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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재난기부금이라 불러라" 직장인들 지원금 눈치작전

중앙일보 2020.05.18 05:00
이마트 성수점 내 약국에 재난지원금 사용이 가능하다는 표시가 걸려 있다. 약국에선 재난지원금을 사용할 수 있지만 이마트 등 대형마트에선 사용할 수 없다. 중앙포토

이마트 성수점 내 약국에 재난지원금 사용이 가능하다는 표시가 걸려 있다. 약국에선 재난지원금을 사용할 수 있지만 이마트 등 대형마트에선 사용할 수 없다. 중앙포토

“학력고사 때 눈치작전은 저리 가라에요. 누가 먼저 (재난지원금) 기부 결정을 발표하려는지 눈치만 보고 있는 거죠.”
“숙제하려고 막 책상에 앉았는데 엄마가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면 어떤 기분인지 아시죠. 지금이 딱 그래요.”

[기업딥톡?] 재난지원금 기부 갑론을박

 
지난 14·15일 긴급재난지원금 기부에 대해서 묻자 10대 기업 관계자는 이렇게 답했다. 재난지원금 신청이 시작된 지난 11일을 시작으로 직장인 점심과 회식 자리의 최대 화두는 재난지원금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제쳤다. 
 

"차라리 서로 합의해서 같은날 기부하던지"

삼성 등 5대 그룹 일부 계열사가 임원을 상대로 재난지원금 기부를 독려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각 기업들의 눈치 게임에 불이 붙었다. 10대 기업의 A 임원은 “연말이면 삼성전자를 시작으로 주요 기업의 이웃돕기 성금 기부가 시작되는데, 이번 재난지원금 눈치작전 역시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10대 기업 임원은 좌불안석이다. 재난지원금 신청을 미룬 이도 적지 않다. B 임원은 “코로나19로 연봉 일부를 반납하는 동의서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인했는데, 재난지원금도 그래야 하는지 고민이 크다”며 “회사가 언제 기부 독려에 나설지 몰라 신청도 미뤘다”고 말했다. C 임원은 “먼저 기부한다고 발표하면 다른 기업에 욕먹고, 기부 발표가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억지로 기부했다고 또 욕을 얻어 먹을 판”이라며 “이럴 거면 차라리 서로 합의해서 같은 날 기부하면 좋겠다는 심정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왼쪽 셋째부터), 최고위원들이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긴급재난지원금 기부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왼쪽 셋째부터), 최고위원들이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긴급재난지원금 기부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재계에선 정부가 주도하는 ‘관제 기부’에 대한 불만도 터져나왔다. “청와대 등이 전면에 나서 기부하라는 시그널을 던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20대 기업의 한 팀장급 직원은 “대통령에 이어 비서실장 등 실장급 고위공무원 3명도 재난지원금을 기부했다고 청와대가 공식 브리핑을 통해 밝혔는데, 이게 기부 압박이 아니면 무엇이겠나”며 “기부라는 게 남이 모르게 하는 거 아니었나”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매니저급 직원은 “재난지원금을 지급해 경기 부양에 나선다면서 정부가 기업에 은근히 기부를 압박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앞서 청와대는 지난 7일 문재인 대통령이 재난지원금 60만원을 전액 기부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지난 15일에도 노영민 비서실장 등 실장급 고위공무원 3명이 재난지원금 전액을 기부한 사실을 공개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여당 지도부도 지난 11일 재난지원금을 신청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작성해 공개했다. 이런 이유로 '재난지원금'이 아닌 '재난기부금'이란 농담 아닌 농담도 들린다.  
 

대한상의, 경총은 임원 기부로 의견 모아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내부 회의를 열고 임원들의 재난지원금 기부를 결정한 상태다. 다른 경제단체도 재난지원금 기부와 관련해 논의를 계속하며 고민중이다.
재난지원금을 잘못 기부했다고 블라인드에 올라온 사연 중 일부. 자신을 공무원이라고 밝힌 글 작성자는 기부 취소 신청 방법을 물었다. 블라인드

재난지원금을 잘못 기부했다고 블라인드에 올라온 사연 중 일부. 자신을 공무원이라고 밝힌 글 작성자는 기부 취소 신청 방법을 물었다. 블라인드

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재난지원금 기부는 뜨거운 이슈였다. 카카오톡과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선 지난 한 주 내내 재난지원금을 신청하면서 의도하지 않게 기부 버튼을 잘못 눌렀다는 사연이 줄을 이었다. 직장인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선 “주의하세요. 재난지원금 신청할 때 전체 약관 동의하면 절대 안 됨”이란 톡을 퍼나르는 이들이 많았다. 
 
블라인드에도 재난지원금을 실수로 기부했다는 사연에 댓글이 줄을 이었다. “다들 이런 식으로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기부를 많이 하더라”, “기부 유도하는 게 문자메시지 피싱 수준이다.” “(기부 취소) 전화를 하려는데 계속 통화가 안 됐다. 문의가 폭주해서 그랬나 봐.”
 

부부싸움 끝에 절반 기부 합의도 

재난지원금 기부를 놓고 오프라인 갈등도 끊이지 않았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 재난지원금 기부에 대한 의견이 갈렸고, 가족 내 갈등으로 이어진 사례도 적지 않았다. 광화문 인근에 직장을 둔 40대 중간간부급 직장인은 “재난지원금을 기부하면 이혼도 각오하라고 세대주인 남편에게 얘기해 뒀다”고 말했다. 시중은행에 다니는 30대 직장인은 “재난지원금 기부를 놓고 와이프와 말싸움 끝에 절반만 기부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직장인 단체 카톡방에는 팀장과 직원방 사이의 온도차가 컸다. 한 대기업 팀장 단톡방에선 재난지원금 기부를 놓고 말싸움 수준의 언쟁이 오갔다. “그래도 남들보다 사정이 나은데 기부하겠다는게 잘못이냐”, “절대 안하겠다, 기부하라면 거부 투쟁에 나서겠다”는 의견이 팽팽했다. 대부분 재난지원금을 이미 신청한 과장 및 대리급 단톡방에선 헷갈리는 재난지원금 사용처로 인해 관련 기사 링크를 퍼나르는 손길이 분주했다. 
서울 성동구청이 마련한 재난지원금 전담 창구. 재난지원금 지급 신청과 상담을 돕는다. 성동구청

서울 성동구청이 마련한 재난지원금 전담 창구. 재난지원금 지급 신청과 상담을 돕는다. 성동구청

재계에선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나 임원을 중심으로 결국 재난지원금 기부를 밝힐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청와대 등 정치권에서 이어지는 기부 압박을 무시하기 힘들 것이란 이유에서다. 금융권을 중심으로 재난지원금 기부 운동이 이어지는 건 또 다른 압박이다. 신한금융과 우리금융은 지난 13일, KB금융그룹과 하나금융그룹은 지난 14일 임원을 중심으로 재난지원금 기부에 나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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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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