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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패 동원한 보안사에 필름 뺏겨…31년만에 빛 본 5·18 영화

중앙일보 2020.05.17 12:16
단편영화 '칸트씨의 발표회'는 5.18 시민군의 끝나지 않는 아픔을 그렸다. [사진 인디컴]

단편영화 '칸트씨의 발표회'는 5.18 시민군의 끝나지 않는 아픔을 그렸다. [사진 인디컴]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시민군에 참여했던 청년은 누나의 죽음과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이상자가 되어 서울을 떠돈다.(‘칸트씨의 발표회’)  
광주진압 중 한 소녀를 사살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던 공수대원은 탈영 후 광주 망월동의 무명열사 묘지에서 광주의 진실을 폭로한 유인물을 뿌리고는 분신자살한다.(‘황무지’)

5·18 40주년 기념 서울·광주 상영
'칸트씨…' '황무지' 김태영 감독
'황무지'는 89년 필름 압수 후
31년만에 정부 최초 공개 상영

 
전두환 독재정권 시기에 한국영화 최초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김태영(62) 감독 단편 ‘칸트씨의 발표회’(1987)와 장편 ‘황무지’(1988)가 5‧18 40주년을 맞은 이달 서울 한국영상자료원,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상영된다.  
 

89년 광주서 필름 빼앗긴 ‘황무지’

영화 '황무지'는 1980년 5월 광주 학살에 가담한 계엄군이 죄책감에 시달리며 탈영 후 학살의 진실을 폭로하게 되는 여정을 그렸다. [사진 인디컴]

영화 '황무지'는 1980년 5월 광주 학살에 가담한 계엄군이 죄책감에 시달리며 탈영 후 학살의 진실을 폭로하게 되는 여정을 그렸다. [사진 인디컴]

‘칸트씨…’는 2년 전 영상자료원 등에서 몇 차례 상영됐지만, ‘황무지’는 1989년 상영 불가 처분을 받은 지 31년만의 정부기관 공식 상영이다. 광주진압 계엄군의 양심가책을 그린 이 16㎜ 저예산 영화는 그해 5월 광주에서 첫 공개하려 했지만 당시 문화공보부와 광주시청의 상영중단 압박 속에 투자사에 필름을 빼앗겼다. 닷새 뒤 서울 혜화동 상영에선 이 영화 비디오테이프마저 문공부에 압수됐다. 관객과 만난 건 2000년대초 서울 아트시네마의 기획전에서 상영됐던 게 유일하다.
 

“1989년 상영하려던 광주 소극장에 갑자기 영화사 직원들이 들이닥쳐서는 상영기에 아세톤을 막 뿌리더군요. 지역 깡패까지 동원해 필름을 탈취해갔죠. 혜화동에선 문공부 직원하고 경찰 몇 사람이 와서 속수무책 빼앗겼고요. 알고 보니 문공부 뒤에 보안사가 있었죠.”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사 인디컴을 이끌고 있는 김태영 감독. 17년 전 영화 제작 도중 뇌출혈로 몸 오른쪽이 마비되는 3급 장애를 얻으며 지팡이에 의지하게됐다. 그럼에도 "쓰러지고 2년간은 사람들과 소통이 잘 안 됐는데 이젠 말도 하고 오른팔도 굽혀진다. 하나님이 조금씩 길을 열어주시는 것 같다"며 밝게 웃었다. [사진 인디컴]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사 인디컴을 이끌고 있는 김태영 감독. 17년 전 영화 제작 도중 뇌출혈로 몸 오른쪽이 마비되는 3급 장애를 얻으며 지팡이에 의지하게됐다. 그럼에도 "쓰러지고 2년간은 사람들과 소통이 잘 안 됐는데 이젠 말도 하고 오른팔도 굽혀진다. 하나님이 조금씩 길을 열어주시는 것 같다"며 밝게 웃었다. [사진 인디컴]

14일 서울 마포구의 독립 제작사 인디컴 사무실에서 만난 김 감독은 “그 당시 상영 불가 만들었던 국가기관과 광주에서 최초 공개 상영해준다고 하니까, 너무나…”라며 말을 삼키다 “울었다”고 털어놨다. “항상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전화위복이 온다”며 활짝 웃었다.  
 

