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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압수·뇌출혈…전두환 정권 때 국내 첫 5·18 영화 만든 김태영 감독

중앙일보 2020.05.18 00:03 종합 18면 지면보기
1987년 단편 ‘칸트씨의 발표회’는 5·18 시민군의 끝나지 않는 아픔을 그렸다. [사진 인디컴]

1987년 단편 ‘칸트씨의 발표회’는 5·18 시민군의 끝나지 않는 아픔을 그렸다. [사진 인디컴]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시민군에 참여했던 청년은 누나의 죽음과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이상자가 되어 서울을 떠돈다. (‘칸트씨의 발표회’)
 

‘칸트씨의 발표회’ 등 2편 관객 만나
‘황무지’는 31년 만에 정부기관 상영

광주진압 중 한 소녀를 사살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던 공수대원은 탈영 후 광주 망월동의 무명열사 묘지에서 광주의 진실을 폭로한 유인물을 뿌리고는 분신자살한다. (‘황무지’)
 
한국영화 최초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김태영(62) 감독 단편 ‘칸트씨의 발표회’(1987)와 장편 ‘황무지’(1988)가 5·18 40주년을 맞은 이달 서울 한국영상자료원,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상영된다.
 
‘칸트씨…’는 2년 전 영상자료원 등에서 몇 차례 상영됐지만, ‘황무지’는 1989년 상영 불가 처분을 받은 지 31년만의 정부기관 공식 상영이다. 광주진압 계엄군의 양심 선언을 그린 이 16㎜ 저예산 영화는 그해 5월 광주에서 첫 공개 하려 했지만, 당시 문화공보부와 광주시청의 상영중단 압박 속에 투자사에 필름을 빼앗겼다. 닷새 뒤 서울 혜화동 상영에선 이 영화 비디오테이프마저 문공부에 압수됐다. 관객과 만난 건 2000년대 초 서울 아트시네마의 기획전 상영이 유일하다.
 
김태영 감독

김태영 감독

14일 서울 마포구의 독립 제작사 인디컴 사무실에서 만난 김 감독은 “그 당시 상영 불가로 만든 국가기관과 광주에서 최초 공개 상영해준다니까, 너무나…” 말을 삼키다 “항상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전화위복이 온다”며 활짝 웃었다.
 
그는 17년 전 뮤지컬 영화 ‘미스터 레이디’ 제작 중 뇌출혈로 3급 장애를 얻었다. 오른팔과 다리가 경직되며 평생 지팡이를 짚게 됐다.
 
생애 수차례 파산 중 첫 번째가 ‘황무지’였다. 그는 MBC에서 방송 FD로 3년간 일하다 1987년 퇴사 후 ‘칸트씨…’에 매진했다. 이듬해 ‘칸트씨…’가 한국 단편 최초로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호평 받은 뒤로 ‘황무지’ 압수사태가 닥쳤다. 제작비에 투자한 집 보증금 2000만원 등 전 재산을 날리고 지인 집에 1년 반을 얹혀살았다. 1994년엔 서울 아현동 가스폭발 사고로 집이 불타면서 ‘칸트씨…’ 자료들마저 소실됐다.
 
김 감독은 ‘칸트씨…’ ‘황무지’는 만들어야만 했던 영화였다고 했다. “병사들의 양심선언이 있었다면 우리나라가 이렇게까지 양분되진 않았을 텐데. 1985년 출간된 황석영님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광주 민주항쟁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 기록물)를 보자마자 큰 충격을 받았고 꼭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했죠.”
 
1987년 6월 항쟁이 끝나고 잠시 유화국면이 펼쳐지던 시기였다. 35분여 단편 ‘칸트씨…’엔 그가 광주의 진실에 받은 충격이 고스란히 담겼다. 김 감독은 “타는 목마름으로 만들었다”고 돌이켰다.
 
장편 ‘황무지’는 더 직설적이다. 주인공 이름은 침묵하던 서울시민에게 광주 비극을 폭로하며 투신자살한 김의기 열사를 추모하는 뜻에서 따왔다. ‘황무지’는 군산 옥구 실버타운, 의정부, 동두천 보산리 등 실제 기지촌을 돌며 찍었다. “의식 있는 한국군 소령의 도움으로 시위 장면을 의정부 미군 부대 앞에서 촬영할 수 있었다”고 한다. 기지촌 외곽에 자리한 양공주 묘, 주인공이 분신하는 망월동 묘지도 실제 장소에서 찍었다.
 
‘황무지’는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특별전 일환으로 21일 서울 마포구 영상자료원에서 상영된다. 23일엔 ‘칸트씨…’와 ‘황무지’가 연달아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상영된다. 두 편 모두 오는 25일부터 다음 달 8일까지 영상자료원 사이트에서도 온라인 상영된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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