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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일 선거운동이 39년 ‘우생순’ 인생보다 더 힘들었다

중앙선데이 2020.05.16 00:02 686호 24면 지면보기

[스포츠 오디세이] 국회 입성한 전 핸드볼 대표 임오경

임오경(49)은 스포츠 레전드다. 전북 정읍여고 2학년 때 핸드볼 국가대표가 된 임오경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 주역이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결혼과 출산 후 복귀한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은메달을 따냈다. 이 스토리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400만 관객을 모았다.
 

광명갑서 당선된 올림픽 금 주역
금메달 따면 끝인데 금배지는 시작
건강한 나라 만드는데 최선 다할 것

출산·육아 해내며 선수 겸 감독 두 몫
여성 스포츠인들 성폭력 마음 아파
모든 지도 CCTV 설치된 곳서 해야

임오경은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영입 인재 15호로 정치에 입문했다. 이에리사(탁구) 조훈현(바둑)처럼 비례대표를 받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당은 그에게 지역구 출마를 권했다. 임오경은 강하게 반발했으나 당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아무 연고도 없는 경기도 광명갑에 전략공천된 그는 4만3019표(47.66%)를 얻어 당선됐다. 전임 백재현 의원이 쓰던 사무실을 물려받은 임오경 당선인을 그곳에서 만났다.
  
임오경 당선인이 지역 주민을 섬기고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앞장 서겠다는 각오로 주먹을 쥐어보였다. 전민규 기자

임오경 당선인이 지역 주민을 섬기고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앞장 서겠다는 각오로 주먹을 쥐어보였다. 전민규 기자

“여론조사 결과 말해주지 말라” 배수진
 
선거 운동 중 뭐가 제일 힘들었나.
“사람과 얽히면서 정신적으로 힘든 게 견디기가 너무 어렵더라. 여기서 6개월 이상 출마를 준비한 분들과 지지자들이 화가 많이 났다. 그분들에게 상처를 줬다는 자책감으로 일주일 내내 울었다. 사람들은 날 ‘백재현이 심은 아바타’라고 거짓 소문을 냈다. 뒤돌아 갈 순 없어서 출마 발표 다음날 옷가지·화장품·침대만 갖고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어떤 방향으로 선거 전략을 짰나.
“아무 연고 없는 곳으로 날아온 셈이니 지역 주민에 죄스런 마음이 컸고 이 분들에게 진심을 보여드리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금메달리스트로서 대접만 받아왔는데 낮은 자세로 다가가서 그 분들의 얘기를 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자신들이 생각한 거랑 많이 다르다는 얘기들을 하셨다. 운동선수 출신이라 아는 것도 없고 말도 잘 못할 거라는 편견이 있었다고 한다. 난 항상 편견을 깨기 위해 살았다.”
 
그분들의 요구는 무엇이었나.
“코로나로 인해 너무 힘들다며 경제 좀 풀어달라고 하셨다. 먹는 장사는 그나마 좀 버티는데 옷가게·가방가게 등은 손님이 너무 없었다. 자신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좋아하더라. 택시기사는 ‘쉼터가 없다’고 하시고, 주부나 회사원들은 ‘운동할 곳이 없다. 체육관이 없다’면서 스포츠 인프라를 조성해 달라는 말씀을 하셨다. 메모를 하면서 ‘이건 해줄 수 있고, 이건 논의해 보겠다’고 했다.”
 
낮은 자세로 선거운동을 한 임오경 후보 .

낮은 자세로 선거운동을 한 임오경 후보 .

언제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나.
“나는 한 번도 이긴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핸드볼도 종료 버저가 울려야 끝나는 것처럼 마지막까지 승패는 알 수 없다. 절대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 된다’고 자신을 다그쳤다. 보좌진에게도 여론조사 결과를 말하지 말라고 했다. 광명 시민들에게 정말 미안한 마음을 갖고 1초라도 시간을 내서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려고 했다.”
 
당선 확정된 순간 어떤 기분이 들었나.
“그날 한 끼도 못 먹었다. ‘확정’ 발표가 날 때까지 숙소에 있다가 밤 11시 반쯤 선거 사무소에 도착했다. 당선 인사하고 새벽 5시쯤 당선증을 받으러 가는데 계속 눈물만 나왔다. 올림픽은 금메달을 따면 그걸로 끝나는데 선거는 그게 시작이더라. 선거 운동 45일이 39년 핸드볼 인생보다 더 길었다. 올림픽 금메달이랑 금배지랑 어느 게 더 힘들까 생각했는데 정치는 당선부터 시작이니까 금배지가 더 힘든 것 같다.”
 
