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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장티푸스 메리

중앙일보 2020.05.11 00:17 종합 29면 지면보기
하현옥 복지행정팀장

하현옥 복지행정팀장

1906년 8월27일 상류층의 여름 별장 마을인 미국 롱아일랜드 오이스터 베이. 이곳에서 여름을 지내던 뉴욕 은행가 찰스 워런의 집안 식구 절반이 장티푸스에 걸린다. 원인을 찾아 나선 위생 기사 조지 소퍼는 장티푸스 발생 3주 전 새로운 요리사가 일을 시작했고, 가족들이 병에 걸리자 갑작스레 일을 그만둔 데 주목했다. 하지만 요리사의 소재는 찾을 수 없었다.
 
퍼즐이 맞춰진 건 6개월 뒤다. 뉴욕 파크 애버뉴의 한 상류층 가정에서 장티푸스 환자가 발생했다. 공통분모는 요리사 메리 말론이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메리가 10년간 일했던 모든 집에서 장티푸스가 발생했다는 사실이었다. 검사 결과 메리는 이른바 ‘건강한 보균자’였다. 장티푸스를 앓은 뒤 회복됐지만 몸에는 장티푸스균이 활동하며 병을 퍼뜨렸다.
 
뉴욕시는 메리를 뉴욕 이스트강 한가운데 있는 노스브라더섬에 격리했지만, 인권 침해 등을 주장한 메리의 항의로 3년 만에 다시 뉴욕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5년 뒤, 뉴욕의 한 산부인과에서 대규모 장티푸스 감염 사태가 발생한다. 요리사 메리 때문이다. 이후 ‘장티푸스 메리(Typhoid Mary)’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다른 사람에게 병을 전염시키는 사람을 뜻하게 됐다.
 
‘장티푸스 메리’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전염병의 감염 경로를 추적하는 방역 당국에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장티푸스 메리’는 ‘페이션트 제로(patient zero)’일 수도 있고, ‘지표 환자(index patient)’일 수도 있다. 이른바 ‘0번 환자’인 페이션트 제로는 최초 감염자다. 페이션트 제로와 혼용되는 지표환자는 어느 지역이나 국가, 가족 중 어떤 질병의 첫 번째 확진자를 지칭한다.
 
잦아들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새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태원 클럽 발(發)’ 확진자가 늘어나서다. 방역 당국은 “단일한 공통 감염원 또는 초발환자 1명에 의한 전파라기보다는 어느 정도의 산발적인 또는 별도의 연결고리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용인 66번 확진자’가 페이션트 제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누구든 만인의 만인에 대한 ‘장티푸스 메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만 괜찮으면 괜찮은 게 아니다.
 
하현옥 복지행정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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