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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내일 딸 생일인데 화장" 부산 실종 여성 父는 가슴을 쳤다

중앙일보 2020.05.13 16:10
12일 자정 무렵 전북 전주의 한 모텔에서 이날 완주에서 숨진 채 발견된 20대 부산 여성의 아버지가 휴대전화에 저장된 딸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2년 전 담배를 끊었던 그는 딸 실종 이후 다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재떨이에 그가 피운 담배꽁초가 보인다. 김준희 기자

12일 자정 무렵 전북 전주의 한 모텔에서 이날 완주에서 숨진 채 발견된 20대 부산 여성의 아버지가 휴대전화에 저장된 딸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2년 전 담배를 끊었던 그는 딸 실종 이후 다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재떨이에 그가 피운 담배꽁초가 보인다. 김준희 기자

12일 오후 8시40분쯤 전북 전주시 금암동 전주시외버스터미널. 부산발(發) 버스에서 내린 50대 남성의 얼굴은 초췌했다. 지난달 29일 "외동딸이 (4월) 15일 집을 나간 뒤 며칠째 연락이 안 된다"며 부산진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한 이후 열흘 넘게 뜬눈으로 밤을 새워서다. 
 

전주서 실종된 부산 20대 여성 아버지
외동딸 사망 소식에 "앞으로 어찌 사나"
경찰, 전주 여성 살해범 연쇄살인 무게

父 "5월 14일 딸 생일…차마 시신 못봐"
"착한 딸…아픈 아빠 대신 가장 노릇"
"둘이 찍은 사진 한 장 없는 게 원통"
"진범 밝혀지면 최대한 처벌 원해"

 부산의 한 원룸에서 20대 딸과 단둘이 살던 이 남성은 이날 오후 4시쯤 "전북 완주군 상관면 한 과수원에서 따님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됐다"는 전주 완산경찰서 형사의 전화를 받고 가슴이 철렁했다. 그는 형사에게 "딸의 왼쪽 팔뚝에 본인 생년월일이 크게 새겨진 문신이 있고, 명치와 옆구리까지 수술 자국이 있다"고 알려줬다. 
 
 30여분 뒤 형사는 "시신에도 같은 문신이 있다. 지문 대조 결과 따님이 맞다. 바로 전주로 오셔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실낱 같은 희망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1991년 5월 14일에 태어난 딸의 생일을 이틀 앞두고 날아온 비보였다.
 
12일 오후 전북 완주군 상관면 한 과수원에서 지난달 18일 전주 한옥마을 부근에서 실종된 20대 부산 여성의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시신을 옮기고 있다. 뉴스1

12일 오후 전북 완주군 상관면 한 과수원에서 지난달 18일 전주 한옥마을 부근에서 실종된 20대 부산 여성의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시신을 옮기고 있다. 뉴스1

 아내 지인인 30대 여성의 금품을 빼앗고 살해 후 시신을 유기한 혐의(강도살인·사체유기)로 검찰로 송치된 A씨(31·구속)에게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는 B씨(29·여) 아버지 이야기다. 경찰은 연쇄 살인으로 보고 있다. 
 
 A씨가 '전주 30대 여성 실종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돼 경찰에 긴급체포되기 하루 전인 지난달 18일 전주 한옥마을 부근에서 만난 B씨가 24일 만에 숨진 채 발견돼서다.(※경찰은 당시 A씨 승용차 안에서 A씨가 B씨로 추정되는 여성의 목을 조르는 모습이 찍힌 폐쇄회로TV(CCTV) 영상을 확보했다. A씨 차 안에서는 B씨의 머리카락과 소지품이 발견됐다. 두 사람은 채팅 앱을 통해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B씨 아버지는 딸의 사망 소식을 듣자마자 이날 오후 5시30분쯤 부산에서 버스를 타고 3시간 만에 전주에 도착했다. 전주는 그가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곳이다.
 
 B씨 아버지는 완산경찰서를 찾아 딸의 부검 동의서를 작성했다. 살인 사건 피해자 유족으로서 참고인 조사도 받았다. 
 
 B씨 아버지는 딸의 시신이 안치된 전주 모 장례식장에 갔지만, 차마 얼굴은 보지 못했다. 숨진 지 한 달 가까이 지나 몸의 상당 부분이 부패돼 "트라우마가 생기니 보지 않는 게 나을 것 같다"는 경찰 측 조언을 따랐다. 
 
