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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의 한반도평화워치] 북한 급변사태 대비해 구체적 한·미 공조방안 마련해야

중앙일보 2020.05.19 00:35 종합 23면 지면보기

김정은 유고 사태와 한국의 대응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북한 서부지구 항공·반항공사단 산하 추격습격기연대를 시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북한 서부지구 항공·반항공사단 산하 추격습격기연대를 시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얼마 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자 추측 기사가 난무했다. 집권 후 그가 한 번도 태양절(4월 15일 김일성 생일) 행사를 거른 적이 없는 데다, 이날 이후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그에게 유고 사태가 발생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증폭됐다. 그러나 4월 11일 노동당 중앙위 본부청사에서 당 정치국 회의를 주재한 이후 20일 만인 5월 1일 순천 비료공장 준공식에 김 위원장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상황이 일단락됐다. 그러자 여당 정치인들은 김정은의 건강 이상설을 제기한 야당 정치인들에게 비난을 퍼부으며 사과를 촉구하고 심지어 징계를 요구하기까지 했다.
 

북한 급변사태에 대응 잘못하면 한국마저 위태로워짐에도
여당 일각서는 절대 발생할 수 없다는 희망적 사고에 빠져
우리는 한·미 동맹 차원에서 대응하는 게 가장 현실적
코로나 이후 유동적 동북아 상황 맞아 한·미 머리 맞대야

그러면 우리는 김정은이 또다시 공식 석상에 장시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안심하고 있으면 되는가? 170㎝ 정도의 키에 몸무게가 130㎏이 넘고 심혈관 계통이 약한 가족력이 있는 데다 술과 담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시간문제다. 김 위원장에게 유고 사태가 생기게 되면 ‘백두혈통’을 가진 누군가에게 권력이 이양되거나 집단지도체제를 거칠 수 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큰 정치적 혼란이 생길 수도 있다.
 
북한이 왕조체제이건 신정체제이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더욱이 집권 초기 반대파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을 단행하고 현재까지도 공포정치를 해오고 있는 김정은은 코로나19 사태로 중국과의 국경까지 닫아버린 상태에서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역사상 가장 강력하다는 유엔 안보리 대북 경제 제재를 조금이라도 피할 수 있는 구멍이 바로 북·중 국경이었다. 그래서 일부 전문가들은 대북 제재 효과가 거의 없다고까지 얘기했다. 
 
김정은 체제 시한폭탄 가동 중
 
그런데 코로나19 유입을 막기 위해 북한 당국이 직접 나서 중국과의 국경을 닫아버렸다. 그 결과 중국과의 밀무역을 통해 주민 생계를 책임져 온 장마당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북한 당국이 나서 장마당 물품 가격을 통제하고 있다고 한다.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북한 주민은 코로나19로 죽을 것인가, 굶주림으로 죽을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놓일 수 있다. 김정은 체제에 대한 시한폭탄이 가동 중인 셈이다.
 
2016년 7월 경북 포항 수성리 해병대 훈련장에서 실시된 한·미 연합공지전투훈련에 참가한 해병대 K-1 전차부대의 사격 훈련. [중앙포토]

2016년 7월 경북 포항 수성리 해병대 훈련장에서 실시된 한·미 연합공지전투훈련에 참가한 해병대 K-1 전차부대의 사격 훈련. [중앙포토]

북한 체제가 김정은 유고 사태에 철저히 대비해 정치적 격변을 방지할 수 있다면 우리가 할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큰 혼란, 즉 급변사태(contingency)가 발생한다면 수수방관할 수만은 없다. 급변 사태는 대내적으로 통치행정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군 지도부의 결집력 약화가 겹쳐진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를 가리킨다. 이러한 사태는 정권 내부의 결속력 약화와 체제 이반 현상이 위험 수준에 도달했을 때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정권이 이러한 현상을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상태, 즉 임계점(臨界點·tipping point)을 지나면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최근 김정은의 잠행(潛行)에 대해 건강 이상설을 언급한 언론과 야당을 비판한 여당 인사들은 북한 급변사태가 절대로 발생할 수 없거나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희망적 사고’를 하고 있다. 청와대까지 이 같은 생각을 공유한다면 북한 급변사태 시 정부가 제대로 대응을 못 해 우왕좌왕하다가 한국마저 위태로운 상태로 몰고 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대북 정보 판단에 있어 신중함을 견지하면서 다양한 급변 시나리오에 철저히 대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 소명의식을 갖고 급변사태를 한반도 통일로 연결할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북한 내부 상황이 비교적 안정적인데 통일로 연결하려 뛰어드는 것도 무모한 일이지만, 중국이 군대를 북한에 진입시키려 할 정도로 상황이 급박한데도 우리 정부가 수수방관하다 통일의 기회를 놓치는 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다.
 
