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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인 감염 경로 못 찾고, 펜스는 정상 출근…혼돈의 백악관

중앙일보 2020.05.12 08:46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로즈가든으로 향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로즈가든으로 향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백악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지 나흘이 지났지만 보건 당국이 아직 이들의 감염 경로조차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펜스 보좌 직원 2명 감염 경로 못 찾아내
3명은 자가격리, 펜스는 출근…격리도 들쭉날쭉
"백악관 비좁고 환기 시설 나빠… 출근 두려워"
뒤늦게 "마스크 착용하라"…트럼프는 여전히 예외

 
지난 8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공보 업무를 맡은 케이티 밀러 대변인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뒤 참모들이 주말 내내 접촉자 추적을 시도했지만 밀러가 누구로부터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 밝혀내지 못했다고 CNN이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감염 경로가 확인되지 않으면서 추가 감염자 발생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안전해야 할 직장인 백악관이 바이러스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나자 국민을 일터로 돌아가라고 독려하면서 경제 정상화를 서두르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방향이 맞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밀러 대변인에 앞서 코로나19로 확진된, 트럼프 대통령 시중을 드는 파견 군인에 대한 접촉자 추적도 이뤄지고 있다. 백악관 내 고위직을 폭넓게 접촉한 밀러 대변인과 달리 파견 군인은 직원들과 접촉이 제한적이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우려는 남아 있다고 CNN이 전했다.
 
제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 고문이 11일(현지시간) 마스크를 쓰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EPA=연합뉴스]

제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 고문이 11일(현지시간) 마스크를 쓰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EPA=연합뉴스]

 
코로나19 확진에 대응하는 백악관 모습은 혼란의 연속이다. 백악관은 11일 대통령과 부통령 집무실이 있는 웨스트윙에서 근무하거나 이곳을 방문하는 직원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라는 지침을 뒤늦게 내렸다.
 
지난달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마스크 착용을 권고했지만,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나는 안 쓰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노 마스크’가 사실상 지침이었는데 이를 뒤집은 것이다.
 
실제로 이날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당국자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썼다. 알릭스 에이자 보건복지부 장관, 케일리 매커내니 백악관 대변인, 대통령 사위인 제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 등이 마스크를 쓴 채 나타났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백악관 내부는 공간이 비좁아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기 어려운 구조이며, 오래된 건물이어서 환기 시설 등이 미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출근하기 두렵다는 말까지 나온다.  
 
케빈 해셋 백악관 선임 경제보좌관은 10일 CBS방송 인터뷰에서 “일하러 가기 무섭다“면서 “웨스트윙은 작고 붐비는 곳이어서 조금 위험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건물이 약간 낡았고 통풍이 잘 안 되지만 나라를 섬기기 위해서는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덧붙였다. 
 
확진자와 접촉한 인사들 자가격리 기준도 들쭉날쭉하다. 밀러 대변인과 접촉했다는 이유로 스티븐 한 식품의약국(FDA) 국장, 로버트 레드필드 CDC 국장,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ㆍ감염병 연구소장이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이들은 펜스 부통령이 이끄는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 일원으로, 밀러 대변인도 TF 회의에 참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밀러 대변인과 가장 많이 접촉한 펜스 부통령은 자가격리하지 않고 정상 출근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공보 담당 업무를 맡고 있는 케이티 밀러 대변인은 지난 9일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AP=연합뉴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공보 담당 업무를 맡고 있는 케이티 밀러 대변인은 지난 9일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펜스 부통령은 왜 CDC 가이드라인에 따른 자가격리를 안 하느냐’는 질문에 “그가 대답할 일”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이날 펜스 부통령은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격리 중인 방역 사령탑 3명의 검사 결과는 음성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개인 시중을 드는 파견 군인이 지난 7일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지만, 정상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자신과 펜스 부통령은 매일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있기 때문에 자가 격리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날 기자회견에 배석한 보건 전문가는 “잠복기가 있어서 오늘은 음성이 나왔지만 내일은 양성이 나올 수 있다”면서 “그래서 (14일) 전체 기간을 격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11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백악관 출입기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질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1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백악관 출입기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질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백악관도 코로나19를 통제 못 하는데, 일반 국민이 어떻게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처럼 많은 사람이 일하고, 여러 명이 오가는 곳에서 양성 1명과 자가격리 3명은 매우 적은 숫자”라면서 “감시와 통제가 잘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압박성 질문은 이어졌다. ‘백악관 코로나19 대응 시스템이 어디에서 망가진 것인가'라는 질문에 트럼프는 “시스템이 망가지 않았다. (코로나19는) 숨어 있는 적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답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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