 대신 생년월일 문신이 남아 있는 딸의 팔 사진만 봤다. "맨살이 보이니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12일 오후 전북 완주군 상관면 한 과수원에서 지난달 18일 전주 한옥마을 부근에서 실종된 20대 부산 여성의 시신이 발견돼 경찰이 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뉴스1

12일 오후 전북 완주군 상관면 한 과수원에서 지난달 18일 전주 한옥마을 부근에서 실종된 20대 부산 여성의 시신이 발견돼 경찰이 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뉴스1

 기자는 전주시외버스터미널→전주 완산경찰서→전주 모 장례식장→모텔까지 B씨 아버지와 5시간 넘게 동행했다. 경찰서와 장례식장 방문 때는 밖에서 기다렸다. 인터뷰는 자정을 넘겨 그가 하룻밤 묵을 모텔에서 2시간 동안 이뤄졌다.
 
 며칠간 면도를 안 한 그는 턱수염이 까칠했다. 딸이 실종된 뒤 2년 전 끊었던 담배도 다시 피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날도 줄담배를 피웠다. 
 
 그는 "딸이 어릴 때 죽다 살아났다"고 했다. "자전거를 타다 트럭에 뺑소니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B씨 배에 있는 커다란 흉터는 그때 받은 수술 흔적이다. 
 
 그는 딸에 대해 "참 착했다"고 했다. 학생 때는 전단 붙이기 등 아르바이트를 하며 스스로 용돈을 벌었고, 성인이 된 뒤에는 횟집 서빙 등 쉬지 않고 일하며 사실상 집안 생계를 책임졌다. 
 
 B씨 아버지는 "내가 몸이 아프다 보니 딸이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했다"며 "20년 넘게 엄마 없이 자신을 혼자 키운 아빠 부담을 덜어주려고 무던히 애썼다"고 했다. 부산의 한 콜센터에서 일한 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콜센터가 문을 닫으면서 지난 1월 그만뒀다고 한다.  
 
12일 오후 전북 완주군 상관면 한 과수원에서 지난달 18일 전주 한옥마을 부근에서 실종된 20대 부산 여성의 시신이 발견돼 경찰이 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뉴스1

12일 오후 전북 완주군 상관면 한 과수원에서 지난달 18일 전주 한옥마을 부근에서 실종된 20대 부산 여성의 시신이 발견돼 경찰이 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뉴스1

 그는 지난달 14일 딸과 저녁 식사를 하며 나눈 대화가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 딸은 그에게 "아빠 우리 그동안 고생 많이 했으니 앞으로는 잘 살자"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딸의 사진을 보여줬다. 지난해 가을 찍은 사진 속 딸은 환히 웃고 있었다. 그는 "딸은 성격이 밝고 정이 많아 주변에 따르는 친구와 언니·동생이 많았다"며 "딸과 둘이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는 게 제일 원통하다"고 했다. 
 
 그는 "지난달 17일 오후 딸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딸은 "내가 예전에 쓰던 중고폰 있냐"고 묻고는 그가 '없다'고 하자 바로 끊었다고 한다. 그게 딸과의 마지막 통화였다. 이후 지난달 22일 전화를 걸었지만, 딸의 전화기는 꺼진 상태였다. 
 
 그는 최근까지 딸이 살아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고 한다. 지난달 22일 부산 집에 딸이 주문한 택배 상자가 도착해서다. 
 
 그는 "(당시 딸 실종과 연관된) A씨가 지난달 19일 체포됐다는 기사를 보고 택배 도착 날짜가 그 뒤여서 일말의 희망을 품었는데 착오였다"며 "확인해 보니 지난달 16일 딸이 인터넷으로 주문했다"고 했다. 택배 안에는 여름용 반바지와 모자 달린 트레이닝복이 들어 있었다. 
 
 그는 "(인터뷰일 기준) 내일(14일)이 딸 생일인데 화장(火葬)하게 생겼다"며 "진범이 밝혀지면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처벌을 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딸 하나만 보고 살았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가슴을 주먹으로 쳤다. 
 
 앞서 경찰은 지난달 28일 A씨를 구속기소 의견으로 전주지검에 송치했다. A씨는 지난달 14일 오후 10시40분쯤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 한 원룸에 혼자 살던 C씨(34·여)를 승용차에 태운 뒤 당일 오후 11시16분쯤 전주 효자공원묘지 부근 차 안에서 살해한 후 300만원 상당의 금팔찌와 48만원을 빼앗은 혐의다. 그는 이튿날 오후 6시17분쯤 C씨 시신을 진안군 성수면 용포리 천변에 유기한 혐의도 받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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