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큰 정부, 보호무역, 국수주의 도래…코로나 이전 못 돌아가”

중앙일보 2020.05.11 05:00 종합 12면 지면보기
 
최종현학술원과 중앙일보가 공동 주최한 '코로나19 위기와 대응, 그리고 미래' 콘퍼런스가 8일 서울 강남구 최종현학술원에서 열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최종현학술원과 중앙일보가 공동 주최한 '코로나19 위기와 대응, 그리고 미래' 콘퍼런스가 8일 서울 강남구 최종현학술원에서 열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보호무역·큰 정부·국수주의가 지속할거다. 코로나19 이전의 시대로는 돌아가기 어렵다."  

‘코로나19 위기와 대응, 그리고 미래’ 온라인 콘퍼런스
[최태원·홍석현 회장 환영사]

 지난 8일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와 대응, 그리고 미래'를 주제로 열린 웨비나(온라인 콘퍼런스)에서 나온 진단이다. 최종현학술원과 중앙일보가 공동 주최한 웨비나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ㆍ최종현학술원 이사장과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ㆍ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을 비롯해 이준호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 이하경 중앙일보 주필, 염재호 전 고려대 총장, 박인국 최종현학술원장 등 26인의 전문가가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코로나19가 "기존 질서를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란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최 회장은 이날 환영사에서 “협력과 상호 신뢰에 기반했던 국제 관계에도 배타주의와 폐쇄성이 앞서게 될 것"이라며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홍 회장도 "우리는 코로나 이전의 시대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며 "인류는 생존이 걸린 시험대에 올라가 있다"는 말로 환영사를 시작했다. 홍 회장은 "생산·수요의 동시 붕괴로 급속한 자동화와 '일자리 없는 경제회복'이란 암울한 미래가 예고되긴 하지만, 환경·생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지금이 역설적으로 지구를 살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국가 간 공존과 협력을 강조했다.
 
두 회장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키워드로 ‘안전망 구축'과 '자리이타(自利利他ㆍ남을 이롭게 하면서 자신도 이롭게 한다는 의미)’를 꼽았다.  

 
최 회장은 "코로나19로 기존 시스템과 일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됐다"며 "기존 시스템은 외부 충격에 취약했고, 백신보다 당장 돈이 되는 치료제 개발에 집중됐던 투자 활동은 이윤만을 추구해 온 민간 경제 시스템의 한계를 보여줬다"고 반성했다.  
 
그는 “코로나19의 확산이 기업의 역할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하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의 확산이 한창이던 지난 3월. SK그룹은 대구ㆍ경북 취약계층 1500여 명에게 도시락 및 생필품 등을 전달하는 행복도시락 지원 사업을 했다. 사회적 기업들과 함께 도시락ㆍ생필품을 확보하고, 이 지역 SK그룹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도시락 등을 배달했다. 
 

관련기사

최 회장 "기업, 사회 안전망 제공에 기여해야" 

최 회장은 이 경험을 두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기업의 역할이 이런 게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기업은 정부와 지역사회, 사회적 기업 등과 함께 공동체를 이뤄 소외 사각지대를 찾아내 문제를 해결하는 안전망(Safety Net)을 제공하는 일에 적극 기여해야 한다”는 자성이다.   
 
최 회장은 "혁신을 과감히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진 만큼, 보다 도전적이고 대담한 제도 도입과 변화에 대한 고민이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종현학술원과 중앙일보가 공동 주최한 '코로나19 위기와 대응, 그리고 미래' 콘퍼런스가 8일 서울 강남구 최종현학술원에서 열렸다.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최종현학술원과 중앙일보가 공동 주최한 '코로나19 위기와 대응, 그리고 미래' 콘퍼런스가 8일 서울 강남구 최종현학술원에서 열렸다.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홍 회장은 포스트 코로나 키워드로 '자리이타'를 제시했다. 다른 존재를 배려함으로서 더불어 잘사는 지혜를 뜻한다. 이는 개인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홍 회장 "미·중은 서로에 책임 미뤄"

홍 회장은 “국가와 국가 간 관계에서도 자리이타는 윈윈(Win-Win)을 가능하게 해준다”고 했다. 이어 "가장 취약한 아프리카 대륙이 코로나19를 이겨내야 팬데믹도 마침표를 찍게 되지만, 위기 극복에 앞장서야 할 미국과 중국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중국·유럽은 글로벌 연대에 나서고 세계보건기구(WHO)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회장은 또한 한국이 코로나19 초기 실패를 딛고 일어나 방역에 성공한 모범국가가 됐다고 진단했다.“한국은 진단(Test)ㆍ추적(Trace)ㆍ치료(Treat)라는 3T 시스템을 완벽하게 가동한 세계 유일의 나라고, 또 하나의 T인 투명성(Transparency)도 높게 유지했다"며 "(그 결과) 한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소프트 파워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자평했다. 이어 "우리의 소프트 파워를 전 세계에 내세울 만한 보편적 가치로 승격시키는 밀도 있는 의미 규정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 회장은 "혁신 기업과 창업 청년들이 더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며 "역병으로 가장 큰 고통을 강하는 사회적 약자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주는 일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직장인 여성이 유튜브를 통해 8일 열린 '코로나19 위기와 대응, 그리고 미래' 웨비나를 시청 중이다. 이수기 기자

