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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준의 시시각각] 태종·세종 앞서 광해군에 배울 것

중앙일보 2020.05.19 00:41 종합 30면 지면보기
예영준 논설위원

예영준 논설위원

부친을 거역하고 형제들을 처단하며 왕위에 오른 태종의 최측근은 처남 민무구·무질 형제였다. 왕자의 난 때 직접 칼을 휘두르며 피를 묻힌 민씨 형제에게 태종은 병권을 맡겼다. 시간이 흐르자 무신들이 태종보다 민씨 형제의 명령에 더 충성한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기 시작했다. 태종은 두 사람을 제주도로 귀양보낸 뒤 자결을 명했다. 태종은 이숙번, 이거이 등 다른 최측근 공신들도 자신의 손으로 제거했다. 아무리 큰 공을 세운 사람이라도 권력에 도취할 움직임을 보이는 순간엔 가차 없이 도려냈다. 그 빈자리는 ‘내 편’이 아닌 사람 중에서 발탁해 채웠다. 훗날 세종의 치세를 보필하는 명재상 황희 정승이 대표적이다.
 

명분보다 국익 앞세운 실리 외교
명·청 교체기 헤쳐간 전략적 발상
미·중 싸움에서 배워야 할 교훈

문재인 대통령을 태종·세종에 비유하는 여권 관계자의 발언이 잇따라 나왔다. 21세기 민주국가의 정치를 왕조시대에 비유하는 것 자체가 적절치 못한 일이다. 그래도 굳이 역사에서 교훈으로 삼겠다는 뜻이라면 내 편에 냉철하고, 내 편 아닌 사람을 포용했던 태종의 용인술을 되새겨 보길 바란다. 월탄 박종화의 원작을 각색한 사극 『용의 눈물』에는 ‘마음의 빚’에 고뇌하면서도 수족들을 자르는 인간 이방원의 모습이 나온다.
 
내친김에 여권 정치인들이 조선시대 역사 공부를 더 할 요량이면 광해군을 배우라고 권하고 싶다. 오해 마시길, 신하들의 쿠데타에 밀려 권좌에서 쫓겨나는 광해군의 말로가 아니라 조선시대를 통틀어 거의 유일하게 대의명분보다 실리와 국가 안위를 우선했던 광해군의 실리외교를 배우자는 얘기다.
 
1619년(광해군 11년) 명의 후금 정벌에 원군(援軍)으로 참전했다 패해 누르하치에게 투항하고 포로가 된 도원수 강홍립의 편지가 조선 조정에 도착했다. 편지를 여는 순간 조선은 후금과 내통하는 것이 되고, 이는 곧 임진왜란 때 원군을 보내준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이라며 신하들이 들고 일어났다. 후금 편에 붙은 역적 강홍립의 가솔들을 처형해 명에 변함없는 단심(丹心)을 보이는 증표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광해군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여러 차례 강홍립과 밀서를 주고받으며 후금의 내정을 파악했다. 훗날 명의 2차 파병 요청이 왔을 때 광해군은 온갖 핑계를 대며 거부해 불필요한 희생을 막았다. 명-후금의 역학관계를 정확히 알고 있었기에 내릴 수 있었던 판단이었다. 오히려 조선의 변경을 강화해야 누르하치의 배후를 위협할 수 있다고 설득해 명으로부터 원조를 받아내는 실리를 취하기도 했다. 7년 전쟁을 치른 일본과는 국교를 맺어 적대관계를 청산했다. 북방 후금의 위협에 대비해 남방의 안정을 꾀한 전략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냉철한 실리외교가 오래가지 못하고 인조반정 이후 주전론과 주화론의 극단을 진폭 크게 왔다 갔다 하다가 삼전도의 굴욕을 당한 사실이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은 세력 판도를 바꾸고 국제질서를 뒤흔든다. 총칼 없는 코로나19와의 전쟁을 계기로 미·중 패권 싸움이 본격화될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이 틈을 타 대국굴기(崛起)의 완수에 한발 더 다가서려 할 것이고, 미국은 지금 이때가 아니면 중국을 더 이상 억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할 것이다. 명·청(明·淸) 교체기에 조선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이 미·중 격돌을 피해갈 수는 없다. 미국과의 굳건한 동맹이 우리 외교의 근간이지만, 중국과 척을 질 수도 없다. 경제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너무 얽혀 있다. 그렇다고 ‘운명 공동체’ 발상으로 접근하는 건 냉철한 실리외교와는 거리가 멀다.
 
이럴 때 광해군의 전략은 세력 전환기의 한가운데 들어앉은 대한민국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명을 미국에, 청을 중국에 단순 비교하고 어느 쪽이 이길지를 저울질한 뒤 양자택일하자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명에 부단히 사신을 보내고, 후금에 투항한 역적과도 밀서를 주고받으며 정세 변화를 읽었던 광해군의 혜안과 전략적 발상을 배우자는 얘기다. 그러지 않고서는 태종·세종의 성세에 결코 다가갈 수 없다.
 
예영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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