결국 한·미 동맹 차원에서 대비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다. 미국은 급변사태 발생 시 상황이 통제 불능 상태로 악화하지 않도록 일차적 관심을 집중할 것이다. 이를 위해 핵무기 통제, 중국의 군사적 개입 억제, 대규모 난민 발생 방지에 역점을 둘 것이다. 외부 세력의 개입이 불가피할 경우 유엔을 통할 것인지 미국이 개입을 주도할 것인지에 관해 동맹국과 협의할 것이다.
  
급변사태 때 미국은 핵무기 통제에 역점
 
여기서 한국의 입장이 중요하다. 한국은 현상 변경(통일)을 강하게 원하는데 주변국들이 현상 유지(분단)를 선호할 경우 미국은 (독일 통일의 경우처럼) 주변국 개입 통제에 나설 것이다. 그러나 한국 역시 현상 유지를 원한다면 굳이 미국이 나서서 한반도 통일을 도모하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통일이 한국에서 이념을 초월한 과제인지 아니면 보수 진영만 원하는 것인지 궁금해한다. 급변사태 시 한국 정부의 움직임을 보면 미국이 금방 알아차릴 것이고, 한국이 제대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거나 통일을 원치 않을 경우 (중국과의 막후 협상을 통해서라도) 분단의 지속을 택할 것이다.
 
결국 우리의 의지와 미래를 위한 대비가 가장 중요하다. 한·미 동맹 차원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방어수단과 억제책을 마련하고 북한 급변사태 시 구체적인 공조 방안을 마련해 놔야 한다. 한·미 방위비 분담 문제를 속히 해결하고, 코로나19 사태 이후 더욱 유동적인 동북아와 한반도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한·미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북한 급변사태 때 미·중의 입장과 유엔 변수
중국은 기회 있을 때마다 한반도 평화통일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해왔다. 그러나 북한 급변사태 시 한·미가 적극 대응할 경우 조·중 상호우호조약의 자동 개입 요건을 구성하는 ‘전쟁 상태’로 간주하고 군사 개입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북한을 안정적으로 통제하는 게 힘들어질 경우 유엔을 통한 다자 개입 방안을 미국에 제안할 수 있다. 중국은 미국이 최우선 순위를 두는 핵무기 시설에 대한 통제를 미국이 독점하는 걸 극도로 경계할 수 있다.
 
북한 급변사태 시 미국의 개입은 군사적 직접 개입과 정치적 간접 개입으로 나눌 수 있다. 미국은 한국·일본 등 동맹국의 지원을 바탕으로 군사적 직접 개입을 단행할 수 있다. 이게 여의치 않으면 북한 문제를 유엔에 가져가 관련국들의 조치를 촉구하는 정치적 간접 개입을 할 수 있다.
 
미국이 한·미 연합군 형태로 개입할 경우 한국군은 북한 주요 도시 점령, 북한군 무장 해제, 주민에 대한 임시 구호와 필수적 공공서비스 제공 등 민사 업무를 주로 수행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6·25전쟁 때처럼 미국이 한국군의 민사 행정권은 인정하고 정치·군사적 관할권은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에 관해 한·미의 사전 조율이 필요하다.  
 
미국의 일차적 관심은 상황 악화로 인해 휴전선 남쪽으로 군사적 침략 행위가 발생하거나 핵시설의 안정적 통제가 어려워지는 걸 방지하는 데 있다. 인도적 사태나 난민 발생으로 개입이 불가피할 경우 유엔이나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 등을 통해 개입을 시도할 수 있다.
 
미국이 북한 문제를 유엔 안보리로 가지고 가 유엔헌장 7장에 명기된 ‘평화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고 정치적 개입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미국이 북한에 대한 중국의 신속한 개입을 억제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미국이 급변사태 초기 너무 빨리 북한 문제를 유엔으로 가지고 갈 경우 중국은 북한 문제에 관해 방어적 입장에 서게 돼 미·중의 타협 가능성이 작아질 수 있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전 외교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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