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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또 등장한 ‘적폐, 친일파’ 프레임

중앙일보 2020.05.14 00:41 종합 28면 지면보기
이가영 사회1팀장

이가영 사회1팀장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당선인이 국회 입성도 하기 전 호된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윤미향은 전쟁 성노예제의 문제점을 전 세계에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30여년을 현장에서 고생한 그가 여의도로 가는 길은 순탄해 보였다. 그러나 그와 동고동락한 이용수 할머니가 미처 예상치 못한 발언을 했다. 이 할머니의 저격은 울림이 있었다.
 
윤 당선인은 12일 자신과 가족, 정의기억연대에 대한 의혹 제기에 “6개월간 탈탈 털린 조국 전 법무장관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래통합당과 친일 언론, 친일 학자에 당당히 맞서겠다”고 다짐했다. 전여옥 전 의원은 “여자 조국이 등극했다”고 비꼬았다. ‘여자 조국’이라는 말에 100%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윤 당선인이 조 전 장관을 언급할 때 스멀스멀 지난해 혼란스러운 상황이 떠올랐다. 자신을 공격하는 이들에게 ‘적폐·친일’의 프레임을 씌우고 지지자들을 결집시켜 나라를 두 동강내 대결로 가던 그 모습 말이다.
 
한 시민단체는 13일 윤 당선인과 정의연의 이나영 이사장을 횡령, 사기 등 혐의로 고발했다. 실제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는 검찰에서 밝혀질 일이고, 윤 당선인은 성실히 조사에 응하면 된다.
 
노트북을 열며 5/14

노트북을 열며 5/14

그런데 그는 이 문제를 친일과 반일 프레임으로 몰고갔다. 조국 전 장관은 『반일종족주의』를 쓴 이영훈 서울대 명예교수를 “매국, 친일”이라고 비판했다. 평소 의견이 다른 이들에게 이런 표현을 하던 조 전 장관이다.
 
중요한 건 조 전 장관도, 윤 당선인도 검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공직자란 거다. 그들이 진보 학자로, 시민단체 활동가로 활약할 때의 언행은 큰 문제가 안 됐다. 그러나 조 전 장관은 지명직 공무원의 최고 자리에 올랐고, 윤 당선인은 지역구 의원이 아닌 비례대표다. 그런 만큼 검증은 더 혹독해야 한다. 이런 과정은 장관 임명 전, 비례대표 선정 전에 이뤄졌어야 했다. 청와대와 여당이 그 책무를 게을리했기에 언론과 시민단체가 나선 거다.
 
그런데도 조 전 장관이나 윤 당선인은 비판 세력에 대해 일단 ‘적폐, 친일파’라고 선을 긋는다. 지적의 내용을 살펴보려고도 않는다. 이미 우리 사회의 집권세력으로 자리잡았음에도 여전히 친일 기득권세력으로부터 핍박받는 피해자인 것처럼 행동한다.
 
묻고 싶다. 조 전 장관을 둘러싼 의혹에 각을 세웠던 진보 인사들, 윤 당선인과 정의연의 문제를 꼬집은 이용수 할머니를 향해선 뭐라고 비판할텐가. 신중하지 못한 고위 공직자의 언행은 국론 분열을 몰고 온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이가영 사회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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