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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직후 美대사 만난 전두환 "난 야심없어, 쿠데타 아니다"

중앙일보 2020.05.15 18:14
전두환 대통령이 1981년 6월 청와대에서 이임하는 글라이스틴 주한 미 대사의 예방을 받고 이임인사를 나눴다. [중앙포토]

전두환 대통령이 1981년 6월 청와대에서 이임하는 글라이스틴 주한 미 대사의 예방을 받고 이임인사를 나눴다. [중앙포토]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전후 상황을 보여주는 미국 국무부의 외교 문서가 15일 추가로 공개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재판 중인 발포 명령·헬기 사격 등 핵심 쟁점과 관련된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지만, 당시 상황을 지켜본 미 정부의 시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외교부는 앞서 미 국무부의 협조로 주한 미 대사관이 79~80년 생산한 전문(telegram) 143쪽(43건) 분량을 지난 11일 전달 받았다. 관련 문건은 15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을 통해 공개됐다. 이번에 기밀 해제된 문서는 96년 미 국무부가 일부 내용을 가린 채 공개한 문서들이지만, 비공개 처리했던 단락들까지 이번에 완전히 공개됐다.
 
 공개 내용 가운데는 79년 12·12 사태 직후인 12월 14일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 대사가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처음 면담하고 인상을 적은 부분이 포함돼 있다. 전두환 사령관은 이 자리에서 “나는 개인적인 야심이 없다. 이번 일은 쿠데타나 혁명도 아니다”며 “(박정희 대통령)암살 사건에 대한 수사를 완수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80년 5월 5·18 당시 광주시민과 대치하는 계엄군의 모습. [연합뉴스]

80년 5월 5·18 당시 광주시민과 대치하는 계엄군의 모습. [연합뉴스]

 
 정작 글라이스틴 미 대사는 이 대화를 통해 그가 치밀하고 야심 있는 군인이라는 평가를 한다. 그가 군 내부의 반대 세력을 매우 경계하고 있었고, “이 '급진적인 젊은 장교 세력(young turk officers)'이 군의 완전한 장악을 위해 미 정부의 도움을 바란다”고 전하면서다. 이와 함께 미 대사관이 “미국이 몇 주 내, 혹은 몇달 내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적은 대목이 눈에 띈다.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기 이틀 전인 80년 5월 16일 최광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미 대사를 접촉한 내용도 나온다. 최 비서실장은 “학생 시위 진압에 대한 군부의 강경 노선으로 (최규하)대통령이 계엄령에 대해 얼마나 의견 표명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정부가 군부에 완전히 장악됐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이처럼 미측은 5월 18일 전후로 정부 인사를 광범위하게 접촉했지만 18일 0시부로 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된다는 정보는 사전에 공유 받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미 대사관은 “좌절감(frustration)”을 토로하는데, 글라이스틴 대사가 18일 이희성 계염사령관을 만나 강하게 불만을 표출한다. 
 
 이 사령관은 이에 “학생들 사이에 과격한 공산주의 사상과 급진주의 성향이 퍼지고 있어서 불가피한 조치였다”며 “이번 결정을 하는 데 40명의 군 장성들이 논의를 했으며, 대통령은 '이해했다'”고 전한다. 이어 이 사령관은 “학생들의 데모를 조속히 진압하지 않으면 한국이 베트남처럼 공산화될 것”이라고 우려한 것으로 나온다. 
 
 ‘서울의 봄’ 시기 학생들과 재야단체의 시위가 격화하면서, 내무부 장관은 조속한 군의 투입을 바랐지만, 군이 최전선 병력 약화로 북한으로부터 공격당하는 것을 우려해 초반에는 개입을 꺼렸다는 내용도 나온다.
 
 지금까지 공개된 문서를 종합하면 미 정부는 신군부가 국정을 장악해 나가는 것을 우려하면서도 적극 개입하지는 않았다. 80년 5월 17일자 미 대사관 전문 보고서에는 “우리로서는 화가 나도 북한 문제가 있어 한국에서 철수할 수(walking away)도 없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5월 26일 계엄군이 전남도청에 진입하기 전 광주 시민들이 미 정부에 중재 요청을 한 것과 관련해선 “대사관이 어느 한 쪽의 인질(hostage)이 될 수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한 대목도 나온다.
  
 외교부 당국자는 “그간 관련 문서들은 상당수 내용이 지워진 채 공개가 돼 왔다”며 “올해 5.18 40주년을 맞아 미 정부에서 한미동맹을 고려해 협조해 준 것이고, 여기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5·18 기록관이 지금까지 확보한 미측 문건은 A4용지 3471쪽 분량으로, 1979년 1월 4일~1980년 12월 31일까지 미 국무부ㆍ국방부ㆍCIA 보고 문서를 망라하고 있다. 
 
 이유정·백희연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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