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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안방에 나만의 태양이 떠오른다면

중앙선데이 2020.05.16 00:20 686호 19면 지면보기
첫 증강현실 작품 ‘분더카머’를 이용해 스튜디오에 비가 오는 장면을 연출한 올라퍼 엘리아슨. [사진 Olafur Eliasson, WUNDERKAMMER, 2020]

첫 증강현실 작품 ‘분더카머’를 이용해 스튜디오에 비가 오는 장면을 연출한 올라퍼 엘리아슨. [사진 Olafur Eliasson, WUNDERKAMMER, 2020]

방 안에 구름을 띄워 비를 뿌리거나 오색찬란한 오로라를 펼쳐보면 어떤 느낌일까. 베란다에서 공중부양한 돌덩어리를 회전시키거나 한밤중 거실 천장에 노란 광채를 뿜는 태양을 띄워본다면.
 

설치미술가 올라퍼 엘리아슨
첫 증강현실 작품 ‘분더카머’ 공개

코로나19 이후 예술의 힘 더 커져
다름 포용하고 희망 찾는 계기로

덴마크 출신의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53)이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으로 마법을 부렸다. 14일(현지시각) 전세계에 공개한 그의 첫 증강현실(AR·Augmented Reality) 작품 ‘분더카머(Wunderkammer)’다. 지난 3월 현대미술작가 카우스(KAWS)의 AR 작품을 선보인 가상현실·증강현실 전문업체 어큐트아트(Acute Art)와 협업한 결과물이다. 어큐트아트 어플로 들어가 증강현실로 띄우고 싶은 ‘요소’의 이미지를 클릭하고 위치를 지정하면 된다.
 
요소는 무지개, 꽃, 퍼핀(바다오리의 일종) 등 자연물이 대부분이다. 빛과 물 같은 가장 단순한 자연을 미술관에 끌어들여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미해 완전히 새로운 지각적 체험을 선사하는 것으로 유명한 엘리아슨답다.  
 
‘호기심의 방’이라는 뜻의 ‘분더카머’는 과거 유럽의 귀족과 학자들이 자연물에서부터 예술작품까지 온갖 진기한 것들을 모아 진열한 컬렉션(박물관의 전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어큐트 아트 측은 “옛 분더카머가 지식의 지평을 넓히고 세상에 질문을 던지며 세상에 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엘리아슨의 AR ‘분더카머’와 연결된다”고 설명한다.
 
문소영 기자가 실행해본 ‘분더카머’. [사진 Olafur Eliasson, WUNDERKAMMER, 2020]

문소영 기자가 실행해본 ‘분더카머’. [사진 Olafur Eliasson, WUNDERKAMMER, 2020]

세상에 대한 질문은 전대미문의 코로나19 상황에서 더욱 큰 울림을 지닌다. 기후변화 프로젝트 등으로 사회 문제에 적극 관여해 온 엘리아슨에게 코로나19 이후 예술과 사회의 앞날에 대해, 그리고 그와 관련한 이번 작품의 의미를 중앙SUNDAY가 e메일로 물었다.
 
코로나19이후 우리의 삶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대면 접촉은 줄어들고, 미술의 창작과 전시 역시 디지털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더 늘어날 것이다. 이것에 대해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그리고 작가로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 위기가 우리 사회를 거의 멈춰세운 게 사실이다. 우리는 이 재난을 당한 모든 사람들의 아픔을 공감해야 한다. 또한 미래에 우리가 거주하고자 하는 지구는 어떤 것인지 다같이 상상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우리가 알던 세상’이라는 말조차 이제는 과거의 것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그럴 것이고, 예술을 만들고 나누는 일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나는 최근 몇 년 간 디지털 작품을 여럿 만들어왔다. 2017년 어큐트아트와 함께 만든 VR 작품 ‘무지개’도 그 중 하나다. AR 작품은 단순히 테크놀로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작업과정과 우리의 삶과 소통의 방식을 새롭게 규정하는 것이다.”
 
