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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불려가더니…국방부, 대규모 사격훈련 돌연 연기

중앙일보 2020.05.18 00:02 종합 14면 지면보기
국방부가 이번 주로 준비했던 대규모 해상 사격훈련을 다음 달로 연기할 방침이다. 이같은 연기 방침은 지난 8일 국방부와 군 당국 관계자들이 청와대에 불려가 북한이 반발했던 서북 도서 훈련을 보도한 경위에 대한 회의를 연 이후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17일 훈련 연기 이유를 놓고 기상 악화 때문으로 설명했지만, 일각에선 북한 눈치보기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른다.
 

서북 도서 훈련 북한이 반발하자
보도 경위 놓고 청와대서 회의

이번주 잡힌 훈련 쉬쉬하다 늦춰
일부선 “북한 눈치보기 아니냐”

당초 군은 해상 사격 훈련을 19일께로 예정했다. 장소는 경북 울진 죽변 해안이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정부 소식통은 “19일 비가 내린다는 일기 예보에 따라 당일 항해와 비행이 어렵다. 그래서 해당 훈련을 다음 달로 연기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기상 상황을 보고 정확한 일정을 조정 중이라 아직 훈련 날짜가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기상청에 따르면 19일 경북 울진에선 광역성 소나기가 내릴 수 있으며 강수 확률은 40%다.
 
이번 해상 사격 훈련은 육·해·공군이 포병 전력, 공격 헬기, 전투함, 전투기를 동원해 해상의 목표물을 향해 실사격하는 훈련이다. 이 훈련은 원래 강원도 고성 송지호 사격장에서 해왔지만 이번엔 장소를 바꿨다. 군사분계선(MDL) 40㎞ 이내 지역에선 포 사격을 금지한 9·19 남북 군사합의 때문이다. 송지호 사격장은 MDL로부터 32㎞ 정도 떨어졌다. 정부는 이에 따라 9·19 군사합의를 준수하기 위해 훈련장을 경북 해안으로 바꿨다.
 
국방부는 8일 청와대 회의 이후 군사훈련을 놓고 벙어리가 된 듯한 모습이다. 일부 언론이 19일 해상 사격 훈련을 보도한 뒤에도 국방부는 “군에서 확인해줄 사안이 아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전술·무기 등 아군 전력이 노출될 수 있어 홍보를 최소화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훈련 자체를 비공개한 데 이어 훈련 일정을 늦춘 건 ‘전력 노출 회피’나 ‘날씨 문제’가 아닌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군 바깥에선 국방부와 군 당국이 일기 예보를 명분 삼아 훈련을 늦춘 것 아니냐는 얘기도 돈다.
 
앞서 8일 청와대 회의에는 국방부와 합참, 육·해·공군의 공보 및 정책 담당자들이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호출을 받고 가 참석했다. 7일 국방부가 운영하는 국방일보가 해·공군의 서해 합동훈련 실시를 보도한 뒤 8일 북한 인민무력성이 대변인 담화를 내 “모든 것이 2018년 북남 수뇌회담 이전의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비난한 후 열린 회의다. 청와대는 북한이 비난한 당일 회의를 소집했다. 청와대는 회의에서 국방부와 군 당국에 국방일보 보도 경위를 물은 뒤 ‘향후 민감 사안에 대해선 청와대 등 관계 부처와 사전 협의를 강화한다’는 결론을 내놨다.
 
이후 국방부는 훈련 자체에 대한 언급을 꺼리는 분위기다. 반면 북한은 그간 북한군 훈련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한국군 훈련은 ‘호전적 행위’, 또는 ‘군사합의 위반’으로 비난해 왔다. 군 안팎에선 청와대가 북한의 9·19 군사합의 위반은 적극 거론하지 않으면서 아군의 군사훈련 보도 등엔 참견하는 모양새라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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