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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5·18 암매장 없다던 신군부, 공식문서엔 "암매장" 자인

중앙일보 2020.05.15 05:00 종합 10면 지면보기
80년 5월 5·18 당시 광주시민과 대치하는 계엄군의 모습. [연합뉴스]

80년 5월 5·18 당시 광주시민과 대치하는 계엄군의 모습. [연합뉴스]

신군부, '광주시민 암매장' 철저히 은폐

 

[40주년 5·18] 광주교도소 암매장과 5·18 왜곡의 진실을 캔다 ①
‘광주사태 보고서’ 40년 만에 첫 공개
신군부 “가매장”만 주장…허위 뒷받침
“계엄군, 매장 시체 찾으러 가” 증언도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최근 옛 광주교도소에서 발견된 신원미상의 유골들과 5·18과의 연관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광주교도소는 80년 5월 당시 시민들이 계엄군에게 끌려가 고문을 당하거나 암매장을 당한 곳이어서다. 광주시는 최근 발견된 유골들과 5·18 행방불명자와의 유전자 대조를 위해 지난 2월부터 오는 29일까지 행불자 가족에 대한 혈액채취 신청을 받고 있다.
 
 5·18단체 등은 이번 유골발견 사건을 80년 5월 광주의 진상을 규명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올해 5·18이 40주년을 맞은 상황에서도 북한 개입설이나 시민군의 교도소 습격 같은 왜곡과 폄훼가 여전해서다. 중앙일보는 새로 발굴된 군 내부문건과 관련자 증언 등을 토대로 5·18 당시 암매장의 진실과 신군부의 5·18에 대한 왜곡·폄훼 상황을 재조명했다. 〈편집자 주〉
 
 5·18 당시 신군부가 사망한 시민들을 암매장한 사실을 자인한 당시 정부 문서가 최초로 확인됐다. 80년 5월 이후 암매장 사실을 줄곧 부인해왔던 신군부가 ‘암매장(暗埋葬)’이라는 단어를 쓴 공식 문서가 언론을 통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5·18 당시 암매장은 지난해 12월 19일 옛 광주교도소에서 신원미상의 유골 261구가 발견된 후 40주년 기념주간의 화두로 등장했다.
 
 13일 중앙일보가 확보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의 ‘광주사태 진상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신군부는 계엄군들이 사망한 시민들을 상당수 암매장했다. 해당 문건에는 당시 신군부가 5·18로 인한 사망자를 ‘민간인·군인·경찰 포함 총 184명’으로 집계하며 ‘암매장된 사망자의 발견 및 중상자의 사망으로 사망자 수는 다소 증가할 것’이라고 기록돼 있다. 
 
신군부 산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진상조사단이 5·18 직후 작성한 ‘광주사태 진상 보고서’에 '암매장'이란 단어가 확인된다. 당시 국보위 조사단은 1980년 6월 5일부터 11일까지 광주·전남에서 5·18 진상조사를 한 뒤 ’암매장된 사망자가 발견되면 사망자 숫자는 다소 증가할 것으로 추정“이란 진상조사 기록을 남겼다. [사진 전남대 5·18연구소] 프리랜서 장정필

신군부 산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진상조사단이 5·18 직후 작성한 ‘광주사태 진상 보고서’에 '암매장'이란 단어가 확인된다. 당시 국보위 조사단은 1980년 6월 5일부터 11일까지 광주·전남에서 5·18 진상조사를 한 뒤 ’암매장된 사망자가 발견되면 사망자 숫자는 다소 증가할 것으로 추정“이란 진상조사 기록을 남겼다. [사진 전남대 5·18연구소] 프리랜서 장정필

“암매장 발견되면 사망자 증가할 것” 

 이 문건은 5·18 당시 계엄군의 암매장 자체를 부정해온 신군부가 직접 작성한 정부 기록물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신군부의 정치기반을 확보하고 5·18의 진실을 감추기 위해 설립된 기구(국보위)가 암매장을 인정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5·18 학살의 최고 책임자로 꼽히는 전두환(89) 전 대통령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암매장은 유언비어일 뿐이고, 실제로 땅을 파헤쳐보기도 했지만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고 주장한 바 있다.

신군부, “암매장은 없었다” 줄곧 주장

앞서 계엄군 지휘관들도 1988년 국회의 5·18 광주청문회 당시 암매장 의혹이 불거지자 “암매장은 없었다”고 부인했다. 심지어 신군부는 '암매장'된 희생자들이 발견돼도 “불가피하게 가매장(假埋葬)을 한 것”이라는 논리로 맞서왔다. “전시나 다름없는 급박한 상황에서 부패하는 시체를 인계할 여유가 없어 가매장했다”는 주장이다.
 