파산 후 17년 전 뇌출혈로 3급 장애 

그는 17년 전 뮤지컬 영화 ‘미스터 레이디’ 제작 도중 뇌출혈로 3급 장애를 얻었다. 오른팔과 다리가 경직되며 평생 지팡이를 짚게 됐다.  
 
생애 수차례 파산 중 첫 번째가 ‘황무지’였다. 그는 MBC에서 방송 FD로 3년간 일하다 1987년 퇴사 후 ‘칸트씨…’에 매진했다. 이듬해 ‘칸트씨…'가 한국 단편 최초로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호평 받은 뒤로 ‘황무지’ 압수사태가 닥쳤다. 제작비에 투자한 집 보증금 2000만원 등 전재산을 날리고 지인 집에 1년 반을 얹혀살았다. 1994년엔 서울 아현동 가스폭발 사고로 집이 불타면서 ‘칸트씨…’ 자료들마저 소실됐다.  
'황무지'(1988) 촬영 당시 현장에서 메가폰을 잡은 김태영 감독의 모습이다. [사진 인디컴]

'황무지'(1988) 촬영 당시 현장에서 메가폰을 잡은 김태영 감독의 모습이다. [사진 인디컴]

 

공수부대원 양심선언 있었다면…

그럼에도 ‘칸트씨…’ ‘황무지’는 만들어야만 했던 영화였다고 했다. “병사들의 양심선언이 있었다면 우리나라가 이렇게까지 양분되진 않았을 텐데. 1985년 출간된 황석영님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광주 민주항쟁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 기록물)를 보자마자 큰 충격을 받았고 꼭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했죠.”
 
1987년 6월 항쟁이 끝나고 잠시 유화국면이 펼쳐지던 시기였다. 35분여 단편 ‘칸트씨…’엔 그가 광주의 진실에 받은 충격이 고스란히 담겼다. ‘칸트씨’라 불리는 청년은 함께 광주 시민군을 하다 붙잡혀가 가슴이 잘려 죽은 누이를 슬퍼한다. 고문실에서 벌거벗고 거꾸로 매달린 채 물고문 당하는 모습, 저수지에서 비닐에 싸여 발견된 신원불명 시체도 등장한다. 김 감독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빗댄 것이었다”면서 “오직 타는 목마름으로 만들었다”고 돌이켰다.  
단편 '칸트씨의 발표회'(사진)와 장편 '황무지' 모두 배우 조선묵이 주연을 맡았다. 다른 역할은 대부분 서갑숙, 전무송 등 MBC 연기자들이 무보수로 연기했다. [사진 인디컴]

단편 '칸트씨의 발표회'(사진)와 장편 '황무지' 모두 배우 조선묵이 주연을 맡았다. 다른 역할은 대부분 서갑숙, 전무송 등 MBC 연기자들이 무보수로 연기했다. [사진 인디컴]

 

단편 ‘칸트씨…'는 박종철 열사 추모

영화엔 국군의 날 여의도광장에서 거행되던 군인들의 제식 훈련, 88올림픽 개최를 위해 마구잡이로 철거된 서울 상계동 달동네 폐허 등 그해 서울의 실제 풍경도 새겼다. 1980년 5월 광주 시민들의 관이 끝도 없이 늘어선 자료화면은 MBC 재직 당시 자료실에서 얻었단다.
 
장편 ‘황무지’는 더 직설적이다. 주인공 이름은 침묵하던 서울시민에게 광주 비극을 폭로하며 투신자살했던 김의기 열사를 추모하는 뜻에서 따왔다. 광주 진압군에서 탈영한 주인공이 군산 미군 기지촌에 숨어들어 미군의 만행을 목도한다는 설정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한국군대 동원을 승인한 미국의 문제를 비판하고자” 택했다. 말 못하는 장애인을 나이프 게임 과녁으로 삼고, 살인까지 저지르는 미군 병사의 이름 ‘라이건’은 거짓말(Lie‧라이)과 총(Gun‧건)의 합성어. 당시 “거짓말하는 미국 대통령 도널드 레이건”에게서 땄단다. 베트남전 후유증으로 정신을 놓은 참전용사는 “박정희 나오라구 그래! 두환이두 안 무섭다구” 분노를 터뜨린다.  
영화 '황무지에서 광주 진압 후 탈영한 주인공이 숨어든 군산 미군 기지촌에서 미군에 의해 살해당한 이의 장례를 치르는 장면이다. 맨 앞에 사진을 든 배우가 서갑숙이다. [사진 인디컴]

