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주교도소 끌려온 시위대 대소변 못가려…2명은 사라졌다"

중앙일보 2020.05.18 05:00 종합 12면 지면보기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최근 옛 광주교도소에서 발견된 신원미상의 유골과 5·18과의 연관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광주교도소는 80년 5월 당시 광주시민이 계엄군에게 끌려가 고문을 당하거나 암매장을 당한 곳이어서다. 광주시는 지난해 12월 발견된 유골들과 5·18 행방불명자와의 유전자 대조를 위해 행불자 가족의 혈액채취 신청을 받고 있다.

오늘 5·18 40주년
④계엄군이 은폐한 암매장의 진실

민경덕 전 교도관 "진압 가장한 가혹행위"
5·18때 교도소서 시민들 치료…참상 목격
"신군부가 암매장 은폐"…진상 규명해야

 
5·18단체 등은 이번 유골발견을 80년 5월 광주의 진상을 규명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올해 5·18이 40주년을 맞은 상황에서도 북한 개입설이나 시민군의 교도소 습격 같은 왜곡과 폄훼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중앙일보는 새로 발굴된 군 내부문건과 관련자 증언 등을 토대로 5·18 당시 암매장의 진실과 신군부의 5·18 왜곡·폄훼 상황을 재조명했다. 〈편집자 주〉
 5·18 당시 광주교도소에서 근무했던 민경덕(72) 전 교도관이 80년 5월 당시 교도소 내부 상황을 지도를 그려가며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은 5·18 당시 숨진 광주시민들의 관. [중앙포토]

5·18 당시 광주교도소에서 근무했던 민경덕(72) 전 교도관이 80년 5월 당시 교도소 내부 상황을 지도를 그려가며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은 5·18 당시 숨진 광주시민들의 관. [중앙포토]

“대소변 못 가린 중상자 이튿날 사라졌다”

“(5·18 당시인) 80년 5월 20일 광주교도소로 끌려온 시위대 중 일부는 똥·오줌을 못 가릴 정도로 부상이 심했다. 이중 중상을 입고 창고로 내던져진 2명은 이튿날 어디론지 사라졌다.”
 
 80년 5월 당시 광주교도소에서 근무했던 민경덕(72) 전 교도관이 전한 5·18에 대한 기억이다. 민 전 교도관은 “5·18 당시 계엄군들의 행동은 시위진압을 가장한 가혹행위였다”며 “당시 교도소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시신이 교도소 안팎에 암매장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민씨는 77년 1월부터 99년 12월까지 광주교도소 의무과 등에서 근무했다. 5·18 때는 계엄군들에게 붙잡혀온 시민들을 치료하면서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직접 목격했다. 5·18 당시 계엄군은 광주교도소에 주둔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시민들을 고문하거나 학살했다.
 
 옛 광주교도소는 계엄군이 철수한 직후 교도소 관사 뒤와 인근 야산에서 모두 11구의 시신이 가매장 또는 암매장된 상태로 수습된 곳이다. 5·18 이후 보안대 자료에는 광주교도소에서 시민 28명이 숨졌다고 돼 있어 나머지 17명의 시신이 교도소 주변에 암매장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5·18 당시 계엄군이 시민을 곤봉으로 내리치고 있다. 오른쪽은 5·18 당시 계엄군과 대치한 시민들. [중앙포토]

5·18 당시 계엄군이 시민을 곤봉으로 내리치고 있다. 오른쪽은 5·18 당시 계엄군과 대치한 시민들. [중앙포토]

"계엄군 무서워 응급처치도 못해"  

 그는 최근 옛 광주교도소에서 발견된 신원미상의 유골들과 5·18 행방불명자와의 연관성에 대해 “직접 암매장 등을 목격하지는 않았지만, 가능성이 있다”며 “DNA 조사 등을 통해 반드시 규명해야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옛 광주교도소에서는 지난해 12월 19일 무연고 묘지 이장작업을 하던 중 기록에 남지 않은 유골이 무더기로 발견돼 법무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5·18 행방불명자와의 연관성을 조사 중이다.
 