 전 전 대통령의 변호인인 정주교 변호사도 최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계엄군이 부득이하게 가매장할 수밖에 없었던 시신을 가지고 암매장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국보위 조사단의 진상조사를 담은 문서에서는 ‘암매장’이라는 단어가 버젓이 기록돼 있다. 국보위는 5·18 직후인 80년 6월 5일부터 11일까지 광주·전남에 대한 진상조사를 토대로 해당 기록을 남겼다. 암매장 기록을 남긴 시기는 5·18 진상조사 및 수색작업이 끝난 뒤인 80년 6월 12일에서 19일 사이로 추정된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숨진 광주시민들. [연합뉴스]

5·18민주화운동 당시 숨진 광주시민들. [연합뉴스]

정부 문건서 ‘암매장 자인’ 의미 커

 국보위는 신군부가 5·18을 무력으로 진압한 사흘 뒤인 80년 5월 31일 설치한 임시 기구다. 전 전 대통령(상임위원장)을 비롯해 노태우 전 대통령, 이희성 계엄사령관, 주영복 국방장관, 황영시 계엄사령부 부사령관 등 5·18 주역들이 위원을 맡았다.
 
 김희송 전남대 5·18연구소 연구교수는 “(군 기록상) 신군부가 ‘암매장’이라 기록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며, 매장이라고 적더라도 ‘가매장’이라는 표현을 써왔다”며 “신군부가 부정해온 암매장에 대한 기록이 그들이 남긴 첫 정부 차원 보고서에 뚜렷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5·18 이후 보안대 자료에는 ‘옛 광주교도소에서 시민 28명이 숨졌다’고 기록돼 있으나 실제로는 11구의 시신만 수습됐다. 5·18단체는 나머지 17명 이상의 시신이 옛 교도소 주변에 버려졌거나 암매장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5·18 이후 행방불명 신고는 총 448건이며, 이 중 84명이 행방불명 관련자로 인정됐다.
 

“계엄군, 광주 다시 가서 매장지 팠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검찰의  ‘5·18, 12·12 수사기록’(1995년)에서도 계엄군이 시신을 곳곳에 매장한 사실이 확인된다. 5·18 당시 11공수 정보장교로 근무했던 A씨는 95년 검찰 조사에서 “(80년 5월 27일) 공수부대 철수 직후인 6월에 다시 광주로 불려가 가매장지를 수색한 계엄군들이 있다”고 진술했다.
 
 그는 또 “(80년 6월) 시체를 매장한 인원들을 다시 광주로 돌려보내는 과정에서 (5·18때 공수대원들이) 부상자 2명을 사살하고 묻어준 일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는 증언도 했다. 
 
1995년 검찰의 ‘5·18 12·12 수사’에서 확보된 11공수여단 63대대 정보장교 A씨의 조서. 당시 그는 ’경희대에 있는 동안 시체를 매장한 인원들을 광주에 내려보낸 사실이 있다“는 진술을 했다. [사진 전남대 5·18연구소] 프리랜서 장정필

1995년 검찰의 ‘5·18 12·12 수사’에서 확보된 11공수여단 63대대 정보장교 A씨의 조서. 당시 그는 ’경희대에 있는 동안 시체를 매장한 인원들을 광주에 내려보낸 사실이 있다“는 진술을 했다. [사진 전남대 5·18연구소] 프리랜서 장정필

교도소 유골-암매장과 연관성 ‘촉각’ 

 A씨의 진술은 ‘(계엄군이) 5·18 직후 광주에서 가매장지에 대한 수색 작업을 벌였다’는 군 내부 문건과 일치한다. 최근 공개된 ‘전교사 작전일지’에는 ‘가매장 예상지역 수색 결과’(80년 6월 2일 오후 6시40분)에는 매장지 재수색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해당 문건에는 ‘20사단 61연대 수색대대가 시체 1구를 발견하였으나 많이 부패하여 더는 파보지 못하고 가매장’이라고 적혀 있다.
 
 이에 대해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은 “5·18 당시 20사단과 11공수가 가매장지 수색에 나선 시기가 80년 6월 초로 동일하다”며 “가매장이라고 표현했지만, 광주에서 이뤄진 ‘암매장 수색’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40주년 5·18 기념식이 다가오면서 해당 문건·증언과 옛 광주교도소에서 발견된 신원미상의 유골들과의 연관성에도 관심이 쏠린다. 계엄군의 암매장을 뒷받침하는 문건과 증언이 속속 확인되는 가운데 교도소 내 기록에 남지 않은 유골이 무더기로 발견돼서다.

 

광주시, 행불자 가족들 추가로 혈액채취

 법무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은 교도소 무연고 묘지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신원미상의 유골들과 5·18 행불자간 연관성을 조사 중이다.
 
 광주시는 해당 유골과 5·18 행불자와의 연관성을 밝히기 위해 행불자 가족의 혈액채취 신청을 지난 2월 3일부터 추가로 받고 있다. 오는 29일까지 진행되는 혈액채취에는 현재까지 17가족 18명이 신청했다.
 
광주광역시=최경호·최종권·진창일 기자, 김민상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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