당신의 작업은, ‘우리가 보는 외부세계는 객관적으로 존재하기보다 우리 지각을 통해서 구축된 것’이라는 현상학적 사고를 반영해왔다. 설치작품에서 그 작동 장치를 일부러 노출시키는 것도 현실이란 구축되는 것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 들었다. 그렇다면 ‘분더카머’의 증강현실도 만질 수 있는 물리적 현실과 궁극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보는가?
“증강현실은 기술적 트릭에 의존하고 본질적으로 매개 체험이다. 스크린을 통해서만 볼 수 있으니까. 이것이 가지는 잠재력은 해·구름·돌처럼 늘 우리 곁에 있지만 그냥 지나치는 것들이 무엇인지 드러내고, 그와 함께 AR이 실행되는 공간에 실제로 있는 다른 것들을 새롭게 볼 수 있도록 하며, 그들 또한 고정돼있지 않고 구축되는 것을 깨닫고 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지난 몇달 간 어큐트아트와 개발해온 이 작품은 물질세계와 디지털세계를 구분하는 우리의 지각에 도전장을 내민다. 나는 이미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한 우리의 지각에 흥미가 있다.”
 
엘리아슨과 증강현실로 만든 태양. [사진 Olafur Eliasson, WUNDERKAMMER, 2020]

엘리아슨과 증강현실로 만든 태양. [사진 Olafur Eliasson, WUNDERKAMMER, 2020]

‘분더카머’에 있는 요소 중 특별히 애착을 갖는 것은?
“당연히 그들 모두를 좋아하지만, 꼬마 퍼핀(바다오리)이 특히 재미있다. 내게는 아이슬란드를 떠올리게 하는데, 퍼핀이 가장 많이 서식하는 곳 중 하나가 아이슬란드이기 때문이다(엘리아슨의 부모는 아이슬란드에서 덴마크로 이민왔으며 그 자신도 아이슬란드에서 사진 작업을 많이 했다).”
 
과거 유럽의 분더카머는 지식의 지평을 넓혔지만 자연 훼손이나 비유럽 문화재의 약탈과 연결되기도 했다. 반면에 AR ‘분더카머’는 그런 염려 없이 수많은 이들에게 공유된다는 매력이 있다. 그러나 아직 세계에는 디지털 기기 접근 기회가 없는 사람들이 많다.  
“에티오피아를 여행하고 오지용 태양광 충전 램프인 ‘리틀 선’ 작업을 하면서, 돈 없는 사람들도 돈 있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미학을 중시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우리 모두는 삶에서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느끼기를 소망한다. 이것은 문화라는 개념과도 관련된 것이며, 그 개념은 우리가 미술계에 대해 말할 때 의미하는 것보다 훨씬 넓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내 예술이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닿게 할까는 내가 끊임없이 고민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카탈로그를 생산하고, 온라인에서 볼 수 있는 자료를 만들고, 소셜미디어에서 활동하는 것이 내게 매우 중요하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당신의 개인적 삶과 작업은 어떤가?
“나는 지금 베를린 스튜디오에 있다. 우리 팀의 발빠른 대처와 독일 정부의 신속한 문화 지원 덕분에 대안적인 작업 방식을 통해 여러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할 수 있었다. 내가 한 장소에서 한 달 이상을 지내게 된 것은 오랜만의 일이다. 그래서 모처럼 속도를 늦추고 생각할 시간, 독서와 성찰을 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한 공간에 모일 필요 없이 작품을 볼 수 있게 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계속 생각했다. 그 결과 얼마전 지구의 날(4월 22일)을 기념해 영국 서펜타인 갤러리와 함께 ‘지구 전망들(Earth Perspectives)’이라는 관객참여형 작품도 발표했다. 이 작품에서는 서로 다른 아홉 개의 지구 이미지가 원래 색채에서 반전된 색채로 보여진다. 휴대폰이나 컴퓨터로 이들을 한동안 바라보면 눈에 잔상이 생기는데, 그 잔상은 ‘푸른 행성’ 지구의 원래 색깔이다. 관람객은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영사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자기 눈으로!”
 
어떤 작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예술은 사치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무력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
“이 물리적 거리두기와 불안의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문화에 의지한다는 사실에서 우리 예술가들은 용기를 가져야 한다. 위기의 시기에 오히려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문화다. 다름을 진정으로 포용할 수 있고, 한데 모여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회 영역이기 때문이다. 온라인으로라도 예술작품을 중심으로 모이는 것이, 상상을 위한 공간, 새로운 세상을 발명할 공간, 떨어져 있으면서도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찾는 방법이다. 예술은 사치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다.”
 
런던=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symoon@joog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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