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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홍진기 창조인상] 창조하는 삶, 이력 자체가 한국문화사

중앙일보 2020.05.14 00:02 종합 14면 지면보기

특별상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특별상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특별상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젊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 남이 안 한 일을 해보는 것이다.” 특별상 수상자인 이어령(86) 전 문화부 장관은 2010년 창조인상의 이름을 정했다. 이달 초 전화 인터뷰에서 이 전 장관은 “젊은이들은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것을 선택해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고, 못한 것을 만들어야 한다. 위험 부담이 있고, 그 위험을 보상하는 것이 창조인상이었다”고 말했다.
 

암 선고 받고도 집필활동 계속
올 2월 『한국인 이야기』 첫 출간
“젊은 수상자들이 중심이 돼야”

문학 평론가, 대학교수, 언론사 논설위원, 문화부 장관의 이력을 가진 이 전 장관은 “한국의 살아갈 길이 한때는 모방이었지만 이제는 우리 머리로 창조하는 것”이라고 했다. “남 뒤통수를 따라갈 땐 뛰면 된다. 그런데 앞장서면 벌판이 360도로 펼쳐진다. 가장 필요한 게 생각하는 사람, 국가와 역사에 대한 비전이다.”
 
‘창조’라는 키워드를 그는 오래전부터 강조했다. 2009년엔 각 분야 멘토들이 학생들을 온·오프라인에서 지도해주는 창조학교를 만들었다. “지금은 창조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당시엔 흔하지 않은 말이었다”고 했다.
 
이 전 장관의 이력은 그 자체로 한국 문화사의 한 장면이다. 1956년 평론 ‘우상의 파괴’로 문단을 뒤흔들고  김동리·황순원·서정주 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후 문화 예술의 자율성을 강조하며 문학이 사회 비판의 무기로 사용되는 것을 경계해 순수-참여 논쟁을 촉발했다.
 
이후 60여년간 소설, 문학비평, 에세이 등으로 남긴 저작 130여 종은 한국인의 현재를 진단하며 문화적 실천을 제시했다.  20대엔 한국의 산업화에 대한 책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를 썼고 산업화 이후 정보화에 주목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슬로건을 제안했다. 정보화 이후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융합, ‘디지로그’를 선언했다. 인류의 인간적 미래를 보자는 제안이었다.
 
영역엔 제한이 없었다. 1988년 올림픽 개막식을 총지휘해 전 세계에 한국의 이미지를 남긴 굴렁쇠 소년, 노래 ‘손에 손잡고’를 탄생시켰다. 90년 문화부의 초대 장관이 돼 91년까지 재임했다.
 
올 2월 『한국인 이야기』 중 첫 책을 출간, 한국 문화유산의 기원을 짚어냈다. 암 선고를 받고도 집필하며 낸 이 시리즈는 총 12권으로 예정돼 있다. 항암 치료를 받지 않고 건강 체크만 하며 지낸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까지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성찰할 기회를 주는 그는 20세기 한국 지성사와 문화사를 대표한다.
 
이번 수상에 대해 이 전 장관은 “나 말고 젊은 수상자들이 중심이 되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상을 만들 때부터 젊은 사람들, 상을 타 본 적 없는 사람들을 발굴해야 한다고 했는데 특별상을 내가 받으니 젊은이들의 발걸음을 뺏는 기분이다.” 이 전 장관은 “건강이 안 좋아져 숨이 가쁘고 목소리가 안 나온다”고 했지만 “창조의 정신에 대해서는 꼭 강조해달라”고 덧붙였다.
 
◆이어령(1934년생)
1960~72년 서울신문, 한국일보, 경향신문, 중앙일보 논설위원, 1972~85년 문학사상사 주간, 1990~91년 제1대 문화부 장관, 1995~2001년 이화여대 석좌교수, 2001~2015년 중앙일보 고문, 1994~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YUMIN AWARDS
유민(維民) 홍진기(1917~86). 한국 최초 민간 방송인 동양방송(TBC)을 설립하고 중앙일보를 창간해 한국 대표 언론으로 탄탄한 기반 위에 올려놓았다.

유민(維民) 홍진기(1917~86). 한국 최초 민간 방송인 동양방송(TBC)을 설립하고 중앙일보를 창간해 한국 대표 언론으로 탄탄한 기반 위에 올려놓았다.

홍진기 창조인상은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 발전기에 정부·기업·언론 분야에서 창조적 삶을 실천한 고(故) 유민(維民)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의 유지를 기리기 위해 2010년 제정됐다. 열한 번째 영예를 안은 올해 수상자들은 시대를 선도하는 혁신적 창의성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힘과 긍지를 떨치고 새 비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사는 이홍구 전 총리, 송호근 포항공대 석좌교수, 김명자 (사)서울국제포럼 회장, 권오경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이건용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김은미 서울대 교수가 맡았다. 인류 문명의 변혁기, 미래를 개척할 젊은 세대를 격려하는 데 중점을 두고 심사가 이뤄졌다. 심사위원들은 21세기 화두인 ‘창조’의 이론을 형성하고 실천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을 특별상에 선정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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