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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아 되고 이마트 안돼···지원금 혼란 부른 치명적 자만

중앙일보 2020.05.18 05:00
서울의 한 대형마트 임대매장에 긴급재난지원금을 사용할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서울의 한 대형마트 임대매장에 긴급재난지원금을 사용할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현장에서] 시험 문제처럼 복잡한 긴급재난지원금

 
똑같은 명품 가방도 청담동 명품거리에서 사면 되고, 1㎞ 인근 압구정 현대백화점에서 사면 안 된다.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을 마셔도 서울에선 되고, 그 외 지역에선 안 된다. GS더프레시(구 GS슈퍼마켓)는 되고, 롯데슈퍼는 안 되며, 전신마사지 업소는 되고 발마사지 업소는 안 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침체한 내수 경기를 북돋고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국민에게 도움을 주겠다며 정부가 지난 13일부터 지급하고 있는 긴급재난지원금 얘기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무슨 출제 오류가 아닌가 싶은 시험 문제 수준으로 복잡하고 난해하다. 어려워도 선정 기준이 공정하다고 납득하면 공부해보겠지만, 이마저 선명하지 않아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18일부터 선불카드·지역사랑상품권으로도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되면서 혼란은 또 다른 국면에 들어선다. 선불카드와 지역사랑 상품권은 기존 긴급재난지원금과 사용가능한 곳이 지자체별로 또 다르기 때문이다. 
GS리테일에서 운영하는 기업형 슈퍼마켓 GS더프레시(구 GS수퍼마켓)에서 긴급재난금 사용이 가능하다는 안내문이 붙으면서 형평성 논란이 일었다. 연합뉴스

GS리테일에서 운영하는 기업형 슈퍼마켓 GS더프레시(구 GS수퍼마켓)에서 긴급재난금 사용이 가능하다는 안내문이 붙으면서 형평성 논란이 일었다. 연합뉴스

정책 취지는 지역 경제 활성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긴급재난지원금 테스트’의 시작은 단순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이 돌아가도록 제도를 설계하면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언제나 취지는 좋다. 하지만 ‘소상공인과 경쟁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곳을 재난기부금 사용처에서 빼는 건 정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대형마트와 e커머스를 뺐더니, 이곳에서 장 보는 게 가장 효율적인 일부 소비자는 난감해졌다. 대형마트에 입점한 소상공인 점포도 어디선 되고, 어디선 안된다. 무조건 대기업만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대형마트와 결제 시스템을 공유한 일부 소상공인은 재난지원금을 못 받지만, 세계 1위 가구업체 이케아는 재난지원금 수혜를 누린다.
 
이렇게 애매한 상황이 발생한 배경에는 정부의 ‘치명적 자만’이 존재한다. 오스트리아 출신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불완전한 이성의 힘을 과신해 자생적·계획적 질서를 만들어 사회를 통제하려는 합리주의자들의 사고를 치명적 자만이라고 불렀다. 공공마스크부터 공공배달 애플리케이션까지 최근 혼란을 유발한 정부 정책엔 대부분 비슷한 논리가 통용한다.
재난지원금 수령 유형. 그래픽 차준홍 기자

재난지원금 수령 유형. 그래픽 차준홍 기자

혼란의 배경은 ‘치명적 자만’ 

재난지원금 사용처. 그래픽 차준홍 기자

재난지원금 사용처. 그래픽 차준홍 기자

긴급재난지원금의 본래 취지는 ‘국민 생활 안정’과 ‘경제 회복 지원’이다. 취지만 본다면 긴급재난지원금을 수령한 소비자가 누구에게 얼마나 어떻게 쓰든 정부가 일일이 지정할 일은 아니었다. 사행산업 등 돈이 흘러가지 말아야 할 곳만 막으면 됐다. 그런데 굳이 대형마트와 대기업은 안 된다는 식으로 제한을 두면서 혼란을 자초했다. 일부 계산 빠른 소비자는 각종 제도상 허점을 찾아 틈새를 공략했다.   
문희철 산업1팀 기자

문희철 산업1팀 기자

코로나19로 인한 사상 초유의 위기 상황에서 긴급재난지원금이라는 제도를 통해 정부가 개입하기로 결정했다면, 반시장적인 행위만 가지치기 하는 수준에 그쳐야 했다.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정부의 치명적 자만심 때문에, 대다수 국민은 오늘도 어디서 긴급재난지원금을 써야 할지 알아보느라 피곤하다. 
 
문희철 산업1팀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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