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오끼 - 경남 거제도
![경남 거제 외포항. 새벽 바다에서 멸치를 떼로 잡아온 뱃사람들이 노래 장단에 맞춰 멸치털이에 나섰다. 멸치털이는 4~6월에만 볼 수 있는 봄의 장관이다. [사진 거제시청]](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05/14/379edf6e-fd35-4630-85d7-c219d2533d32.jpg)
경남 거제 외포항. 새벽 바다에서 멸치를 떼로 잡아온 뱃사람들이 노래 장단에 맞춰 멸치털이에 나섰다. 멸치털이는 4~6월에만 볼 수 있는 봄의 장관이다. [사진 거제시청]

거제 성포항 전경. 뒤로 보이는 다리는 가조도와 거제도 본섬을 잇는 가조연륙교이다. 백종현 기자
멸치의 재발견

외포항 효진수산횟집에서 멸치코스 요리를 주문했다. 찌개·구이·회무침·튀김·젓갈 등 멸치를 활용한 다양한 음식이 올라온다. 백종현 기자
멸치잡이는 어부들도 혀를 내두르는 극한 직업이다. 대개 유자망으로 한꺼번에 낚는데, 그물코에 걸린 멸치가 문제다. 그물 길이만 1㎞에 달해, 멸치를 털어내는 데만 족히 3시간이 걸린다. 배 한 척이 보통 25㎏ 박스 200개 분량의 멸치를 쏟아낸다. 멸치털이는 봄의 장관인 동시에, 지독한 삶의 현장이다.
볼품없이 빼빼 마른 사람을 가리켜 멸치라고 하지만, 봄멸은 생각보다 살집이 많다. 겨우내 살을 찌워 몸도 제법 실팍하고, 10~15㎝에 이른다. 하여 다양한 요리로 해먹을 수 있다.

멸치쌈밥 먹는 법은 간단한다. 매운 양념에 자작자작하게 끓여낸 멸치를 깻잎이나 상추에 싸 먹는다. 백종현 기자
시큼한 바다의 향

멍게비빔밥과 대구탕. 거제에서 맛볼 수 있는 가장 든든한 한 끼 식사다. 백종현 기자
수하식 멍게를 키우는 일은 굴의 그것과 사뭇 닮았다. 밧줄 형태의 긴 봉에 멍게의 유생을 다닥다닥 붙인 후 바다에 넣어두면, 플랑크톤 따위의 영양분을 흡수하며 알아서 큰다. 수명은 대략 5년으로, 2년쯤 지나면 먹기 좋은 크기로 자란다. 멍게는 다른 거 없다. 몸집이 크고 단단하며 붉은색이 선명한 것이 좋다. 살이 많고 맛 좋은 멍게를 고르는 비결이다.
거제포로수용소 앞의 ‘백만석’이 멍게로 이름난 전문 식당. 멍게비빔밥(1만2000원)이 대표 메뉴다. 생물이 아니라 5~7일가량 저온 숙성한 것을 사용하는 것이 맛의 비결. “숙성 과정에서 멍게 특유의 비린 맛과 떫은 쓴맛은 덜어내고, 향긋한 짠맛만 남기는 것이 핵심”이라고 안희성 대표는 말한다. 한 그릇이면 보통 멍게 6~7개가 들어간다. 김‧깨소금‧참기름을 두루 넣고 비비면 바다 향 가득한 비빔밥 완성이다. 고등어‧게장은 물론 맑게 끓은 대구탕까지 딸려 나온다. 멍게의 비린 맛을 잡아주는 대구탕 덕에 연신 숟가락질하게 된다.
노포의 추억

