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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조국병 진단키트와 치료약

중앙선데이 2020.05.16 00:30 686호 31면 지면보기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 이상한 병이 돌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이른바 ‘몰염치병’이다. 코로나바이러스 만큼이나 전염력도 강하고 치사율은 훨씬 더 높다. 누구 하나 걸리면 그가 속한 집단, 진영으로 순식간에 퍼진다.
 

전엔 사죄하는 척이라도 했다
지금은 지적하는 상대를 욕해
조국이 몰염치병 수퍼 전파자
부끄러움 알아야 정의가 있다

전염성이 워낙 강하다 보니 좌우 동서를 가리지 않는다. 치사율은 정신적 치사율을 말한다. 몸이 아닌 마음이 죽는다. 그래서 한번 걸리면 도무지 부끄러운 줄 모른다. 오히려 적반하장 증세를 보인다. 방귀 뀐 놈이 성내고, 도둑이 매를 든다. 올바른 정신이 사망하니 더 위험한 몸이 된다.
 
우리 사회의 정의와 공정(公正), 도덕성 지수가 과거보다 추락했다고는 믿지 않는다. 예전에 비한다면 오히려 나아졌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그 정의와 공정을 삐뚜로 보는 사람들이 문제다. 그들이 바로 몰염치병 확진자들이다. 그런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걱정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예전엔 (지금보다 훨씬 공정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뭔가 잘못한 사실을 지적받으면 부끄러워하는 척이라도 했다. 처음엔 부인하다, 마지 못해 인정하고, 억지로라도 사과하며, 겉으로나마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 사안이 크다 싶으면 공직자들은 직책에서 사퇴했고, 사기업 오너들마저 명목상이긴 해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흠집 난 도덕성을 견디지 못할 만큼 깔끔한 성품의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까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중대한 잘못이 명백하게 드러나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고개를 빳빳이 세운다. 사죄는커녕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을 욕한다. 해명은커녕 제기된 문제와 상관도 없는 이슈로 상대를 몰아세우며 거품을 문다.
 
수치도 모르고 해명도 않고 사죄도 없으니 책임은 당연히 나 몰라라 한다. 그래서 위안부 문제를 다뤄온 시민단체의 잘못을 지적한 위안부 할머니가 졸지에 ‘친일’이 되고, 조국 사건으로 기소된 피의자가 공영방송에 나와 조국 보도를 비판하는 코미디가 연출되는 것이다.
 
선데이칼럼 5/16

선데이칼럼 5/16

그러한 몰염치병에는 ‘조국병’이란 별명이 붙는다. 그가 몰염치병을 유발하는 바이러스의 ‘수퍼 전파자’인 까닭이다. 그가 첫 확진자는 아니다. 그에 앞서 댓글 조작 사건으로 실형까지 선고받았던 인물은 여전히 자신의 허물을 부인하며 도지사직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우리 사회의 몰염치가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조국은 동선 자체가 달랐다. 그와 그의 가족에 걸려있는 비리 의혹이 그가 그동안 외쳐댄 비판 만큼이나 많았다. 그 중 한 가지만으로도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할 것 같은데, 그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해명 아닌 변명으로 일관했고, 지금도 “쓰러지지 않고 싸우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그런 몰염치가 그가 속한 집단, 진영으로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그들에게 맞서면 ‘적폐세력’이 되고 ‘토착왜구’가 되는 병리 현상이 그렇게 나왔다.
 
몰염치병의 급속 확산에는 대통령도 책임이 없지 않다. 국민에게는 사과 한마디 없이, 물러난 장관에게만 마음의 빚을 토로함으로써 면죄부를 줬다. 비례대표로 당선되자마자 검찰총장을 협박한 사건 피의자에게 축하 전화를 걸어 사법부를 압박한다. 여당조차도 인정하지 않는 위성정당을 기정사실로 만든 건 덤이다.
 
말이 길었지만 이 글의 목적은 몰염치병 확진자들을 비판하자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더 이상 확산을 막아 온 나라가 몰염치에 빠지는 팬데믹 상황은 막아보자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주저하지 말고 선별진료소를 찾아야 한다. 내 마음속에 부끄러움은 있는지, 혹시 증오만 남은 건 아닌지 진단을 받아야 한다. 진단 키트로는 『맹자』가 최고다.
 
누구나 정의와 공정을 외치지만 그 출발점이 염치(廉恥)라는 건 주의하지 않는다. 맹자의 말로 옮기면 수오지심(羞惡之心)이다. 맹자는 수오지심이 ‘의(義)’의 실마리라고 했다. 수오는 내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잘못을 미워한다는 뜻이다. 내것이건 남의 것이건 올바르지 못한 것은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게 곧 정의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흔히 오(惡)만 있지 수(羞)가 없다. 남의 잘못만 미워하고 자기 잘못은 부끄러운 줄 모른다는 말이다. 초기에는 ‘내로남불’ 수준에 그치지만, 심해지면 몰염치병으로 진행된다. 남의 눈 속 티끌은 보면서 제 눈의 대들보는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의와 공정을 외치니 공허하기만 할 따름이다. 염치와 수오를 염두에 두지 않고는 보수나 진보, 좌우의 구별이 의미가 없다. 그런 환자들이 활개 치는 사회에서 정의와 공정은 살아 숨 쉴 수 없다.
 
부끄러움을 알아 삼가는 출발점을 지나, 부끄럽지 않은 마음가짐으로 행동할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비로소 의, 즉 정의와 공정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의 밭을 김매려 할 게 아니라, 자기 밭의 자갈부터 골라내야 한다. 이것이 맹자의 가르침이다. 몰염치병의 진단 키트이자 치료약이기도 하다.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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