임오경은 한국체대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갔다. 히로시마 메이플레즈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뛰면서 2부 팀을 1부로 끌어올린 뒤 8연속 우승을 이끌었다. 2008년 귀국해 서울시청 핸드볼 팀 창단 감독을 맡아 팀을 11년간 이끌었다. 여성 스포츠인의 인권 향상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했고, 여야 정당의 러브콜을 받아왔다.
 
2004 아테네 올림픽 핸드볼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슛을 날리는 임오경. [중앙포토]

2004 아테네 올림픽 핸드볼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슛을 날리는 임오경. [중앙포토]

출산-육아를 겪으면서 운동을 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전에 임신이 됐고, 올림픽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 소속팀 회장님을 찾아가 한국에서는 운동 선수가 임신하면 바로 은퇴니까 운동 못하겠다고 말씀드렸다. 회장님이 ‘일본에선 아이 낳고도 회사 다닙니다. 임신했다고 왜 운동 그만둡니까. 아이 낳고 복귀하세요’ 하시더라. 너무 고마워서 3월에 임신 사실 알고 6월 말까지 감독 겸 선수로 뛰었다.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13초 남기고 동점을 만든 뒤 우승을 했고, 양수가 터져서 바로 병원으로 갔다.”
 
한국 현실과는 너무 다르다.
“아이를 좋아해서 둘째, 셋째도 낳고 싶었지만 더 못 낳아서 미안했다. 서울시청 감독을 하면서 우리 선수들 결혼도 시키고 아이도 낳게 하고 싶었는데 비정규직·계약직이라 안 되더라. 너무 마음이 아팠다.”
 
미투(me too)와 성폭력 등 여성 스포츠계 인권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 왔는데.
“미투는 운동부만의 문제가 아닌데 스포츠 쪽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코치에게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당한 선수의 이름이 지금도 거론되는 게 너무나 마음 아프다. 가해자는 스포츠계에 발을 못 들여놓도록 해야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성(性)인지 교육을 하고, 모든 지도는 CCTV가 설치된 공간에서 이뤄져야 한다.”
  
학교 운동시설 일반에도 개방해야
 
일반 학생의 운동 기회를 늘려야 할 텐데.
“자식이 아파서 만날 병원 가는 사람들이 많다. ‘공부 못 해도 좋으니 제발 아프지만 말아다오’라고 부모는 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 벌써 척추측만층이나 비만으로 고생한다. 학생의 40% 정도가 상담을 받아야 할 정도라고 한다. 그 아이들이 욕구불만을 분출할 수 있는 건 신체활동밖에 없다. 학교 안에 다목적체육관·수영장을 만들어 줘야 한다. 이 시설을 새벽이나 저녁에 일반에 개방하면 스포츠 인프라를 이중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 교육부·문체부·보건복지부가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광명 발전에 대한 구상은.
“광명은 신도시와 구도시의 격차를 좁혀서 균형 발전을 이뤄야 한다. 재건축·재개발·뉴타운 등 승인이 난 사업이 많은데 이것들이 스톱되지 않도록 잘 연결하겠다. 복합 스포츠 시설인 스포츠 아레나를 만들고 프로 스포츠단을 유치하는 등 인프라를 구축해 광명을 빠져나가는 도시가 아니라 찾아오는 도시로 만들겠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 왔나.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저 감독 누가 안 데려가나’ 생각을 수없이 할 정도로 힘든 지옥훈련을 견뎠다. 시상대에 올랐을 때 그 동안의 희로애락이 한 순간에 스쳐갔다. 금메달 따면 은퇴하려고 했는데 마흔이 넘도록 현역으로 뛰었다. 왜 내 다리가 남자처럼 두꺼워져야 하나, 왜 근육파열에다 얼굴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해야 하나 싶었지만 그게 결국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제2의 임오경’을 꿈꾸는 후배 세대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을 묻자 임 당선인은 ‘네잎클로버’ 얘기를 꺼냈다. “어릴 적 풀밭에서 네잎클로버 찾기를 한 적이 많다. 풀숲을 이 잡듯이 뒤지다가 네잎클로버를 발견했을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인생은 네잎클로버 찾기 같다. 힘들 때마다 이게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과정이라는 걸 깨닫고 견뎌냈으면 좋겠다. ‘돈을 잃는 건 일부를 잃는 거지만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 것이다’는 말을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님들께도 꼭 해주고 싶다. 나는 대한민국을 건강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 모든 걸 바칠 거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jerry@joongang.co.kr
 
※인터뷰 전문은 월간중앙 6월호 〈정영재 전문기자의 레전드를 찾아서〉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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