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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북 고사총 공격에 고장난 기관총으로 대응한 군

중앙선데이 2020.05.16 00:21 686호 30면 지면보기
요즘 우리 군대를 보면 이러고도 나라를 지킬 수 있을까 걱정이다. 지난 3일 아침 비무장지대(DMZ)의 북한군 감시초소(GP)에서 우리 GP를 향해 14.5㎜ 고사총을 쐈다. 그러나 우리 GP는 32분이나 늑장 대응했다. 북한군이 쏜 고사총탄 4발이 우리 GP 콘크리트벽에 박히거나 탄흔을 남겼지만, 우리 GP장(소대장)은 대응사격을 곧바로 하지 않았다. 그 1차 책임이 GP장에게 있는데도 안개에 고사총을 쏜 북한군 GP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핑계로 대대장 지시를 받으려 했다.
 

북한군 묵묵부답, 합참은 오발 두둔
군 훈련 홍보에 청와대가 경위조사
코로나 추경, 국방비 대폭 삭감 위기

보고를 받은 대대장은 중기관총인 K-6로 대응사격을 지시했지만, K-6는 격발장치인 공이가 고장 나 발사되지 않았다. 그러자 연대장이 나서 K-3 경기관총으로라도 쏘라고 했다. 그래서 15발을 쐈다. 사단장도 걱정이 됐는지 북한군 고사총과 유사한 수준인 K-6를 수동으로 쏘라고 지시했다. 비례성 원칙이다. 그게 두 번째 대응사격 15발이다.
 
GP 총격 상황에서 GP장이 K-6가 안 되면 K-3로 곧바로 대응하면 되는 것을 대대-연대-사단장까지 나선 것이다. K-3의 유효사거리는 800m이지만, 최대사거리는 3.6㎞나 된다. 1.5㎞ 떨어진 북한군 GP에 경고하기에 충분하다. 유사시 적의 사격 원점이 확인되지 않을 땐 가까운 적 GP를 사격하는 게 수칙이다. 더구나 우리 GP 창문에는 적 GP를 겨냥하는 화살표까지 표시돼 있다. K-3 방아쇠만 당기면 총알이 자동으로 적 GP를 향해 날아간다.
 
그런데도 GP장은 ‘선조치 후보고’라는 교전수칙을 어겼다. 전우의 생명이 걸린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도 아이들처럼 일일이 상급자에게 물어보고 전투할지 말지를 결정한 것이다. 최근 느슨해진 군 기강과 지휘관들의 부대관리 소홀이 원인으로 보인다. 국방부가 북한군을 ‘적’으로 보는 대적관을 없애고, 장병 복지에만 매몰돼 정작 군대의 기본 임무를 잊은 게 아닌가. 이런 분위기에 일선 부대에선 지휘관이 병사들 눈치를 보며 훈련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다고 한다. 군대 기강이 엉망진창이다. 더구나 최전방에서 무기가 고장 난 것도 모르고 있었다니 더 말해 뭣하랴.
 
북한군의 GP 고사총 사격은 이런 우리 군대의 ‘전투의지’를 시험해봤을 수도 있다. 최근 북한군 정찰총국장으로 임명된 림광일 중장은 2015년 DMZ에서 ‘목함지뢰’ 도발을 기획한 인물이다. 당시 북한군은 DMZ 우리측 통로에 목함지뢰를 몰래 매설해 장병들을 다치게 했다. 이번 고사총 사격도 우발적인 오발로 충분히 위장할 수 있다. 더구나 북한군 고사총은 쏘기 전에 안전장치부터 해제해야 한다. 정말 오발이었다 해도 2~3발 쏜 뒤 멈췄어야 했다. 하지만 북한군은 고사총을 2차례나 더 쐈다. 그런데도 합참은 ‘오발’에 의한 우발적 총격이라며 ‘9·19 군사합의’는 유지되고 있다고 했다. 북한군을 두둔한 셈이다. 북한은 묵묵부답인데 합참이 북한군 대변인이라도 된 것인가.
 
이 뿐만이 아니다. 청와대는 해·공군의 서북도서 방어훈련이 국방일보에 보도됐다는 이유로 국방부와 합참, 육·해·공군 공보관계자를 불러 경위조사를 했다고 한다. 우리의 정당한 훈련이고 국민이 알아야 할 사안이다. 그런데도 북한이 비난하자 청와대 안보실 김유근 1차장이 군 공보관계자들을 탓했다는 것이다. 또 정부는 코로나 2차 추경에서 국방예산 1조4700억원 삭감에 이어 3차에도 7000억원을 더 깎을 전망이다. 국방부는 군사대비에 문제가 없다지만, F-35 도입사업 등 군 전력증강사업이 줄줄이 중단될 위기다. 군 기강은 흐트러지고, 청와대는 북한 눈치를 보며, 정부는 만만한 국방비를 줄이고 있다. 도대체 ‘튼튼한 안보’는 어디에 갔나. 더는 안보가 흔들리지 않도록 국방부는 깊이 반성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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