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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 칼럼니스트의 눈] 신한울 3·4호, 만삭의 아이 같아…대통령이 출산 지시를

중앙일보 2020.05.12 00:39 종합 20면 지면보기

‘60년 탈원전’ 연착륙을 위한 제언

4월10일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워싱턴 DC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코로나19 백신 개발 등에 관해 전화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4월10일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워싱턴 DC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코로나19 백신 개발 등에 관해 전화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신한울은 경북 울진에 들어선 원자력 발전소의 이름이다. 신한울 1, 2호기 원자로는 거의 완공됐다. 문제는 3, 4호기다. 현재 법적으로는 사업 보류 상태. 2017년 5월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신재생=에너지 전환정책’에 따라 영덕·삼척 지역 등에서 서류상으로 검토되고 있던 4기의 원자로 건설을 백지화시켰다. 그러나 울진의 신한울 3, 4호기만은 취소도 아니고 진행도 아닌 상태로 어정쩡하게 놔뒀다.
 

계속 붙잡아 두면 민생 희생 심각
게이츠도 “원전은 깨끗하고 안전”
신재생 정착용 ‘연결 에너지’ 필요
한국형 뉴딜에 신한울 포함해야

신한울 원전의 발주사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문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 이미 정부 기업인 한국전력기술과 3, 4호기 설계 계약을 맺은 데다(2016년), 산업부로부터 발전사업 허가(2017년 2월)까지 받아놨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한수원은 신한울 3, 4호기 사업을 ‘보류’만 시켰지 취소하지 않았다(2018년 6월 이사회). 한수원의 선착수 작업 지시에 따라 두산중공업이 원자로 생산에만 4900억원을 투자하는 등 약 7000억원의 비용을 들였기에 이를 취소시킬 경우 법적 분쟁이 일어날 것도 고려했다.
 
이렇게 보면 신한울 3, 4호 원전은 어머니 몸속에서 만삭이 다 된 아이와 같다. 그 전의 숱한 전력수급 논의는 빼더라도 2016년 실물 설계 기준으로 4년이 지났다. 4년 사이 한국의 원자력 기술은 유럽연합과 미국 관련 기관의 까다로운 규정과 시험도 다 통과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증명받았다.
 
빌 게이츠는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가장 이상적인 에너지원으로 원자력과 신재생의 결합을 주장해 왔다. [AP=연합뉴스]

빌 게이츠는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가장 이상적인 에너지원으로 원자력과 신재생의 결합을 주장해 왔다. [AP=연합뉴스]

이제 와서 신한울 3, 4호를 취소한다면 민사 소송 문제는 둘째치고 민생의 희생이 너무 크다. 신한울 3, 4호를 없애는 건 불법은 아닐지 몰라도 반생명적이다. 얼마나 많은 고통과 비탄의 눈물이 터져 나오겠는가. 원자로 주기기 생산 업체의 관련 직원 1000명 말고도 울진과 창원시를 중심으로 부산·울산·경남에 퍼져 있는 2000개 중소·영세 협력업체, 1만5000여명 노동자가 거리에 나앉게 된다. 비극의 상당 부분이 이미 현실화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기억할 것이다. 2019년 1월 청와대 기업인과의 대화에서 한철수 창원 상공회의소 회장은 “탈원전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관련 기업들이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 신한울 3, 4호 원전만이라도 건설을 재개해 달라”고 호소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정부 에너지 정책의 흐름이 중단되지 않을 것”이라고 무심하게 답변했다. 그러고 세월이 흘러 이날까지 왔다. 신한울 3, 4호기 건설 요청은 탈원전 정책을 반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정책의 연착륙을 위한 긴급 SOS 신호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2080년까지 이어질 60년의 장구한 여정이다. 이 여정에서 원자력 발전소를 안전하게 보수·유지하는 일이 긴요한데 두산중공업과 협력사들이 문을 닫게 되면 기술과 부품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신한울 3, 4호기를 살려 원전 생태계를 최소한 수준으로 보존하는 것은 탈원전의 연착륙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신한울을 죽이고 진행하는 탈원전은 바퀴가 빠지지 않은 채 착륙하려는 비행기와 비슷하다. 검은 연기가 나고 동체가 흔들리다 두 동강이 날 수 있다. 수많은 인명이 아우성치는 현실을 봐야 한다.
 
문 대통령은 탈원전을 한다고 해서 해외 수출까지 포기하는 것은 아니라 했다. 지금 원전의 해외 수요는 커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영국, 체코, 폴란드와 남미 여러 나라에서 원전 공급자를 찾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이 활개 치고 있는데 한국의 기술과 가격 경쟁력은 두 나라를 뛰어넘는다. 원전 수출을 포기한 게 아니라면 신한울 3, 4호기로 원전 생태계를 살려놔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신한울 1, 2호기 모습.

신한울 1, 2호기 모습.

