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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 반년 만에 사장 된 42세, 첫 행보는 직급파괴 인사실험

중앙일보 2020.05.14 00:23 종합 2면 지면보기
평사원 출신으로 입사 18년 만에 사장이 된 김세호(42) 쌍방울 대표가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대표 취임 후 막중한 책임감에 시간을 쪼개 일하다 보니 수면시간이 5시간에서 2~3시간으로 줄었다“며 ’평소 즐기던 술도 지금은 거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평사원 출신으로 입사 18년 만에 사장이 된 김세호(42) 쌍방울 대표가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대표 취임 후 막중한 책임감에 시간을 쪼개 일하다 보니 수면시간이 5시간에서 2~3시간으로 줄었다“며 ’평소 즐기던 술도 지금은 거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2009년 30대 초반의 쌍방울 영업사원은 고민에 빠졌다. 회사에서 익산 물류창고에 쌓여 있는 65억원어치의 각종 재고를 처분하려고 하는데 해답이 안 나와서다. 그간 친분을 쌓은 여러 바이어를 만나기 시작했다. “잘 팔리는 여성 속옷 말고 남성·어린이 속옷이나 스타킹·레깅스·브라 톱 등 패션 제품 등으로 제품군을 넓히면 구색이 다양해진다. 판매나 수출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두 달간 설득했다. 직접 회사 재경팀과 협의해 가격을 낮추고 판매대금을 3개월 늦게 받는 조건으로 결국 재고를 다 털었다. 지난달 입사 18년 만에 국내 토종 속옷 기업인 쌍방울의 최고경영자(CEO)로 ‘깜짝’ 발탁된 김세호(42) 대표의 대리 시절 얘기다.
 

[inter-view]
쌍방울 최연소 CEO 김세호의 비결

기존 관리자, 현장 실무자로 보내고
대리를 부장으로 파격 승진시켜

김 사장, 5개월 만에 차장→대표
대리 땐 65억어치 속옷재고 완판

영업점 아침 7시에 문 열어주고
퇴근 뒤 다시 찾아 매장정리 도와

그는 쌍방울 57년 역사상 최연소 대표다. 평사원 출신이 대표가 된 것도 그가 처음이다. 오너 집안도 아니고, 해외 석·박사 학위나 유명 기업 경력도 없던 그의 대표 선임이 재계에선 화제였다. 김 대표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쌍방울을 의사소통이 활발하고 빠른 의사 결정이 이뤄지는 젊은 조직으로 바꾸라는 것이 나에게 바라는 기대 같다”고 말했다.
  
‘내가 부사장 된다면’ 공모전 우승해 승진
 
김 대표는 차장이던 지난해 11월 ‘내가 쌍방울의 총괄 경영부사장이 된다면’이라는 사내 공모전에서 우승해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당시 “온라인 사업을 강화하는 등 기존 틀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며 회사의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는데, 이사회에서 큰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지난달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자 그를 전격적으로 대표로 선임했다. 5개월 만에 ‘차장→부사장→대표’라는 초고속 승진이다.
 
그는 영업·마케팅·기획 등을 두루 거쳐 회사 관련 일은 모르는 게 없다고 해서 ‘쌍방울맨’으로 불린다. 특히 앞서 말한 65억원 재고 처분은 사내에서 영업 ‘전설’로 꼽힌다. 2008년에는 매달 우수 영업사원을 뽑았는데, 김 대표는 그해 12개월 가운데 11개월 상을 받았다. 그가 밝힌 영업 비결은 이렇다. 우선 남들보다 부지런해야 한다. 김 대표는 영업점 관리를 위해 오전 7시30분 매장에 가서 함께 문을 열었고, 퇴근 후 오후 9시30분에는 다시 함께 매장을 정리하며 공을 들였다. 바이어에게는 신뢰를 줘야 한다. 그는 약속시간에는 단 한 번도 늦은 적이 없고, 허드렛일을 하더라도 항상 정장을 입고 영업에 나섰다. 숫자에도 철저해야 한다. 결산 금액을 1원까지 정확히 맞추도록 노력했다. 김 대표는 “영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고객이 다른 고객을 소개해 주는 등 선순환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가 마주한 경영 환경은 만만치 않다. 속옷 시장은 이미 레드오션이다. 쌍방울이 내세우는 트라이(TRY) 브랜드는 40대 이상에게만 유명하다. 2000년대 초반 2000억원에 달하던 매출은 반 토막 수준으로 줄었고, 지난해엔 적자를 냈다. 그만큼 그의 어깨가 무겁다는 얘기다. 김 대표는 “디지털·온라인 소비가 대세가 된 상황에서 오프라인 판매에 집중하는 등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며 “무엇보다 과거에 안주하려는 분위기가 문제였다”고 반성했다.
  
