매 비중은 80%가 넘는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사업적 판단에 따라 국내 투자를 할 순 있어도, 수출 비중이 절대적인 우리로선 리쇼어링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경기 용인시에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을 계획 중이다. 하지만 각종 인허가가 남아 있는데다 대기업의 국내 투자를 가로막는 각종 규제가 여전해 이례적인 경우라는 게 산업계의 평가다. SK하이닉스 경기 이천 공장 전경. 사진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는 경기 용인시에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을 계획 중이다. 하지만 각종 인허가가 남아 있는데다 대기업의 국내 투자를 가로막는 각종 규제가 여전해 이례적인 경우라는 게 산업계의 평가다. SK하이닉스 경기 이천 공장 전경. 사진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가 추진 중인 경기 용인의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도 대규모 국내 투자로 주목받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일대 448만㎡ 부지에 2022년부터 120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생산라인 4기를 건설할 예정이다. 국내외 50여개 협력사도 함께 입주한다.
 
수도권에는 새로운 생산 시설이 원칙적으로 들어설 수 없도록 ‘총량제’ 규제를 받지만 지난해 3월 정부는 이례적으로 SK하이닉스에 특별 물량을 허용해줬다. 유턴기업 지원법 적용까지 받으면 토지 관련 비용은 물론 각종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SK하이닉스 측은 유턴기업 지원법 관련 언급에 대해 아직은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해외에 있던 생산시설을 국내로 옮긴 게 아닌 데다 아직 본격적인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고, 각종 인허가 절차가 많이 남아 있어서다.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인 대만의 TSMC는 최근 미국 애리조나주에 공장 건설을 결정했다. 코로나19 이후 생산시설 유치에 나선 미국의 압력 때문이다. EPA=연합뉴스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인 대만의 TSMC는 최근 미국 애리조나주에 공장 건설을 결정했다. 코로나19 이후 생산시설 유치에 나선 미국의 압력 때문이다. EPA=연합뉴스

익명을 요구한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최근 미국·일본 등이 반도체 기업 유치를 공언하고 있는 상황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국내 기업의 해외 이전을 막을 수 있는 ‘선제적 리쇼어링’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산단의 성공적 조성을 위해 환경 규제나 수도권 규제를 전향적으로 풀어주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귀금속·중소기업 위주 리쇼어링…상당수 문닫아

전문가들은 리쇼어링 활성화가 과거처럼 정부의 치적 홍보 수단이 돼선 안된다고 말한다. 과거 실효성은 없이 정부의 ‘정치적 트로피’가 돼 왔다는 의미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13년 유턴기업 지원법이 제정됐지만 리쇼어링 기업은 연평균 10여개에 그쳤다”며 “그나마 고용이나 부가가치 창출이 크지 않은 귀금속·의류 중소기업들이었는데 상당수가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도 “국내 기업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정치적 구호에 맞춰 리쇼어링 정책을 추진하면 결국 실패를 반복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무조건 국내에 첨단 제조업이나 연구시설을 투자하라고 할 게 아니라, 기업이 면밀히 어떤 사업을 국내로 들여올지 사업 판단을 내리고 이를 결정했을 때 ‘핀셋 지원’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했다. 
늘지 않는 리쇼어링, 유턴 기업 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늘지 않는 리쇼어링, 유턴 기업 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수출 의존 경제인 한국에서 미국·일본과 같은 리쇼어링이 가능할지 자체에 의문을 갖는 시각도 많다. 최근 대만의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 TSMC가 미국에 공장 건설을 결정한 것도 미국이 세계 최대 시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차두원 인사이트연구소 전략연구실장은 “코로나19로 타격이 있었지만, 글로벌 가치사슬 자체가 바뀌지는 않는다"며 "수출 의존적인 한국 기업엔 해외 생산시설의 복귀가 불가능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차 실장은 “정부의 리쇼어링 정책에 대해 국책연구소들이 앞다퉈 긍정적인 보고서만 내놓는데, 이럴 때 ‘입바른 소리’를 할 민간 싱크탱크가 없는 게 문제”라며 “정밀한 분석 없이는 과거 같은 실패가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후쿠오카현 렉서스 미야타공장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는 모습. 도요타는 2015년 북미공장에서 생산하던 렉서스 SUV 물량 일부를 국내로 돌렸다. 하지만 동남아 시장 점유율이 높고 운송 거리도 길지 않은 도요타와 한국 자동차 산업을 단순 비교하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 렉서스

일본 후쿠오카현 렉서스 미야타공장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는 모습. 도요타는 2015년 북미공장에서 생산하던 렉서스 SUV 물량 일부를 국내로 돌렸다. 하지만 동남아 시장 점유율이 높고 운송 거리도 길지 않은 도요타와 한국 자동차 산업을 단순 비교하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 렉서스

울산=김영주 기자,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