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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위협, 자본주의보다 민주주의에 더욱 치명적

중앙선데이 2020.05.16 00:21 686호 22면 지면보기

베스트셀러 작가가 본 ‘전염의 시대’

1918년 스페인 독감 유행 당시 미국 캔자스의 한 병원. [사진 내셔널 건강의료박물관]

1918년 스페인 독감 유행 당시 미국 캔자스의 한 병원. [사진 내셔널 건강의료박물관]

‘성공의 비결’은 무엇일까.
 

물리학자 출신 파올로 조르다노
‘유연한 괴물’ 자본주의는 생존
민주주의 위협세력 더 세질 것

공포는 사랑의 친구 되기 어려워
봉쇄로 집에 있어도 사랑 개선 안 돼

한국의 유행병 준비태세에 감탄
숫자 종속된 75억 인류 서로 연결

답은 ‘과감함과 속도’가 아닐까. 동서양 고전이나 자기계발서를 치열하게 읽은 독자는 아마 그렇게 답할 것이다.
 
질문에 ‘위기 때’를 덧붙여 ‘위기 때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를 묻는다면? 답은 역시 ‘과감함과 속도’가 아닐까. 한국이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전 세계 주목 대상이 된 이유 또한 과감함과 속도가 협업한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사진)의 저자인 파올로 조르다노는 과감함과 속도감이 돋보인다. 조르다노는 토리노대에서 입자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5세였던 2008년 소설 『소수(素數)의 고독』을 출간했다. 이 시대에 결코 적응하기 힘든 남녀 한 쌍의 트라우마를 형상화했다.
  
파올로 조르다노

파올로 조르다노

#42개 언어로 250만 부 이상 팔린 이 책은 이탈리아 최고 문학상인 스트레가(Strega) 상을 받았다. 2010년에는 이사벨라 로셀리니가 나오는 동명의 영화가 개봉됐다. 조르다노가 물리학과 소설 사이에서 망설이며 허송세월했으면 어쩌면 그는 세계적인 셀러브리티, 유명인은 될 수 없었다.
 
조르다노 박사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맞아서 『Nel Contagio』(우리말 번역본 제목은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를 ‘발 빠르게’ 집필했다. 36개 언어로 출간했다.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일본(9위), 네덜란드(4위), 라트비아(1위), 독일(8위) 등 세계 독서계를 강타했다. 그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답신이 정말 빨리 왔다.
 
대한민국은 왜, 그리고 어떻게 세계적인 코로나19 대응 성공 사례가 됐을까. ‘독재의 장점과 민주주의의 장점’이 극대화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조르다노 박사와 인터뷰에서 다른 그 무엇보다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서구인의 우려가 감지됐다.
 
이 책은 왜 썼는가.
“우리는 공동의 양심과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 독자들에게 강조할 말이 있다면?
“전 세계가 이번 유행병에 대한 한국의 준비태세에 대해 감탄한다. 나는 우리가 한국으로부터 배워 다음번에는 세계가 보다 잘 대비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지금 한국에 있으면 좋겠다. 한국인들에게 코로나19로 그들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인터뷰하고 싶다. 한국인들은 내가 궁금한 미래에 살고 있다.”
 
전작 『소수의 고독』과 이번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의 공통 키워드는 접속·접촉(connection)이다. 두 책 모두 ‘성장 소설’이라고 볼 수 있을 듯. 이번 사태로 세계는 ‘성인’이 될 수 있을까.
“개인이나 문명이나 성숙한 ‘성인’이 되려면, 주인공이 뭔가를 자신에 대해 배워야 한다. 특히 자의식이 강화돼야 한다. 이번에 우리 문명의 자의식이 강화될 것인가? 나는 회의적이다. 우리가 관련 사항에 대해 충분히 토론한다면 내 생각이 바뀔 수도 있겠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패러디, 혹은 영감을 받아 많은 유럽과 미국의 매체들이 ‘코로나 시대의 사랑’을 논하고 있다. 부부나 동거 중인 사람들은 이번 사태로 사랑의 영역에서 더 행복해질 것인가.
“아니다. 봉쇄령으로 집에 있더라도 사랑이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공포는 사랑의 좋은 친구, 동반자가 되기 어렵다. 공포는 섹스에 있어서 더욱 나쁜 동반자다. 거리상으로 가까운 것도 먼 것도 사람들의 사랑을 테스트한다. 사랑은 거리와 근접성 모두 필요하다. 하나만 가지고는 안 된다.”
 