코로나 뒤엔 마스크 생산 늘려 … 124억 계약
 
김세호 대표가 취임 직후 분위기 쇄신을 위해 본사에 게재한 ‘쌍방울人의 다짐’. 김상선 기자

김세호 대표가 취임 직후 분위기 쇄신을 위해 본사에 게재한 ‘쌍방울人의 다짐’. 김상선 기자

이에 그는 대표가 되자마자 조직개편에 착수했다. 직급과 관계없이 업무 이해도가 높은 사람을 사업부장으로 앉혔다. 대리에서 부장으로 파격 승진이 나오기도 했다. 대신 기존 관리자는 현장 실무자로 보냈다. 김 대표는 “고참급들의 반발이 클 줄 알았지만 직접 면담을 거치니 90% 정도가 이를 수긍했다”면서 “새로 부장이 된 직원은 책임감에 더 열심히 일하고, 기존 고참 직원들은 현장 감각을 살리면서 의사소통과 아이디어 발굴 등이 빨라졌다”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대표 직속으로 사내 벤처팀을 신설했다. 젊은 층을 끌어들일 상품 혁신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파격적인 변화에도 직원들은 그에게 신뢰를 보낸다. 그간 이뤄낸 성과가 바탕이 됐다. 부사장이던 지난 2월 코로나19 사태 초기, 그는 기존에 확보해 놓은 마스크 주문자상표부착(OEM) 라인의 생산을 늘리도록 주문했고, 3월 124억원 규모의 마스크 공급 계약을 따냈다. 이는 지난해 매출의 13%에 달하는 규모다. 김 대표는 “지난해 인수한 남영비비안과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해 판매 채널을 고급화·다양화하고 온라인 시장 확대에 주력할 방침”이라며 “지금 공개할 순 없지만 조만간 재미있는 제품이 나오는데, ‘어 쌍방울이 이런 걸 하네’라는 반응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세호 쌍방울 대표가 회사 제품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김상선 기자

김세호 쌍방울 대표가 회사 제품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김상선 기자

 
그는 최근 코로나19 사태가 올해 경영실적의 가장 큰 변수라고 봤다. 사람들이 대면 접촉을 피하면서 매장의 매출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코로나19 사태 이후를 보고 있다. 김 대표는 “다시 도약하려는 쌍방울에 다양한 경험과 애사심을 갖춘 직원들은 회사의 소중한 자산이기에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며 “이들과 함께 올해는 반드시 흑자 전환한다고 확실히 약속드린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후배들에게 조언해 달라는 질문에 “준비된 사람이 돼라”고 했다. 어학이나 업무 관련 공부, 인간관계, 운동 등 틈나는 시간마다 본업 외에 실력과 경험을 쌓으라는 주문이다. 김 대표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본인이 쌓은 역량을 발휘할 시간이 반드시 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세호 대표
1978년 서울에서 태어나 숭실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했다. 2003년 쌍방울에 입사했다. 2019년 11월 인천영업소장(차장)으로 일할 당시 쌍방울 부사장으로 발탁돼 지난달 쌍방울 대표이사 사장에 선임됐다.

 
손해용 경제에디터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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