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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 中가던 비닐 꿈틀…그속엔 '코로나 숙주' 천산갑 있었다

중앙일보 2020.05.16 16:00
 

동물을 뜻하는 ‘애니멀(animal)’은 영혼을 의미하는 라틴어 ‘아니마(anima)’에서 유래했습니다. 인간이 그렇듯, 지구상 모든 생물도 그들의 스토리가 있죠. 동물을 사랑하는 중앙일보 기자들이 만든 ‘애니띵’은 동물과 자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애니띵]바이러스 부른 야생동물 밀매의 실체

중국 광저우 교외의 한 식당에서 한 남성이 요리를 위해 천산갑을 도축하려는 모습. 이 식당에서는 천산갑 고기를 kg당 46만 원에 판매했다. AP=연합뉴스

중국 광저우 교외의 한 식당에서 한 남성이 요리를 위해 천산갑을 도축하려는 모습. 이 식당에서는 천산갑 고기를 kg당 46만 원에 판매했다. AP=연합뉴스

깜깜한 밤. 비닐봉지 안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립니다. 비닐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꽉 묶인 매듭 때문에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가위로 비닐을 뜯자 작은 동물 한 마리가 몸을 둘둘 만 채로 있습니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천산갑입니다.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어린 천산갑은 급히 치료를 받고 안전한 곳으로 이송됩니다.
 
중국 국경으로 넘어가기 직전 비닐 봉지 안에서 구출된 새끼 천산갑. Save Vietnam's Wildlife

중국 국경으로 넘어가기 직전 비닐 봉지 안에서 구출된 새끼 천산갑. Save Vietnam's Wildlife

베트남의 한 동물보호단체가 밀매 대상이었던 39마리의 천산갑을 구조하는 모습입니다. 이들은 중국 국경으로 가는 도중에 극적으로 구조됐습니다. 하지만 한 마리는 이미 구조되기 전에 싸늘하게 죽어 있었습니다.

 
#자세한 스토리는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몸에 좋다는 미신에…100만 마리 밀매

베트남으로 밀매되는 과정에서 적발된 천산갑 비늘. 신화통신=연합뉴스

베트남으로 밀매되는 과정에서 적발된 천산갑 비늘. 신화통신=연합뉴스

천산갑이라는 동물이 다소 낯설게 느껴지실 텐데요. 겉모습만 보면 파충류처럼 생겼지만, 실은 몸 전체가 비늘로 덮인 유일한 포유류입니다. 개미를 주로 먹고 생긴 것도 개미핥기와 닮아서 ‘비늘로 덮인 개미핥기’라는 별명도 있죠.
 
위험한 상황에 부닥치면 몸을 돌돌 말아서 딱딱한 비늘로 자신을 보호하는데요. 이렇게 온순한 성격과 비늘이 몸에 좋다는 미신 때문에 밀매업자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됐습니다.
  
2000년 이후 100만 마리 이상의 천산갑이 불법으로 거래됐다고 하는데요. 주로 중국과 베트남에서 거래되는데 비늘은 의약품, 손톱은 장신구로 사용됩니다.

  

야생 침범해 바이러스 고속도로 깔아 

미얀마의 한 시장에서 천산갑의 비늘 등을 판매하고 있다. WCS

미얀마의 한 시장에서 천산갑의 비늘 등을 판매하고 있다. WCS

천산갑이 불쌍하긴 한데, 나랑 무슨 상관있냐고요? 상관있습니다. 이런 야생동물 거래가 지금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를 포함해 수많은 바이러스를 불러왔기 때문이죠.
  
사람에게 발생하는 감염병의 70% 이상이 동물, 그중에서도 특히 야생동물로부터 나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역시 박쥐에서 천산갑을 거쳐 사람에게 전파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바이러스의 근원인 동물을 원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결국 바이러스 재앙을 불러온 건 인간이니까요.