한 직장인 여성이 유튜브를 통해 8일 열린 '코로나19 위기와 대응, 그리고 미래' 웨비나를 시청 중이다. 이수기 기자

한편 온라인으로 진행된 이 날 웨비나는 다소 무거운 주제에도 오피니언 리더 사이에서 높은 관심을 모았다. 청중 없이 실시간 생중계된 웨비나의 누적 조회 수는 2만4000회에 육박했다. 웨비나는 이날 오전 9시 15분부터 시작해, 오후 6시30분을 넘겨서 끝났다. 좌장과 연사들이 본인 세션 이외엔 청중으로 참여했고, 좌석은 2m 간격으로 띄어 배치했다. 최 회장은 세션 토론 때 "이 상태가 계속된다고 할 때 팬데믹이 일어나는 걸 막을 수 있는 조치나 사회 시스템 연구의 단초가 있느냐"는 질문을 연사들에 던지기도 했다. 웨비나 전체 영상은 유튜브(https://www.youtube.com/watch?v=fUC4it9pDMI)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수기ㆍ강기헌 기자 lee.sooki@joongang.co.kr
<아래는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의 기조연설문 전문입니다.>

자리이타(自利利他)가 팬데믹 이후의 세상을 구원한다


중앙홀딩스 회장‧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 홍석현


안녕하십니까. 중요한 시기에 중요한 주제를 가지고
각 분야 석학들과 의견을 나눌 기회를 갖게 돼서 기쁩니다.
이 자리를 마련해주신 최태원 회장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코로나 19로 전세계가 멈춰섰습니다.
370만명이 확진됐고, 26만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난 석달 동안 코로나로 사망한 미국인의 숫자는 베트남전 사망자 수보다 많습니다.
희생자가 얼마나 될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3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아 넣은 14세기의 흑사병은
중세 봉건 경제를 끝냈습니다.
그리고 자본가 계급과 르네상스의 시대를 역사의 무대로 소환했습니다.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팬더믹)은 비대면(언택트) 시대를 불렀고,
여행과 이주를 중단시켰습니다.
생산과 수요의 동시 붕괴로
급속한 자동화와 ‘일자리 없는 경제회복’의 암울한 미래가 예고되고 있습니다.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자유 질서가 가고 과거의 성곽시대(walled city)가 다시 도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코로나 이전의 시대로 결코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인류는 생존이 걸린 시험대에 올라가 있습니다.



이 초유의 현상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처할지가
여러분과 제게 주어진 문명사적인 과제입니다.
우리는 인류가 주인인 세상에 바이러스가 침입한 줄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는 200만년, 바이러스는 30억년입니다.
바이러스가 인간의 대 선배인 셈이지요.
그런데 인간이 바이러스가 숙주로 삼은 야생동물의 영역을 침범하고
마구 개발하다 보니 야생동물의 개체수가 급속도로 줄었습니다.
바이러스의 영토를 파괴한 셈입니다.

바이러스는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숙주를 인간으로 바꿨고,
이 과정에서 치명율이 높은 인수공통전염병이 발생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재앙은
인간의 이기심이 초래한 필연적 결과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코로나는 인간이 생태계를 무시한데 대한 자연의 대응”이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이 맞습니다.

요즘 인도 펀잡 사람들은
150 킬로미터 떨어진 히말라야 설산을 육안으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세상이 잠시 멈춤의 기회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인도 정부는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전국민을 자가격리 시켰습니다.
공장이 멈추고, 자동차 운행이 중단되자 공기가 맑아졌던 것이지요.
무엇을 의미할까요.
인간이 자연에 대한 학대를 중단하자 자연이 마음을 열고 인간에게 다가온 것이지요.

이제 인류는 과잉활동이 지구 생태계에 준 악영향이 얼마나 컸는지
자성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질주하는 탐욕의 열차에서 내려와
자연과 공존하려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자리이타는 남도 이롭게 하면서 자기 자신도 이롭게 하는, 더불어 잘 사는 지혜입니다.

