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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갚겠다” 어버이날 경찰서 찾은 ‘광주 장발장’

중앙일보 2020.05.11 00:03 종합 16면 지면보기
지난해 10월 18일 새벽 광주 용봉동 한 마트에서 A씨(36)가 빵 등을 훔치는 모습이 찍힌 CCTV 화면. 경찰은 A씨가 배가 고파 식품을 훔친 사실을 안 뒤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18일 새벽 광주 용봉동 한 마트에서 A씨(36)가 빵 등을 훔치는 모습이 찍힌 CCTV 화면. 경찰은 A씨가 배가 고파 식품을 훔친 사실을 안 뒤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연합뉴스]

열흘 동안 굶다 마트에서 빵을 훔쳐 ‘청년 장발장’으로 불린 30대 청년이 어버이날 경찰서를 다시 찾았다. 본인에게 수갑을 채웠지만, 처벌 대신 ‘홀로서기’를 할 수 있게 도와준 형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다.
 

작년 10월 열흘 굶다 빵 훔친 30대
형사들은 처벌 대신 일자리 주선
정장 빌려주고 면접장까지 동행
포스코 정직원 돼 감사의 인사

10일 광주 북부경찰서에 따르면 지체장애 6급인 A씨(36)가 지난 8일 오후 비타민 음료 두 박스를 들고 경찰서 형사과를 찾았다. A씨는 경북 포항에 있는 포스코 자회사인 포스코휴먼스 직원이다. 7개월 전엔 ‘절도 피의자’ 신세였다.
 
A씨는 지난해 10월 18일 오전 2시쯤 광주 북구 용봉동 한 마트에 들어가 빵 20개와 피자 두 판·컵라면 등 식품 5만5000원어치를 훔친 혐의로 긴급체포됐다. 조사 결과 고시원에서 혼자 생활하던 A씨는 막노동을 하다 다쳐 허리에 철심 6개를 박고는 일을 찾지 못해 굶주린 상태였다. 경찰은 “전형적인 도둑이 아니다”고 봤다. 마트에서 현금은 훔치지 않아서다.
 
경찰은 A씨를 입원부터 시켰다. 아픈 허리에 우울증도 심해 치료가 먼저라고 판단해서다. 정신건강증진센터와 무등노숙인쉼터·고용복지플러스센터 등과 함께 A씨의 새 거처와 일자리도 알아봤다. 그러던 중 포스코휴먼스로부터 “A씨에게 취업 기회를 주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포스코휴먼스는 포스코가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한 국내 1호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이다. 초봉이 약 3000만원(주거비 300만원 포함)이고, 3개월 수습 기간을 거쳐 정직원이 되면 만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된다. 포항제철소 등에서 나오는 작업복 등 세탁물을 수거하고 배달하는 일이다.
 
북부경찰서 형사들은 A씨의 입사 지원서 작성부터 면접까지 챙겼다. 정장과 구두를 광주시 산하 청년일자리카페에서 빌려주고 면접 장소인 포항까지 동행했다. 면접 전 긴장한 A씨에게 “엄벙덤벙하면 안 되고, 적극적으로 ‘일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야 한다”고 당부했다. 회사 관계자에게는 “A씨가 원래 심성이 착하고 기본이 된 청년”이라고 지원 사격했다. 면접위원 일부가 ‘(A씨가) 허리가 아파 세탁물 배송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우려하자 형사들은 “일할 의지가 있는 사람은 할 수 있다. 그 전에 노동을 많이 했고, 치료도 잘 받았다”며 안심시켰다.
 
지난해 11월 1일 합격 통보를 받은 A씨는 석 달 뒤 정직원이 됐다. A씨의 경찰서 방문은 말 그대로 ‘금의환향(錦衣還鄕)’이었다.
 
사건 당시 형사지원팀장으로서 A씨를 도운 김동일 북부경찰서 형사2팀장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비실비실했는데, 살도 오르고 얼굴도 환해졌다. 머리도 노랗게 멋지게 물들였다”며 감격스러워했다. 김 팀장은 “사정이 어려운 피의자에게 외부 기관과 협업해 생계비와 쉼터·일자리 등을 지원해 주고 있다”며 “그간 3~4명을 취직시켰는데 대부분 한두 달 만에 그만뒀다. 제대로 정착한 건 A씨가 처음이다. 결실을 봤다”고 뿌듯해했다.
 
A씨는 당시 사건을 맡은 강력팀장에게 “빌린 돈을 갚는다”며 5만원을 건넸다. 지난해 합격 통보를 받고 포항에 내려갈 때 차비 등에 보태라고 준 돈을 돌려준 것이다. 형사들은 “승진도 하고, 장가도 가라”고 격려했고, A씨는 “감사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이날 A씨는 경찰서 방문 전, 마트 사장도 찾아 감사 인사를 전했다. 당시 A씨의 사정을 들은 마트 사장은 경찰에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었다.
 
광주광역시=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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