  
서식지 파괴→야생동물 밀매→동물 시장→인수공통감염병 전파로 이어지는 전염병의 경로. WWF 제공

서식지 파괴→야생동물 밀매→동물 시장→인수공통감염병 전파로 이어지는 전염병의 경로. WWF 제공

야생에는 우리가 다 알지도 못할 정도로 수많은 바이러스가 있습니다. 그들은 야생동물을 숙주로 삼아 존재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야생동물을 포획하거나 잡아먹으면서 접촉이 많아지면 바이러스는 인간이라는 새로운 숙주로 옮겨 갈 기회를 얻는 거죠. 이른바 ‘스필오버’ 효과입니다.

 
결국, 야생의 영역을 침범한 인간이 그곳에서 잡은 동물을 거래하고 시장에 판매하면서 일종의 바이러스 고속도로를 깔아준 셈이죠.

  
인도네시아의 한 시장에서 박쥐 고기를 판매하고 있다. WCS

인도네시아의 한 시장에서 박쥐 고기를 판매하고 있다. WCS

세계자연기금(WWF)에 따르면 불법 야생동물 거래 규모는 일 년에 약 200억 달러에 이릅니다. 마약, 밀입국, 위조에 이어 전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규모의 불법거래 시장이죠.  
  
이렇게 거래되는 야생동물 중 상당수는 웻 마켓(Wet Market)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웻 마켓이란 직접 고객이 보는 앞에서 가축을 도살해 판매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죠.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가장 널리 퍼져 있습니다.  
  

중국 야생동물 산업 90조…블랙스완 잡아먹기도

중국 우한 수산물 시장 내 야생동물을 파는 상점 메뉴판. 이 메뉴판에는 야생 오소리, 흰코사향고양이, 대나무쥐, 도마뱀, 여우, 코알라 등 100여 종류에 달하는 각종 야생동물의 가격이 나열돼 있다. 웨이보

중국 우한 수산물 시장 내 야생동물을 파는 상점 메뉴판. 이 메뉴판에는 야생 오소리, 흰코사향고양이, 대나무쥐, 도마뱀, 여우, 코알라 등 100여 종류에 달하는 각종 야생동물의 가격이 나열돼 있다. 웨이보

중국 우한 수산물 시장도 대표적인 웻 마켓이죠. 코로나19는 이곳에서 시작됐다고 추정됩니다. 한 상점의 메뉴판을 보면 100종이 넘는 야생동물들을 도축해 팔고 있고, 시장 여기저기 동물의 피가 묻어 있습니다.
 
중국의 야생동물 관련 산업은 90조 원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입니다. 중국은 야생동물들을 약재, 음식, 옷에서부터 연구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용도로 활용했습니다. 야생동물이 신선하다는 인식 때문에 식재료로도 가축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습니다.

  
코로나19 이후 논란이 커지자 중국 정부는 야생 동물 거래를 임시 중단했는데요. 그렇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웅담 성분이 포함된 중의학 약물을 코로나19 치료제로 권장하는 등 모순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중국 저장성에서 한 남성이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블랙 스완을 잡아먹는 일까지 있었는데요. 호수에 사는 블랙스완을 각목으로 때려잡은 이 남성은 “향은 좋았는데 고기는 거친 게 맛이 없다”는 황당한 맛 평가까지 했습니다.
  
결국 또 다른 바이러스의 비극을 막으려면 이렇게 뿌리 깊은 야생동물 보신 문화를 바꾸는 것은 물론 밀렵과 밀매를 강력하게 막아야 합니다.

 
수의사인 이영란 세계자연기금(WWF) 해양보전프로그램 팀장은 “중국에서는 식용뿐 아니라 부의 과시를 위해 애완용으로 야생동물 거래가 여전히 많이 이뤄지고 있다”며 “야생동물 밀매가 단순히 한 지역, 국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코로나19보다 훨씬 더 심각한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영상=공성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