영화 '황무지에서 광주 진압 후 탈영한 주인공이 숨어든 군산 미군 기지촌에서 미군에 의해 살해당한 이의 장례를 치르는 장면이다. 맨 앞에 사진을 든 배우가 서갑숙이다. [사진 인디컴]

 

기지촌 무대로 “전두환 군대 동원 승인한 미국 비판”

‘황무지’는 군산 옥구 실버타운, 의정부, 동두천 보산리 등 실제 기지촌을 돌며 찍었다. “의식 있는 한국군 소령의 도움으로 시위 장면을 의정부 미군부대 앞에서 촬영할 수 있었”단다. 기지촌 외곽에 자리한 양공주 묘, 주인공이 분신하는 망월동 묘지도 실제 장소에서 찍었다.  
 
“제가 운동이나 한국 사회를 전혀 몰랐어요.” 이런 영화들을 만든 계기를 묻자 김 감독이 유년시절 기억을 떠올렸다. 그의 아버지는 이북 출신. 반탁운동 후 북한에 머물다가 1951년 1‧4후퇴 때 월남해 전쟁 중에 장교시험에 합격했다. “아버지가 토목업계 유명한 분이에요. 5‧16 쿠데타엔 가담 안 하셨지만, 박정희 정권 때 공병대위로 군에 있으면서 워커힐 건설 총책임을 맡았죠.”  
 

대학가 음악다방 DJ 하다 시대 눈떠 

집안형편은 넉넉했지만 새어머니가 계속 바뀌었다. 고교시절 아버지와 불화로 가출한 김 감독은 고2 때 자퇴했다. 종로에서 섬유부품 가게에서 월급 6000원에 먹고 자며 검정고시를 봤다. 이어 을지로 등 유명 음악다방 보조를 거쳐 DJ 활동을 시작했다. “숙대 앞 음악다방에선 한 달에 5만원을 줬어요. 대학생들과도 친해졌는데 어느 날 시위를 하는 거예요. 점점 격렬해지더니 전경들이 도망가는 여대생들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질질 끌고 가요. 서울역에선 버스가 불타서 넘어져 있고 인산인해였어요. 1980년 5월이었죠. 야, 진짜 한국사회에 문제가 있나보다. 그전까진 먹고 사는 게 먼저였는데 공부 좀 해야겠다, 싶었죠.”
 
이듬해 서울예대 방송연예과 81학번에 입학해 PD의 꿈을 키웠다.1984년 MBC에 입사해선 ‘조선왕조 500년’ ‘전원일기’ ‘설중매’ ‘호랑이 선생님’ 등의 FD로 일하며 서울예대 영화과에 편입해 공부를 계속했다. 밤엔 종로‧명동의 음악다방 DJ로 일했다. 다방 월급을 보태 매년 사회적 주제의 단편도 꾸준히 만들었다. “단편상은 거의 휩쓸었죠. 당시 라이벌이 중앙대의 강제규였어요.” 
김태영 감독이 독립 다큐멘터리 PD로 활동하던 1995년 KBS 영화탄생 100주년 기념 다큐 '세계영화기행'에서 중국 배우 공리를 만난 모습이다. [사진 인디컴]

김태영 감독이 독립 다큐멘터리 PD로 활동하던 1995년 KBS 영화탄생 100주년 기념 다큐 '세계영화기행'에서 중국 배우 공리를 만난 모습이다. [사진 인디컴]

 
사실 ‘칸트씨…’는 비슷한 내용의 단편을 배우 최민수 주연으로 먼저 찍었다. 1985년 단편 ‘관찰노트’다. 이 영화 원본을 택시에서 잃어버리며 새로 다듬어 만든 게 ‘칸트씨…’였다.  
 

