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앙시평] 코로나19와 ‘다스림의 정치’

중앙일보 2020.05.15 00:57 종합 35면 지면보기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필자는 서구 정치학 용어인 거버넌스(governance)의 우리 말 번역어로 ‘다스림의 정치’란 표현이 걸맞다는 생각을 해왔다. ‘다스림’에는 사물이나 상황을 목적과 필요에 따라 잘 다듬어 처리하고 관리한다는 긍정적인 뜻이 있다. 또한, 다스림이란 말에는 강제와 복종이 아니라 소통과 협력을 통하여 더불어, 함께 다스린다는 뜻도 내포되어 있다.  
 

한국 방역모델은 민주적 협치
시민사회의 적극 참여, 협력과
아래로부터의 혁신이 강점
민관 더불어 협치로 다스려야

이런 의미에서 ‘다스림의 정치’는 ‘거느림의 정치’와 대비될 수 있다. 요컨대 전자는 민관(民官)이 함께 다스리는 민주주의적 협치(協治) 모델, 후자는 관(官) 혼자 도맡아 통솔하는 권위주의적 통치(統治) 모델을 말한다.
 
바로 코로나19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대응 모델 간 차이다. 한마디로 중국의 치병(治病) 모델이 정부 주도의 봉쇄와 통제에 기초했다면, 한국은 개방과 민간의 참여 및 협력을 통해 다스리고자 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지난 3월 20일 자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에 기고한 글에서 중국의 ‘전체주의적 감시(totalitarian surveillance)’체제에 대한 민주주의적 대안으로 한국의 ‘시민적 역량(empowerment of citizens)’에 기초한 대응 모델에 주목한 바 있다. 한국의 경우 정부의 신속하고 체계적인 감염병 대응 체계 마련, 정보의 투명한 공개와 함께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협력에 힘입어 ‘빅 브라더’의 감시 없이 코로나19의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비록 아직 기초적인 수준이지만 한국 모델을 지지하는 국제적 비교 분석도 존재한다. ‘국제 민주주의 및 선거 지원 연구원(IDEA)’의 전 세계 47개국 대상 분석 자료에 의하면, 주요 민주주의 지표와, 코로나19 대응의 주요 성과 지표라 할 수 있는 사망률 사이에 대체로 역(逆)의 상관관계가 나타난다. 이중 한국이 포함된 민주주의 국가군(群) 분석 결과, 특히 시민사회 참여(civic engagement) 지표와 사망률 간 가장 일관적인 역의 상관관계를 보인다. 즉 시민사회의 참여 수준이 높은 민주주의 국가일수록 코로나19 치사율이 낮다는 것이다.  
 
코로나19 극복의 열쇠가 권위주의 국가의 비교우위인 ‘강제력에 기초한 국가 능력(enforcement capacity)’이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참여에 힘입은 회복 탄력성(resilience)’에 있다는 메시지다.
 
왜 그럴까. 아직 가설 단계이지만, 시민사회 참여 수준이 높은 민주주의 국가는 참여에 대한 정치적 효능감을 지닌 시민들이 더 정부를 신뢰하고 더 책임감 있게 행동할 것이며, 다양한 시민사회 조직들이 활성화되어 정부 보건정책을 돕는 전달자·지지자·촉진자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고, 시민참여와 촘촘한 시민 네트워크의 경험을 통하여 신뢰와 취약계층에 대한 연대감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시민사회의 참여가 활성화되어 있는 경우 정부에 대한 올바른 감시·비판·견제의 역할 또한 더 잘 수행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주지하다시피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일반 시민과 각종 시민사회조직, 의료인과 자원봉사자 및 기업 등 여러 시민사회 주체들이 보여준 시민 의식과 역량 및 공동체 정신에 힘입은 바 크다. 이들은 기본적인 방역 조치와 ‘사회적 거리 두기’로부터 의료인과 자원봉사자들의 영웅적 희생, ‘마스크 알림 앱’ 개발과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 아이디어 제공, 착한 임대료 운동 등 각종 자발적 캠페인에 이르기까지 정부 정책에 협조할 때는 협조하고, 민간이 주도할 땐 주도했다.  
 
때론 혁신적인 정책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해결 방법을 제공하면서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다스림의 정치에 주체적으로 동참해 왔다.
 
이러한 협치의 실험은 지자체 수준으로 내려갈수록 재난 현장 곳곳의 필요와 여건에 따라 다양한 혁신적인 모습으로 발현된다. 최근 서울시는 ‘온(ON)라인으로 온(溫)기를 나누는 시민주도형 코로나19 극복 캠페인’인 ‘온서울 캠페인’을 추진하고 있다. 시의 재난안전대책본부 내에 시민-마을-시민사회가 함께 기획하고 운영하는 ‘민관협력반’을 꾸린 것부터 새로운 시도지만 ‘따뜻한 방역’, ‘따뜻한 연결’, ‘따뜻한 경제’의 이름으로 매일 서울 및 전국 곳곳에서 올라오는 갖가지 풀뿌리 시민주도형 대응 사례들은 다채롭다.
 
가령 서울시 여러 자치구 마을공동체가 손수 제작·기부한 마스크가 14만여 매에 이른다. 비록 몸은 ‘사회적 거리 두기’로 떨어져 있지만, 마음과 마음을 훈훈하게 연결하기 위한 각종 기발한 응원캠페인 아이디어도 속출한다. 경제적 어려움에 부닥친 이웃을 돕기 위한 ‘착한 구매’와 ‘착한 기부’ 행위도 넘쳐난다.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다양성의 창의성(creativity in diversity)’ 현상은 권위주의적 ‘거느림의 정치’ 모델과 비교해 한국식 ‘다스림의 정치’ 모델에 잠재해 있는 또 하나의 비교우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