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샬라메 파워? 코로나 도피? 감독 논란에도 6만명 본 ‘레이니 데이 인 뉴욕’

중앙일보 2020.05.15 20:33
우디 앨런 감독의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의 한 장면. 주인공 개츠비 역의 티모시 샬라메와 그의 여자친구 애슐리 역 엘르 패닝의 연기 호흡이 싱그럽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우디 앨런 감독의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의 한 장면. 주인공 개츠비 역의 티모시 샬라메와 그의 여자친구 애슐리 역 엘르 패닝의 연기 호흡이 싱그럽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쉽지 않은 꿀꿀함을 ‘스크린 속 뉴욕’으로 달래는 걸까. 지난 6일 개봉한 우디 앨런 감독의 뉴욕 예찬 로맨스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이하 ‘레이니…’)이 9일 만에 국내 관객 6만명을 넘어섰다. 

수양딸 '성추행' 논란 된 우디 앨런 신작
주연 샬라메 "작업 후회한다" 발언 파문
아날로그 풍광 속에 청춘들의 일상 모험
일부 논란에도 "뉴욕 여행 느낌" 호평도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대형 신작들 공급이 늦춰진 틈새시장에서 개봉일부터 일주일간 박스오피스 1위도 달렸다. 앨런 감독이 유럽 도시에 대한 헌사를 바쳤던 ‘미드나잇 인 파리’(2011, 35만5851명)나 ‘로마 위드 러브’(2013, 18만743명)엔 못 미치더라도 스페인 바르셀로나 배경의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2009, 6만7202명)는 넘볼 수 있는 성적이다.  
 
특히 영화 개봉을 둘러싸고 우여곡절이 있던 것을 감안하면 준수한 흥행이다. 알려진 대로 영화는 2018년 초 촬영을 마쳤지만 미국에선 개봉이 연기되다가 결국 유럽에서 먼저 선을 보였다. 앨런 감독을 둘러싼 오랜 성추행 논란이 ‘미투’ 캠페인에 맞물려 재소환되면서 미국 배급사 아마존이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에선 일부 문제 제기가 있긴 했지만 소리소문없이 순항하는 모양새다.
 
◆꽃미남 샬라메 파워=영화는 앨런 감독의 작품을 오랫동안 봐온 관객이라면 익숙할 법한 스토리로 전개된다. 한 도시를 사랑하는 남성이 있고 그가 자신의 삶에서 행로를 헤맬 즈음(청춘에겐 성장통, 중년에겐 권태기) 그의 곁을 지켜온 오랜 여자친구나 배우자 대신 새로운 ‘뮤즈’가 등장한다. 그는 이 뮤즈와 함께 도시의 과거와 오늘을 경험하면서 삶의 의미와 자신의 정체성을 되새긴다.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시간을 넘나들며 선사했던 낭만적 시간여행이 이번엔 뉴욕에서의 하루라는 한정된 시공간 속에 재현된다.
‘레이니 데이 인 뉴욕'에서 고전적인 바를 좋아하는 개츠비를 맡은 티모시 샬라메. '미투' 운동 때 우디 앨런 감독의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자 이 영화 출연을 후회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레이니 데이 인 뉴욕'에서 고전적인 바를 좋아하는 개츠비를 맡은 티모시 샬라메. '미투' 운동 때 우디 앨런 감독의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자 이 영화 출연을 후회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자칫 뻔한 스토리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은 싱그러운 주연배우들. 특히 주인공 대학생 개츠비를 연기한 티모시 샬라메의 힘이 크다. 순수와 우수가 교차하는 그의 눈빛이 센트럴 파크 델라코트 시계로 대표되는 뉴욕의 아날로그 풍광에 절묘하게 녹아든다. 취미로 포커 도박을 즐기면서 “인생을 망칠 멋진 방법을 찾아봐야지” 등의 대사를 내뱉어도 ‘성장’을 예견하게 하는 ‘애어른’ 같은 매력이 있다.(샬라메 역시 이 영화 뒤에 찍은 넷플릭스 영화 ‘더 킹’과 올 초 개봉한 ‘작은 아씨들’을 통해 단단한 연기 변신과 성장을 입증했다.) 여자친구이자 영화에 푹 빠진 대학생 기자 애슐리 역의 엘르 패닝, 그리고 애슐리 없는 틈에 우연히 개츠비와 얽히게 되는 시크한 뉴요커 챈 역의 셀레나 고메즈와 빚어내는 호흡을 지켜보는 재미도 있다.
 