탈원전 정책은 항공모함이 반대 방향으로 돌 때처럼 오랜 시간을 두고 계획적으로 치밀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설계나 부품 건설이 끝나 공정이 착수된 원전은 살려 두고 신규 시장 진입자만 규제하는 방식으로 나갔어야 했다. 이 정부가 입맛 열면 따라가겠다는 탈원전의 나라 독일도 그렇게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3년 차 총선에서 국민의 압도적인 신임을 받았다. 이제 야당과 거친 반대 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과도한 액션을 취할 이유가 없어졌다. 집권 후 처음으로 정상적인 국가 운영을 해나갈 여유가 생겼을 것이다. 3년간 개혁의 속도전에서 그늘졌던 곳을 살피고 출혈이 심한 부분은 치유해 줄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이라도 개혁 피로감을 줄이면서 효과적으로 에너지 전환을 수행하기 위해 신한울 3, 4호 문제만은 대통령이 풀어주기 바란다. 신한울 3, 4호의 탄생이 신재생 에너지의 도도한 물결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원자력은 신재생의 기술적 한계와 비용 문제를 보완할 브릿지(연결 다리) 역할을 한다.
 
4월 10일 문 대통령과 통화에서 “대통령을 직접 만나 코로나 극복을 위한 노력에 감사드리고 싶었다”고 칭송한 사람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인데 그는 오래전부터 인류가 직면한 기후 변화 위기를 해결하는 데 가장 적합한 클린 에너지를 찾고 있었다. 빌 게이츠는 2018년 12월 29일, 그의 개인 블로그 ‘게이츠 노트(gates notes)’에 올린 글에서 신재생과 원자력의 결합을 가장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 조합이라고 결론 내렸다. 문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원전을 무슨 악의 꽃처럼 싫어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도 국가 지도자로서 민생과 산업, 현실과 비전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입장에서 빌 게이츠의 결론을 진지하게 살펴봤으면 한다.
 
게이츠는 “원자력은 기후 변화를 대처하기에 이상적인 에너지원이다. 왜냐하면 원자력은 탄소 배출이 없고 24시간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사고의 위험과 같은 문제는 오늘날 기술 혁신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게이츠는 태양력과 풍력 에너지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 비용이 저렴해지는 현실을 반기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안된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그는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필요한 모든 도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태양력이나 풍력 같은 재생 에너지 비용을 낮추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태양과 바람은 간헐적인 에너지 공급원이며, 태양빛이 비치지 않거나 바람이 불지 않을 때 충분한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초저비용 전지(super-cheap batteries)를 조만간 보유할 것 같지 않다”고 썼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 이후 경제 대침체를 대비해 ‘한국형 뉴딜’이라는 대대적인 실업 구제, 민생 회복, 국민 통합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원전에 대한 개인적 혐오만 약간 줄이고 빌 게이츠의 조언을 수용하면 추가 예산 없이 1만5000명의 실업자를 예방할 수 있다. 부산·울산·경남의 산업 생태계를 회복시킬 수 있다. 신한울 3, 4호 사업 재개를 한국형 뉴딜, 그린 뉴딜 계획에 포함시켰으면 한다. 에너지 개혁도 좋지만 사람을 살리면서 개혁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유럽의회 "기후변화에 대응수단으로 원자력 지지"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는 배경으로 기후 변화에 의한 자연환경 파괴가 지목됐다. 그렇다면 기후 변화를 일으키는 이산화탄소(CO₂)는 어떤 에너지가 얼마큼 배출할까. 원자력과 풍력, 태양광은 그 자체로는 CO₂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다만 발전소를 건설, 운영하고 시설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CO₂가 나오는 것은 불가피한데 이를 통틀어 ‘전주기 CO₂ 배출량(단위 g)’이라고 한다.
 
가장 공신력 있는 국제기후변화패널 5차 평가서(IPCC, 2014년)에 따르면 1kWh의 전기를 생산할 때 원자력과 풍력의 전주기 CO₂ 배출량은 둘 다 12g, 태양광은 48g, 가스는 490g, 석탄은 820g이었다. 원자력이 가장 깨끗한 에너지원이었다. 2019년 11월 28일 유럽의회는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 수단으로 원자력을 지지한다”는 내용이 들어간 결의안을 찬성 430표대 반대 190표의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켰다. 유럽연합의 결의는 청정 에너지원으로서 원자력의 가치를 보여 주었다.
 
지난 8일 정부의 전력수급 자문기구는 친환경 발전에 속도를 높이기 위해 현재 60기인 석탄 발전기를 2034년까지 30기로 줄이는 대신 액화천연가스(LNG)의 설비용량을 41.3GW에서 60.6GW로 늘리기로 하였다. 가스의 CO₂ 배출량이 석탄보다 적은 건 사실이지만 원자력보다는 훨씬 많다. 석탄의 대체 에너지원은 가스보다 원자력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이다. 가스는 100% 수입에 의존하는 반면 ‘두뇌에서 캐는 에너지’인 원자력은 100% 자체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기후 변화라는 세계적 요청에 부응하여 신재생의 동반자가 될만한 에너지원은 어느 모로 보나 원자력이라 할 수 있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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