독립 다큐 만들며 베트남전 고엽제 문제 폭로 

그는 독립 다큐 PD로 더 이름났다. KBS 한‧베 슈교 특집 다큐 ‘베트남 전쟁, 그 후 17년’(1993)은 베트남 전쟁영웅 보겐잡 장군을 한국 최초 인터뷰하고 당시 미군 고엽제가 빚어낸 기형아 비극을 폭로하며 백상예술대상 TV비극부문상을 차지했다. 영화탄생 100주년 20부작 다큐 ‘세계영화기행’(1995)으로 문화체육부장관 표창을 받았고 ‘카리브해의 고도, 쿠바’(1998)까지 세 편 연달아 한국방송대상 외주제작부문상도 받았다.  
김태영 감독이 1993년 방영된 KBS 다큐 '베트남 전쟁, 그 후 17년'으로 현지에서 만난 보겐잡 장군. 김 감독은 보겐잡 장군 단독 인터뷰와 고엽제의 무서움을 알린 이 3부작 다큐로 당시 백상예술대상 TV비극부문상, 한국방송대상 외주제작부문상을 수상했다. [사진 인디컴]

김태영 감독이 1993년 방영된 KBS 다큐 '베트남 전쟁, 그 후 17년'으로 현지에서 만난 보겐잡 장군. 김 감독은 보겐잡 장군 단독 인터뷰와 고엽제의 무서움을 알린 이 3부작 다큐로 당시 백상예술대상 TV비극부문상, 한국방송대상 외주제작부문상을 수상했다. [사진 인디컴]

 
이후 한반도가 여전히 일제 치하라는 상상 속에 일제 만행을 비판한 총제작비 80억원 판타지 대작 ‘2009 로스트 메모리즈’(감독 이시명)로 영화 제작도 시작했다. 배우 장동건과 함께 일본 배우 나카무라 토오루, 거장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출연을 성사시켜 대종상 신인감독상‧ 시각효과상 등 4관왕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어 도전한 안성기 주연 ‘미스터 레이디’(감독 조명남)는 자금 부족으로 제작이 중단됐고 뇌병변이 함께 닥쳤다.
 

자살충동 속 만든 자전적 다큐 ‘딜쿠샤’로 재기

집세가 밀려 고시원으로 쫓겨났을 땐 자살충동도 느꼈다. 인생을 정리한다는 심정으로 그간의 파란만장한 사연을 담아 만든 초저예산 판타지 다큐 ‘딜쿠샤’는 5년 전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재기의 발판이 됐다. 
김태영 감독의 자전적 판타지 다큐 '딜쿠샤'에 삽입된 미완성 제작작 '미스터 레이디' 한 장면. 배우 안성기가 앵벌이 두목 역할을 맡아 한국 최초 뮤지컬 영화를 표방했지만 촬영 70% 정도에서 중단되고 말았다. [사진 인디컴]

김태영 감독의 자전적 판타지 다큐 '딜쿠샤'에 삽입된 미완성 제작작 '미스터 레이디' 한 장면. 배우 안성기가 앵벌이 두목 역할을 맡아 한국 최초 뮤지컬 영화를 표방했지만 촬영 70% 정도에서 중단되고 말았다. [사진 인디컴]

 
미국역사의 폭력을 고발한 쿠바 다큐 거장 산티아고 알바레즈 감독의 가르침을 지론삼아 다큐 연출을 쉬지 않았던 김 감독은 이번 5‧18 영화 상영이 더욱 의미 깊다고 했다.  
 
“5·18 때 광주에 군병력이 삼천몇백 명이 투입됐어요. 명령에 의해서 했지만 그 명령이 잘못된 명령이었잖아요. 공개적인 양심선언하는 분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좋겠어요.”
 
‘황무지’는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특별전 일환으로 21일 서울 마포구 영상자료원에서 상영된다. 23일 ‘칸트씨…’와 ‘황무지’가 연달아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상영된 뒤엔 김 감독이 관객과 대화도 나눈다. 직접 가지 못한다면 온라인으로 볼 기회도 있다. 두 편 모두 오는 25일부터 다음 달 8일까지 영상자료원 사이트를 통해 온라인 상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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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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