코로나19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포함해 모든 것을 위협하는 듯하다. 둘 중에 어느 쪽이 더 취약한가.
“자본주의는 그다지 위협받고 있지 않다. 자본주의는 지금까지 모든 것을 이겨내고 살아남았다. 자본주의는 ‘유연한 괴물’이다. 민주주의는 생각보다 취약하다. 이번 세계적 유행병 이전에도 민주주의는 민족주의·포퓰리즘, 기술에 의한 감시의 위협을 받았다. 이들 민주주의 위협세력들은 이번 위기를 계기로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이유다.”
 
이번에 증폭된 인종주의·종족주의의 혐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보다 ‘인간적인 인간’이 될 것인가.
“이번 충격이나 고통이 우리를 보다 훌륭한 인간으로 만들 것이라는 상상은 나이브하다. 그 반대가 더 현실성이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미래 모습은 오늘의 선택에 달렸다. 선택은 우리의 질문, 우리의 학습, 우리의 토론, 우리의 정보에 달렸다.”
 
코로나19는 세계화의 본질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가. 국경 폐쇄는 무슨 뜻인가.
"폐쇄는 일시적이다. 지금까지 범유행은 세계화는 멈추지 않았다. 앞으로도 세계화는 계속될 것이다. 코로나19가 유발한 위급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상시 이동이나 저가 여행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적으로 굉장히 인기 있었던 금욕·포기(renunciation)와도 연결된다.”
 
 
#이번 책에서 ‘감염병의 수학’을 강조했다.
“수학은 우리가 모두 따라야 하는 가이드라인이다. 물론 유일한 가이드라인은 아니다. 현재 이탈리아의 상점과 산업이 다시 열렸다. 우리는 전염병이 수치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변할지 주시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숫자에 종속됐다. 앞으로 상당 기간 그러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숫자의 차원은 75억 인류가 서로 연결됐다는 것이다. 세달 안에 지구라는 행성의 대부분을 정복했다.”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민주주의의 원칙을 버리는 것은 타당한가.
“우리는 ‘건강 안보’를 위해 글로벌 태도를 바꿔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전염병에 대응하기 위한 보다 강력한 프로토콜이 필요하다. 하지만 장기적인 해결책은 제약이나 감시가 아니라 예방과 사람들의 의식이다.”
 
남을 탓하고 싶은 ‘원시적’인 충동도 있다.
“이런 상황일수록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합리성이 필요하다. 명료한 생각, 편향되지 않은 정보, 과학이 필요하다. 교육이 중요하다. 야생을 인간이 침입했을 때 전 세계적인 유행병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해야 한다. 관련 정보를 제공해야 하며 사람들은 그 정보를 듣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불행히도 우리는 이를 위한 장기적인 자세가 부족하다. 복잡한 문제를 풀어야 하지만, 우리는 대신 지금 당장 욕을 할 대상이 필요하다.”
 
많은 이들이 코로나19를 국난, 심지어는 전쟁으로 이해한다.
“그러한 비유는 물론 여러 면에서 타당하다. 많은 과학자와 정치인들도 그런 비유를 사용한다. 그런데 전쟁은 권위주의, 민족주의, 자유의 제약, 폭력의 친구다. 하지만 이번 팬데믹의 ‘보이지 않는 적’은 바이러스다. 우리가 살고 있는 생태계의 일부분이다. 바이러스는 우리를 혐오하는 생물, 적(敵)이라기보다는, 우리 생태계의 뭔가 잘못된 증상이다.”
 
이번 사태로 우리는 보다 많이 읽고 생각하고 쓰고 듣고 말할 기회를 얻었다. 우리는 기회를 선용(善用)하고 있는가.
“모르겠다. 좀 이상하지만 나는 지난 3개월 동안 별로 읽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다 깊게 의사소통했는지도 의문이다. 이번 사태를 ‘선용’한다는 것은 내게 뭔가 무거운 책임처럼 다가온다. 우리 중 누군가는 침묵하고 있을 것이며, 격리 기간에 천정을 응시하고 있을 것이다. 코로나19에 대한 모든 반응을 우리가 ‘수용’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번에 시편 90:12 “우리에게 날수를 제대로 헤아릴 줄 알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이 지혜에 이르게 하소서”와 함께하고 있다.”
 
김환영 대기자 / 중앙콘텐트랩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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