장승포항 앞 중식당 '천화원'. 1951년에 문을 열어 삼대를 이어온다. 평생 주방을 지켜 온 배영장(77)·배진륜(47) 부자가 대표 메뉴인 삼선짬뽕을 맞들었다. 두 사람 다 팔뚝에 기름 자국이 선명하다. 백종현 기자
거제는 실향민의 터전이다. 당시 철수선이 닿았던 장승포항 앞에는 지금도 피란민이 차린 식당이 남아 있다. 장승포 우체국 옆 ‘천화원’은 거제에서 가장 역사 긴 중식당이다. 흥남에서 중국집을 하던 화교 가족이 흥남철수 때 거제로 내려와 가게를 차렸단다. 51년 10월 개업해 삼대를 이어온다. 2대 사장 배영장(77)씨는 초창기 자장면 가격을 15환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6500원을 받는다. 오랜 단골 가운데 유명 인사도 많다. 고(故)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과 고(故) 노회찬 의원이 대표적이다. “한번은 야심한 밤에 누가 문을 두드려 열어보니, 김 회장이었다. 우리집 삼선짬뽕을 유독 좋아하셨다. 노 의원은 굴튀김과 술을 곁들여 먹곤 했다.”

장승포항 앞 '할매함흥냉면'의 함흥냉면과 평양냉면. 백종현 기자

1950년 흥남 철수 작전 때 피란민을 태운 배가 닿았던 거제 장승포항. 백종현 기자
술고래들의 천국

옥포동 '살아있는 해물천국'의 대표 메뉴 생생이 철판. 돌문어·키조개·바닷가재 등 해산물 열댓 가지가 올라간다. 백종현 기자

해물탕과 해물찜. 거제의 사내들이 가장 즐기는 술 안주다. 푸짐하고 얼큰하고 질리지 않는다. 거제 옥포동과 고현동에 조선업 노동자들을 상대하는 걸출한 술집들이 줄을 선다. 백종현 기자
대우조선해양 홍보팀이 알려준 직원들의 인기 회식 장소는 옥포동의 ‘살아있는 해물천국’이다. 고현시장에서 2대째 수산업을 한 ‘해산물 달인의 집’으로 명성 높다. 대표 메뉴는 지름 50㎝ 철판에 각종 해산물을 수북하게 쌓아 끓여내는 ‘생생이 철판(9만원)’. 철마다 재료가 달라지는데, 요즘은 문어·낙지·소라·전복·바닷가재·새우·가리비·키조개 등 대략 열댓 가지 해산물을 올린다. 5명이 먹어도 충분한 양. 보약처럼 국물이 깊고 진하다.

지역 대표 맛집 다 모여

돼지국밥, 굴비빔밥 등 경남 지역의 대표 먹거리들을 맛볼 수 있는 한화리조트 벨버디어 고메이. 백종현 기자
이태 전 벨버디어를 열며 한화리조트가 가장 공을 들인 것 중 하나가 먹거리였다. 전담 TF팀이 경남 지역 일대를 두 발로 뛰고 맛보며 입점할 식당을 추렸단다. 이를테면 국밥 코너는 부산 지역 유명 돼지국밥집 20곳을 취재한 뒤 골랐다.
고메이에 입점한 식당 8곳 모두 이력이 화려하다. ‘양지바위횟집’은 만화 ‘식객’에 등장했던 외포항의 대구탕 맛집, ‘다리집’은 부산에서 3대 떡볶이집으로 통한다. 국밥은 ‘수복돼지국밥(부산)’, 굴 요리는 ‘통영불곰(통영)’, 언양불고기는 ‘갈비구락부(울산)’가 책임진다.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의외로 ‘스완양분식(부산)’이 내놓는 옛날식 돈가스다. 리조트 특성상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손님이 많아서란다.

한화리조트 벨버디어에 자리한 이탈리언 레스토랑 오스테리아 사르데냐. 백종현 기자
한식이 물린다면 3층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오스테리아 사르데냐’가 있다. 파스타 ‘샤르데냐(2인분 4만9000원)’가 대표 메뉴다. 거제도산 돌문어를 비롯해 전복‧가리비‧새우 등 해산물을 듬뿍 올려 낸다.
거제=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거제도엔 걷기 좋은 해안산책로가 많다. 사진은 섬 서쪽에 있는 성포 해안산책로. 백종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