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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연의 시시각각] 최강욱 격려, 검찰 압박 아닌가

중앙일보 2020.05.15 00:56 종합 34면 지면보기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엊그제 코로나 진단키트와 마스크를 우리에게서 선물받은 에티오피아는 한때 우리보다 잘사는 나라였다. 아프리카의 유일한 6·25 참전국이다. 이후 분열의 정치로 골병이 들었다. 그런 지긋지긋한 정치를 끝장낸 게 지금의 아비 총리다. 비결은? 내편 네편 구별 없는 추상같은 잣대다. 또 협치다. 집권 직후 전임 정권의 정치범을 모두 석방했다. 언론 검열을 중단하고 내각의 절반을 여성 정치인으로 임명해 사회 갈등과 반목을 줄였다. 종족마다 언어가 다른 이 나라는 부족·종교 갈등이 심각한 분열국가다.
 

분열국가를 선도국가 만들려면
내편 네편 없는 엄정함이 우선
아프리카서도 통한 처방전이다

기존의 선배 지도자들과 달리 소통 정치에도 힘을 쏟았다. BBC 뉴스는 “부흥주의 설교자 같다”고 전한다. 통합과 지지를 바탕으로 이웃 나라와의 20년 분쟁을 종식시켰다. 피가 피를 부른 복수전에 10만 명 가까운 희생자를 냈다. 40대 초반의 아프리카 최연소 지도자는 원수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분열과 대립 격화란 세상 흐름에 역류해 결국 꿈을 이뤘다. 그러곤 지난해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됐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선도국가로 급부상했다.
 
어느 모임에 가든 ‘40대 경제통’ 얘기가 화제인 건 이런 혁명적 리더십에 대한 바람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사회 변화를 바라는 시대적 요구가 거셀 때 40대 리더십이 등장했고 세상을 바꿨다. 케네디, 클린턴, 오바마가 그랬다. 마크롱 역시 그런 열망을 안고 등장했다. 기성 진영 정치와 좌우 구분을 깨는 국민 정책으로 평가받았다. 꼭 필요하지만 반대가 심한 개혁은 공감을 토대로 설득하는 방식을 택했다. 연금개혁에 반발하는 ‘노란 조끼’ 시위를 설득하기 위해 마크롱은 직접 국민들을 만나는 소규모 전국 토론회를 1년간 이끌었다.
 
문재인 대통령을 밀어올린 힘이기도 하다. 세계 정치는 갈수록 난타전이다. 양극화에 따른 사회 불만이 큰 이유다. 민주주의 교과서란 영국과 미국도, 서유럽 정치도 최근엔 중도 좌·우파 정당의 투표 점유율이 크게 줄었다. 연합 조직을 구성하거나 타협안을 협상하는 건 훨씬 어려워졌다. 진영론에 갇혀 3류 소리 듣는 한국 정치는 더 말할 게 없다. 문 대통령의 ‘평화와 화해’ 외침에 울림이 컸던 건, 전쟁과 본질이 같지만 정치는 전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야는 서로 퇴로를 막고 섬멸해야 할 적이 아니다.
 
지난 대선 당시 안희정 충남지사가 “박근혜 대통령의 미르재단도 시작은 ‘선한 의지’였을 것”이란 취지로 말한 적이 있다. 문 대통령은 “적폐청산을 위한 대개혁은 적폐에 대한 뜨거운 분노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맞섰다. ‘정의의 출발은 분노’라며 ‘분노 없이 어떻게 정의를 세우느냐’고 했다. 안 지사는 ‘정의의 마무리는 사랑’이라고 맞받았다. 모두 맞는 말이다. 중요한 건 우리 편 적폐에도 뜨거운 분노를 쏟아내야 모두의 마음을 모을 수 있다는 거다. 조국이든, ‘여자 조국’ 소릴 듣는 시민단체 출신 의원 당선자든, 아니면 여당 시장이든 누구라도.
 
그렇게 느끼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은 건 청와대 책임이다. 대통령은 선도국가를 며칠째 강조하는 중이다. 그러면서 ‘조국 사태’와 관련해 재판을 받고 있는 ‘조국 수호’ 인사에게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걸 확실하게 알도록 갚아주겠다’ ‘윤석열 총장은 공수처 1호 수사 대상’이라던 인물이다. 대통령은 권력기관 개혁을 당부했다. 조국 수사 검사는 사표를 냈다고 한다. 친문 적통을 다투던 다른 비례 위성정당에선 문비어천가 합창이다. 태종에 세종까지 나왔다. 무조건 좋다는 ‘대깨문’과 비판자 사이의 괴리감은 좁아질 까닭이 없다.
 
장밋빛 비전이 말잔치로 끝나지 않으려면 국민 마음과 역량을 모으는 게 우선이다. 적어도 아프리카의 젊은 지도자는 그랬다. 경제적 양극화 때문에 정치적 대립이 격화되는 게 아니라 정치적 대립 때문에 경제적 양극화가 커진다는 게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의 말이다.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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