◆감독 성추행 논란에 보이콧= 그러나 앨런 감독은 최근 발매된 회고록(『Apropos of Nothing』 , ‘난데없이’라는 뜻)을 통해 이번 영화 속 페르소나였던 샬라메에 대해 서운함을 드러낸 바 있다. 2018년 샬라메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제90회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후보로 거론될 즈음 인스타그램에 “우디 앨런과 함께 작업한 것을 후회한다”고 쓰고 출연료를 ‘미투’ 관련 운동단체에 기부하겠다고 한 것과 관련해서다.
 
앨런 감독은 샬라메의 당시 발언을 “오스카 수상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고 치부하면서 “그와 그의 에이전트는 나와 선을 그어야만 오스카를 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내 여동생에게 직접 말한 내용이다”고 주장했다. 다만 “나는 샬라메와 작업한 것을 전혀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샬라메 측은 별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앞서 앨런의 한때 수양딸이었던 딜런 패로는 2013년 인터뷰를 통해 “7살 때부터 양아버지로부터 상습적으로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앨런과 12년간 동거한 배우 미아 패로가 1992년 그와 결별하면서 폭로했던 내용과 같다. 이런 의혹을 앨런은 거듭 부인했지만 ‘레이니…’의 배급사 아마존은 영화 개봉을 보류하는 동시에 2020년까지 4편을 제작하기로 했던 계약을 파기했다. 앨런은 아마존을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고 당시 출간을 앞뒀던 회고록도 결국 다른 출판사를 통해 나왔다.
우디 앨런 감독의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의 한 장면. 주인공 개츠비 역의 티모시 샬라메와 새롭게 찾아온 인연 첸 역의 셀레나 고메즈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배경으로 낭만 여행을 한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우디 앨런 감독의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의 한 장면. 주인공 개츠비 역의 티모시 샬라메와 새롭게 찾아온 인연 첸 역의 셀레나 고메즈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배경으로 낭만 여행을 한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코로나 달래주는 뉴욕 여행= 영화 평점 사이트엔 “불매운동을 벌이자”와 “감독과 작품은 별개”라는 의견이 맞선다. 이와 별도로 “뻔한 전개에 중2병 나르시시스트를 보는 듯하다”는 혹평도 있다. 특히 애슐리가 취재하러 간 스타 감독‧배우들에게 홀려서 ‘정신줄을 놓는’ 듯한 모습으로 묘사된 게 감독의 구태의연한 여성관이라는 지적도 있다. 영화 속 바람기 많은 배우 프란시스코 베가(디에고 루나)의 뻔한 작업에 넘어가면서도 “나중에 할머니가 됐을 때 들려줄 수 있는 모험”이라며 자신을 달래는 장면 역시 ‘미투’ 시대에 불편하게 보일 수 있는 대목이다.    
 
12일 CGV 리서치센터가 본지에 제공한 관객 분석에 따르면 ‘레이니…’의 남자와 여자 관객 비율은 4:6 정도다. 샬라메의 전작 ‘작은 아씨들’이 3:7,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2:8의 성비로 여성 관객 지지가 훨씬 컸던 데 비해선 다소 완화됐다. 여성들의 관람 보이콧이라기보단 남녀가 데이트 영화로 선택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관객 분포 역시 20대(41.2%)와 30대(28.5%)가 다수인 가운데 40대(12.8%)와 50대 이상(14.6%)도 적잖은 비율을 기록, 전 연령대에 걸쳐있는 앨런 영화의 소구력을 보인다. 
 
영화 속 그리니치 빌리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칼라일 호텔의 베멜만스 바, 센트럴 파크 등 명소들이 “극장에서 여행하는 듯한 대리만족감을 준다”는 후기도 눈에 띈다. 청춘스타들을 기용해 자신의 영화에 강장제를 주입했던 85세 노장 감독은 차기작에 중견 배우 지나 거손과 크리스토프 왈츠 등을 캐스팅해 지난해 스페인에서 촬영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