다른 존재를 배려하고, 이해가 충돌할 때는 내가 손해보고 물러서겠다는 자세는
나의 지속가능한 생존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자연과 인간은 물론 국가와 국가의 관계에서도 윈윈(win-win)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말 못하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자리이타적 행위가 모두의 생존을 지켜준다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이걸 깨닫지 못하면 현생 인류는 종말의 운명을 맞을 수 밖에 없습니다.

세계는 서로 연결돼 있고 바이러스는 국경을 모르고 이동합니다.
가장 취약한 아프리카 대륙이 코로나19를 이겨내야 팬데믹도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그런데 위기극복에 앞장서야할 미국과 중국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싸우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라는 지구적 방역협력체제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오래된 규칙은 산산조각이 나고, 새로운 규칙은 아직 쓰여가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과 중국, 유럽은 글로벌 연대에 나서고 WHO를 재정비해야 합니다.
방역선진국인 한국은 남북한과 중국, 일본이 참여하는
동아시아 방역시스템 구축을 주도할 수 있습니다.
팬데믹의 압도적인 공멸 위협 앞에서 서로를 향한 각국의 분노는 사소한 것입니다.
지구촌은 지금 즉시 ‘사격중지’(Cease fire!)'를 선언해야 합니다.

지금의 위기는 지구를 살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환경과 생태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도 고조됐기 때문입니다.
인류는 바이러스에 의해서 무너질 수도 있지만
기후재앙에 의해서도 멸종할 수 있습니다.
하나뿐인 지구에 대한 학대를 중지해야 합니다.



한국은 석탄화력 발전소를 가동중이고 ‘기후악당’이라고 비난받고 있습니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경기부양책을 펼칠 때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녹색경기부양(Green recovery)을 하자고 제의했습니다.
한국도 적극 동참해야 합니다.

한국은 초기 실패를 딛고 일어나 방역에 성공한 모범국가입니다. 진단(Test)‧추적(Trace)‧치료(Treat)라는 3T 시스템을 완벽하게 가동한
세계 유일의 나라입니다.

저는 또 하나의 T인 투명성(Transparency)을 유지한 것도 높이 평가합니다.
투명성은 우리가 일본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입니다.
우리는 팬데믹의 와중에 가장 먼저 선거를 치렀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는 한국이 가장 적게 경제적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고,
경제협력기구(OECD)는 한국이 가장 빨리 경제를 회복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한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소프트 파워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서구를 영원한 모델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미국도, 유럽도, 일본도 무너졌습니다.
자유‧개인주의‧시민성‧의료시스템 어느 하나도 성공적으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한국은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면서도 공동체의식을 살렸고 시민성을 발휘했습니다.
여기에 뛰어난 의료시스템과 의료역량, 의료진의 헌신을 결합해 방역에 성공했습니다.

중국과 이탈리아는 수백만 명의 이동을 통제했지만
한국은 자율적이고 개방적인 방식으로 방역에 성공했습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한국이 세계의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했습니다.
미래학자인 짐 데이터 교수는
“세계의 많은 국가가 다양한 영역에서 한국을 롤모델로 지켜보고 있다”며
“지금의 흔치 않은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라고 충고합니다.

이제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전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포스트 코로나의 보편적 가치로 승격시키는 밀도있는 의미 규정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지금의 성취가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
관군이 외적에게 패퇴하면 자발적으로 일어났던 의병들의 희생적 공동체 의식은
우리의 역사적 유산입니다.
인간의 개별성에 가치를 두면서도 공동체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독특한 기질이
우리 DNA 속에 각인돼 있습니다.

이런 유산을 압축적으로 정리할 인문적 언어가 필요합니다.
매력적인 사상의 구축이 절실합니다.
유럽의 귀족적 관용주의는 몰락했고, 미국의 자유, 중국의 통제도 한계에 부딪쳤습니다.
자유와 개인주의를 바탕에 두고
성숙한 공동체 의식과 첨단의 과학기술을 하나로 결합한
새로운 문명의 이름을 명명(命名)해야 합니다.
휴머니티, 생명간 상호 의존성과 연결성에 바탕을 둔
인류 공동체 모델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상황은 위기라는 사실입니다.
그럴수록 내부의 갈등을 ‘다투되 싸우지 않는’ 화쟁(和諍)의 정신으로 통합하고
열려있는 공동체를 건설해야 합니다. 그래야 전세계 누구라도 받아들여
그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일류 공동체의 에너지로 승화시킬 수 있습니다.

혁신 기업과 창업 청년들이 더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어야 합니다.
역병으로 가장 큰 고통을 당하고, 눈물 흘리는 사회적 약자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주는 일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소프트 파워를 갖춘 매력국가가 완성될 것입니다.
전세계의 인재와 자본‧기술이 대한민국에 몰려들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은 자연과 공존하고, 내가 아닌 다른 존재를 배려할 때 실현될 수 있습니다.
자리이타의 자세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의 세상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