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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공포에 놓친 세균 "슈퍼박테리아가 코로나보다 무섭다"

중앙일보 2020.05.16 05:00
지난달 7일 오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지역거점병원인 대구 중구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서 의료진이 근무 교대를 위해 격리병동으로 향하고 있다.[뉴스1]

지난달 7일 오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지역거점병원인 대구 중구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서 의료진이 근무 교대를 위해 격리병동으로 향하고 있다.[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전세계 사망자가 30만명을 넘어선 가운데, 슈퍼박테리아(슈퍼버그·superbugs)를 조심해야 한다는 미국 감염병 전문가의 경고가 주목받고 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소장을 역임했던 줄리 거버딩 박사는 13일(현지시간) 미 경제매체 CNBC와의 인터뷰에서 "슈퍼박테리아는 코로나19와의 싸움에 숨겨진 위험요소(hidden danger)"라며 이같이 말했다.  
 
슈퍼박테리아는 다양한 항생제에 적응해 살아남은, 변이된 세균이다. 인간이 만든 의약품의 남용이 세균의 응전을 불러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된 인체는 페니실린(최초의 항생제)이 없던 시절의 인류처럼 큰 위험에 맞닥뜨린다. 항생제를 투여해도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2017년 세계보건기구(WHO) 발표에 따르면 전세계 인구 70만명이 매년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돼 사망하고 있다.
 

"슈퍼박테리아로 인한 사망자 수 걱정"

거버딩 박사는 미국에서 슈퍼박테리아로 인한 사망자가 코로나19 사망자보다 많이 나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코로나19로 장기 입원한 환자 7명 중 1명에게서 2차 세균감염이 일어났다는 보고가 있는데, 이때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되면 사망 확률이 치솟는다는 얘기다. 의학저널 랜싯(Lancet)에 따르면 중국 우한 내 2개 병원에서 코로나19 환자 190여명을 추적한 결과, 사망자 중 절반이 2차 세균 감염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균 감염의 많은 경우는 병원에서 이뤄진다는 보고가 있다. 유럽질병통제센터(ECDC)가 슈퍼박테리아 5종의 전염 경로를 조사했더니 전체의 75%가 의료기관으로 나타났다. 중증 코로나19 환자, 오랜 시간 병원에 입원한 환자일수록 슈퍼박테리아 감염에 더 취약해지는 이유다. 거버딩 박사는 "인공호흡기와 침습 시술(체내에 관 삽입)을 받은 환자들도 감염 위험이 크며, 몸에 칼을 댄 수술 환자 중 이미 감염 사례가 보고됐다"며 "슈퍼박테리아로 목숨을 잃을 사람의 수가 매우 염려된다"고 강조했다.
전 CDC 소장 줄리 거버딩 박사가 13일(현지시간) CNBC와 인터뷰를 하며 슈퍼박테리아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CNBC 캡처]

전 CDC 소장 줄리 거버딩 박사가 13일(현지시간) CNBC와 인터뷰를 하며 슈퍼박테리아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CNBC 캡처]

 

폐렴 유발 슈퍼박테리아로 국내서 3600명 사망

현재까지 보고된 슈퍼박테리아와 코로나19 바이러스 사이에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다. 우선 슈퍼박테리아는 세균이고 코로나19는 바이러스라는 점이 다르다. 박테리아는 숙주 없이도 생존하고 증식할 수 있는 단세포 생물(미생물)이다. 바이러스는 숙주가 있어야 증식할 수 있는 비세포 단백질 유전체다. 김우주 고려대 감염내과 교수는 15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슈퍼박테리아와 코로나19 사이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며 "다만 코로나19 환자가 병원에서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될 가능성은 경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슈퍼박테리아의 위험성에 관한 경고는 코로나19 유행 전부터 제기돼 왔다. WHO는 지난 2017년 슈퍼박테리아 12종을 발표하며 새로운 항생제 개발을 촉구했다. 아시네토박터균, 장내세균속균종, 황색포도상구균, 살모넬라균, 헬리코박터균, 폐렴구균 등이다. 이들 균은 기존 항생제를 무력화시키며 폐렴, 결핵 등 질병을 발생시킨다. 지난해 국내에서 슈퍼박테리아 감염으로 패혈증, 폐렴 등에 걸린 환자는 9000명에 달하며 이 중 40%인 36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김홍빈 분당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팀).
 
슈퍼박테리아는 코로나19 국면에서 더 위험할까? 전문가는 "미국과 한국은 상황이 다를 수 있다"고 말한다. 김우주 고려대 감염내과 교수는 "최근 손씻기와 사회적 거리 두기 등으로 국내 세균 감염이 현저히 줄었다"며 "이와 함께 병원을 찾는 세균 감염 환자도 별로 없어서 입원 환자들의 병원 감염 가능성도 줄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7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한 장례식장에서 29일(현지시간) 직원들이 시신을 냉동 트럭에 옮겨 싣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7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한 장례식장에서 29일(현지시간) 직원들이 시신을 냉동 트럭에 옮겨 싣고 있다. [AP=연합뉴스]

 

"대응 못하면 2050년엔 한해 1000만명 사망"

세균이든 바이러스든, 앞으로 인류의 목숨을 위협할 가장 큰 요소는 감염병이라고 세계 보건 전문가들은 입모아 말한다. 세균과 바이러스들도 살아남기 위해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는 2016년 보고서를 통해 인류가 항생제 내성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경우 2050년에는 전세계서 연간 1000만명이 사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암으로 인한 사망자 수(820만명)를 넘어서는 수치다. WHO는 지난 1월 "슈퍼박테리아의 진화보다 항생제 개발 속도가 늦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현재로선 손을 잘 씻고 기침 예절을 지키는 게 최선이다. 세균은 열에 약하기 때문에 음식은 충분히 익혀 먹고 물은 끓여 먹는게 좋다. 내성을 막기 위해 항생제 남용도 줄일 필요가 있다. 바이러스성 감염병인 감기에는 쓰지 말고, 세균성 감염인 경우에만 항생제를 정해진 용법대로 사용하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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