 민씨는 당시 교도소로 끌려온 시민들의 인권유린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80년) 5월 20일은 월급날이었는데 퇴근 무렵 비상이 걸렸다”며 “계엄군들은 체포된 시위대를 군용트럭에 태워 끌고 온 뒤 교도소 바닥에 쌀포대처럼 내팽개쳤다. 누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확인 못 할 만큼 참혹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계엄군들이 이미 붙잡힌 시민들을 연행하면서 트럭 안에 최루탄을 쏜 사실도 증언했다. 민씨는 “당시 트럭에서는 얼굴이 피범벅인 부상자가 와르르 쏟아졌는데 대부분 의식이 없었다”며 “부상자 상태를 확인하려고 차 가까이 가보니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최루탄 가스 냄새가 났다”고 했다.
민경덕(72) 전 광주교도소 교도관이 1980년 5ㆍ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교도소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민경덕(72) 전 광주교도소 교도관이 1980년 5ㆍ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교도소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미확인 유골, 5·18 희생자일 수 있다"

 민씨는 당시 교도소로 온 시위대 중 일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도 목격했다. 그는 “당장 병원으로 옮겨야 할 중환자가 많았으나, 계엄군이 무서워 응급처치조차 제대로 못 했다”며 “대소변을 가리지 못할 정도로 중상을 입은 시민 2명은 이튿날 창고에서 사라졌다”고 말했다. 계엄군들에 의한 교도소 주변 암매장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민씨는 “계엄군이 교도관들도 감금하다시피 한 상황이라 그들이 지목한 부상자만 치료할 수 있었다”며 “계엄군의 눈치를 보다 일부 시위대만 치료를 해줬는데, 이후 사라진 중상자들이 광주교도소 곳곳에 암매장됐다는 증언이 돌았다”고 했다.
 
 그는 “당시 광주교도소 안팎으로 암매장했다는 장소만도 2년 전 발굴조사가 이뤄진 북쪽 담장과 고속도로가 있는 서쪽, 남서쪽 초소 쪽 등 여러 곳이었다”며 “서쪽 정수장 부지에는 시신을 매장했다가 5·18 직후 다시 수거했다는 이야기도 돌았다”고 했다.
 
 그는 또 “지금까지 암매장된 시신이 확인되지 않는 것은 신군부가 철저히 암매장 사실을 은폐했기 때문”이라며 “이번에 발견된 유골과 당시 사망자들과의 연관성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고 했다.
 

"교도소 암매장, 직접 봤다" 교도관도  

 광주교도소 암매장은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교도관의 증언을 통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5·18 당시 광주교도소에서 교도관으로 일했던 A씨는 “5·18 때 암매장하는 것을 직접 봤다”고 증언했다.
 
 그는 “시위대가 교도소에 끌려온 첫날(5월 20일) 시신 3구를 접견장 건너편 화장실 뒤에 옮겨놓고, 해 질 무렵 관사 바로 뒤편에 시신 1구를 묻는 것을 봤다”며 “나머지 시신도 교도소 어딘가에 암매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최근 옛 광주교도소에서 발견된 신원미상 유골들이 5·18 희생자일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했다. 그는 “최근 옛 광주교도소를 다시 찾았을 때 북쪽 암매장 추정지에 들어선 테니스장이나 내부 시설 등 지형지물이 많이 변해 있었다”며 “새로 건물을 지을 때 나온 유골을 이번에 신원미상 유골이 발견된 무연분묘에 몰래 묻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19일 옛 광주교도소에서 발견된 신원미상의 유골을 수습하고 있다. 오른쪽은 미확인 유골들이 매장된 위치. [중앙포토]

지난해 12월 19일 옛 광주교도소에서 발견된 신원미상의 유골을 수습하고 있다. 오른쪽은 미확인 유골들이 매장된 위치. [중앙포토]

 

신군부, "암매장은 없었다" 부정

 하지만 신군부는 5·18 이후 교도소 내 가혹행위나 암매장 등에 대해서는 철저히 부정해왔다. 전두환(89) 전 대통령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광주사태 당시에 나돌았던 유언비어 가운데 계엄군이 광주시민들을 마구 학살해 여기저기 암매장했다는 내용들이 있었다"며 "암매장 장소로 지목된 곳을 실제로 파헤쳐보기도 했지만 그런 주장들은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차종수 5·18 기념재단 고백과증언센터 팀장은 “5·18 때 광주교도소에서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증언이나 암매장이 이뤄졌다는 증언은 40년 동안 계속되고 있지만, 고문이나 암매장에 대한 진상규명은 시작도 못한 상태”라며 “향후 진상조사 과정에 광주교도소 가혹행위나 암매장 등에 대한 내용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최경호·최종권·진창일 기자, 김민상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