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코로나 완치 그후]"근육 빠져 9kg 줄어…죽음 이기니 우울증"

중앙일보 2020.05.15 05:00 종합 2면 지면보기
부산 부산진구 서면의 한 카페에서 만난 코로나19 완치자 이모씨. 송봉근 기자

부산 부산진구 서면의 한 카페에서 만난 코로나19 완치자 이모씨. 송봉근 기자

 
 부산 92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환자였던 이모(50)씨는 치료를 마치고 29일 만에 집으로 돌아왔지만 삶은 송두리째 무너져 내렸다. 

부산 92번 환자 아버지 통해 감염…29일만에 완치
아버지는 코로나로 사망…쌍둥이 형은 두달 째 치료중
"죽음의 공포 엄습" … 우울증에 시달려
심리센터서 치료받고 극복, 20일 복직
“완치자들 따뜻하게 받아달라” 당부

 
 아버지(부산 71번 환자)는 코로나로 세상을 떠났고 쌍둥이 형(부산 98번 환자)은 지금도 두 달째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지난 14일 부산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씨는 “아버지와 형이 없는 집에서 혼자 온종일 울기도 했다”고 말했다.  
 
 국내 코로나 완치자 1만명을 앞두고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완치 이후의 삶을 싣는다. 완치자는 우리의 가족이고 이웃이다.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애쓰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되새겨보고자 한다.  
 
 버스 기사로 일했던 이씨는 지난 4월 9일 남자 셋이 오손도손 살던 집에 혼자 돌아왔다. 코로나로 사경을 헤맸던 이씨는 몸무게가 9㎏ 줄고, 근육은 거의 모두 빠져나갔다. 평소 등산과 걷기 운동으로 다부졌던 몸은 앙상하게 변했다. 텅 빈 집에 혼자 있으니 우울증이 찾아왔다. 병원에서 퇴원하기 전 음성 판정을 두 차례 받았는데도 코로나에 다시 감염된 것처럼 몸이 아팠다.  
 
 이씨는 “인후통으로 잠을 잘 수 없어 매일 새벽 3시가 넘어서 겨우 잠이 들었다”며 “퇴원한 지 5일 만에 보건소로 달려가서 코로나 검사를 또 받았다. 음성 통보를 받고서야 불안한 마음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보건소에서 연결해준 심리치료센터를 다니고, 친구들을 수차례 만난 뒤에야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씨는 아버지를 통해 코로나에 감염됐다. 아버지는 지역사회에서 감염됐다. 지난 2월 27일 “떡볶이가 먹고 싶다”는 아버지의 말에 쌍둥이 형이 요리사로 나섰다. 이씨는 “떡볶이로 저녁을 때우면서 아버지에게 ‘내년 팔순 잔치 때 여행 보내드릴까요’라고 했더니 ‘용돈이나 많이 달라’며 웃으셨다”며 “그런데 그날이 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저녁이 됐다”고 말했다.   
부산소방본부 소속 119구급대원들이 코로나 환자들을 부산의료원으로 이송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부산소방본부 소속 119구급대원들이 코로나 환자들을 부산의료원으로 이송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다음날 감기 기운을 느낀 아버지는 보건소를 찾았고, 2월 29일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깜짝 놀란 이씨는 형과 함께 보건소로 달려가 검사를 받았다. 음성 판정이 나왔다. 형과 자가격리를 하던 중 부산의료원에 입원한 아버지의 상태는 점점 악화됐다. 인공호흡기를 달기 직전 의료진의 배려로 아버지와 영상 통화를 했다.  
 
 “너희들 얼굴도 못 보고 죽을까 봐 무섭다”는 아버지에게 이씨는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다. 진짜 걱정됐지만 그말 말고는 할 수 있는 다른 말이 없었다. 병간호는커녕 병문안조차 할 수 없는 처지에 눈물만 계속 흘러내렸다. 아버지가 중환자실로 이송돼 집중 치료를 받던 지난 3월 11일 이씨도 코로나 재검사에서 확진 판정을 받았다. 형은 이틀 뒤 확진 판정을 받고 이씨가 입원해 있는 병실로 왔다.  
 
 당시 이씨는 체온이 40도까지 오르고, 발가락을 꿈쩍할 수 없을 정도로 통증에 시달렸다. 해열제와 항바이러스제를 수시로 투여했지만, 통증은 일주일 내내 이어졌다. 이씨는 “의료진이 코로나 치료로 쓸 수 있는 약이라는 약은 다 썼다고 하더라”며 “사경을 헤매다 겨우 살아날 때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3월 24일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부산 지역사회 감염자 중 첫 사망자였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같은 병실에 있던 형의 상태가 너무 나빠져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애써 버티던 이씨가 심리적으로 완전히 무너져 내린 순간이었다. 그는 “형마저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내게도 죽음의 공포가 엄습해왔다”며 “육체적 고통보다 정신적 고통이 더 괴롭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형은 지금도 완치 판정을 받지 못했다. 
 
 이씨는 오는 5월 20일부터 다시 예전의 일터로 돌아간다. 직장 동료들이 불편해할까 봐 완치 후 40일가량 더 쉬었다. 이씨는 “하루에 2시간씩 걷고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하면서 예전 몸을 되찾으려 애쓰고 있다”며 “형이 퇴원하면 아버지를 모셔놓은 추모공원에 함께 가서 못다한 인사를 하며 평범했던 일상으로 복귀를 준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일상으로 돌아온 완치자들을 사회가 따뜻하게 받아달라”고 당부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