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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클은 노년기 동반자…뱃살 줄고 만성 비염도 나았다”

중앙선데이 2020.05.16 00:21 686호 28면 지면보기

[J닥터 열전] 노만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그의 인생에 자전거는 세 대뿐이었다.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생애 처음 타본 세발, 중학교 입학 선물로 아버지께 받은 두발, 그리고 10년 전 홈쇼핑에서 디지털카메라를 샀을 때 사은품으로 딸려온 자전거였다. 그마저도 타본 적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30여년간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살아온 노만희(65) 원장에게 자전거는 거리가 먼 존재였다. 노 원장은 한양의대 졸업 후 우리나라 정신건강의학과 1세대인 아버지(故 노동두 선생)의 뒤를 이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됐다. 아버지의 영향 탓일까. 자동차 접촉사고가 나도 성 한번 낸 일이 없을 정도로 심리적으로 잘 동요하지도 않는 성격이다.
 

6년 전 환갑 앞두고 라이딩 시작
이젠 130㎞ 원거리도 거뜬히 완주

허리둘레·체중 줄어 체형 바뀌어
사색하는 여유 생겨 마음도 건강

그만큼 그의 라이프스타일은 정적(靜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 번에 100㎞ 이상의 거리도 거뜬히 완주하는 ‘라이더’다. 매주 수요일이면 도로 자전거(로드바이크)로 남산을 오를 정도로 자전거는 삶의 일부가 됐다.
  
반려견 잃은 마음 빈자리 채워줘
 
노만희 원장은 ’사이클은 자신감과 건강을 유지하는 원동력이다“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노만희 원장은 ’사이클은 자신감과 건강을 유지하는 원동력이다“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자전거 타기는 걷기와 함께 의사가 환자에게 가장 많이 권하는 운동이다.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도 효율적인 유산소 운동인 까닭이다. 하지만 그는 늘 온몸으로 거부했다. “노후 건강을 위해 운동은 필요하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선택지엔 없었다. 전환점이 된 것은 앞서 라이더의 길을 걷고 있던 후배 변호사의 강력한 권유였다. 처음엔 “다른 운동도 많은데 꼭 이걸 해야 하나?” 싶었다. 노 원장이 우리 나이로 60세가 되던 해(2014년)였다.
 
본인 의지로 사이클을 시작하지 않은 건 조금 의외다.
“당시만 해도 운동을 제대로 해 본 게 없었다. 60세가 된 시점에서 운동은 해야겠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이 나이에 무슨 자전거냐’고 거절했다. 내적 갈등이 좀 있었다. 나이가 있는 만큼 운동량을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됐다.”
 
막상 타보니 어땠나.
“처음엔 모든 게 어색했다. 내가 알던 자전거와 달랐다. 배워야 할 게 많더라. 전문가한테 코치를 받기도 했다. 낮에는 시간이 없어 밤에 한강 변에서 타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남동에서 반포대교까지 3㎞ 남짓한 거리를 달리는 것도 힘들었다. 잠수교 경사길도 낑낑대며 겨우 넘었다.”
 
하지만 몸은 조금씩 적응해갔다. 한남동에서 출발해 마포, 뚝섬까지 거리를 늘려갔다. 잠실철교를 넘어 강남을 거쳐 한남대교로 돌아오는 코스도 수월해졌다. 노 원장은 “1년 동안 타니 한번 나가서 40~50㎞를 달리는 건 어렵지 않게 되더라”고 했다. 남산 코스를 타기 시작한 건 이 무렵이다. 3년 전부터는 날씨가 풀리는 3~11월까지 매주 수요일 밤에 한남동에 모여 라이딩을 즐긴다. 남산에 올라 둘레길을 두 바퀴 돌거나 남산에 오른 뒤 광화문, 청와대, 북악팔각정을 찍고 돌아오는 두 가지 코스를 탄다. 각각 왕복 14㎞, 30㎞의 코스다. 현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시기가 미뤄지고 있다.
 
경험이 쌓이다 보니 자신감이 붙었다. 이른바 ‘원정 라이딩’도 떠났다. 처음 떠난 원거리는 팔당대교를 건너 미사리를 돌아 강남 자전거 도로로 돌아오는 70㎞ 코스였다. 그 후엔 경인 아라뱃길을 거쳐 인천 정서진 왕복(90㎞), 서울~춘천(120㎞) 코스도 다녀왔다. 지금까지는 용문에서 출발해 인제군 원통리, 미시령을 거쳐 속초까지 간 약 130㎞가 최장 코스다. 제주도 한라산 해발 1100m 고지를 사이클 하나에 몸을 싣고 오르기도 했다.
 
경험이 쌓일수록 그에겐 많은 변화가 생겼다. 건강해진 것은 기본이다. 체형이 바뀌는 등 눈에 띄는 변화도 있었다. 만성으로 앓던 비염도 나았다. 2년 전 그가 13년간 키우던 알래스칸 맬러뮤트 ‘쉐도우’를 떠나보낸 슬픔을 극복하는 큰 버팀목이 되기도 했다. 노 원장은 “그 친구를 보내고 더 열심히 탔다”고 했다.
 
사이클을 탄 뒤에 달라진 점은.
“하체 힘이 좋아졌다. 전엔 허벅지 근육이 물렁했다. 다리에 근육이 붙으니 걸을 때 자신감이 생기더라. 혈색이 좋아졌다는 소리도 듣는다. 또 전엔 비염이 심했다. 사이클을 탄 후로는 재채기·콧물 등 증상이 어느 순간부터 없어졌다. 체형도 바뀌었다. 34~35인치였던 허리둘레가 32인치로, 72㎏이었던 체중은 69㎏으로 줄었고 계속 유지되고 있다. 지금은 전보다 더 건강해졌고 더 행복해졌다.”
 
사이클의 매력은.
“걷거나 차를 타고 다니면서 보는 세상과 자전거를 타면서 보는 세상은 또 다르다. 훨씬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차가 갈 수 없는, 차를 타고 가면서는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을 볼 수 있다. 특히 바람, 햇살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그것도 내 심장이 엔진이 돼서 달리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그 안에서 사색할 수 있는 여유도 갖게 된다.”
  
‘재미있게 오래’ 타는 것이 모토
 
환자에게도 권할 만할 것 같다.
“환자에게 꼭 사이클을 권하는 건 아니지만 스트레스 해소에 좋은 운동이다. 진료 볼 때 정신적 에너지만 많이 쓸 것 같지만 이것도 체력이 뒷받침해줘야 수월해진다. 모든 일이 그렇다. 근데 많은 이들이 모르는 것 같다. 젊은 사람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익명 게시판에서 자신의 성향을 감추고 지나치게 공격적이거나 자신을 미화하면서 자기 만족을 찾지만, 오히려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더 불안정해지면서 외톨이가 될 수 있다. 정신과 의사로서 걱정되는 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사이클은 나를 드러내고 마주하는 일이다. 어떤 취미를 갖든 의미를 나름대로 부여해 가면 정서적 안정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노 원장이 사이클을 타는 데는 자신만의 원칙이 있다. ‘재미있게 오래’ 타는 것이 모토다. 또 하나의 원칙은 한번 타면 끝까지 가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이클 대회 출전과 이탈리아 등 해외 유명 자전거 코스를 타는 것을 희망리스트 중 하나로 삼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는 산악자전거(MTB)에도 도전하고 있다. 사이클의 의미를 물으니 “노년기의 동반자”라고 했다. 노 원장에게 사이클은 어쩌다 만난 더할 나위 없는 평생지기다.
 
류장훈 기자 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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