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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굶다 빵 훔친 '청년 장발장'…어버이날 경찰서 찾은 사연

중앙일보 2020.05.10 16:27
지난해 10월 18일 새벽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 한 마트에서 A씨(36)가 빵과 피자·라면 등을 훔치는 모습이 찍힌 가게 폐쇄회로TV(CCTV) 화면.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18일 새벽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 한 마트에서 A씨(36)가 빵과 피자·라면 등을 훔치는 모습이 찍힌 가게 폐쇄회로TV(CCTV) 화면. 연합뉴스

열흘 동안 굶다 마트에서 빵을 훔쳐 '청년 장발장'으로 불린 30대 청년이 어버이날을 맞아 경찰서를 다시 찾았다. 본인에게 수갑을 채웠지만, 처벌 대신 '홀로서기'를 할 수 있게 도와준 형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10월 마트서 빵·라면 훔친 30대 남성
'어버이날' 광주 북부경찰서 찾아 감사 인사
일하다 다쳐 허리 철심 박아 직장 못 구해

배고픔에 범행…마트 사장 "처벌 원치 않아"
포스코휴먼스 "취업 기회 주고 싶다" 제안
年3000만원 정직원 취직 …경찰, 지원 사격

 10일 광주 북부경찰서에 따르면 지체장애 6급인 A씨(36)가 지난 8일 오후 비타민 음료 두 박스를 들고 북부경찰서 형사과를 찾았다. A씨는 경북 포항에 있는 포스코 자회사인 포스코휴먼스 직원이다. 하지만 약 7개월 전에는 '절도 피의자'로 경찰 조사를 받는 신세였다.  
 
 A씨는 지난해 10월 18일 오전 2시쯤 광주 북구 용봉동 한 마트에 들어가 빵 20개와 피자 두 판·컵라면 등 5만5000원어치 식품을 훔친 혐의로 긴급체포됐다. 조사 결과 고시원에서 혼자 생활하던 A씨는 막노동을 하다 다쳐 허리에 철심 6개를 박았다. 척추 장애가 생긴 그는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돈이 떨어지자 배고픔에 지쳐 범행을 저질렀다. 경찰은 "전형적인 도둑이 아니다"고 봤다. A씨가 마트에서 현금은 훔치지 않아서다.  
 
 경찰은 A씨를 병원부터 입원시켰다. 허리가 아픈 데다 우울증이 심해 치료가 먼저라고 판단해서다. 아울러 A씨의 새 거처와 일자리 등을 마련하기 위해 정신건강증진센터와 무등노숙인쉼터·고용복지플러스센터 등과 협업하던 중 희소식을 들었다.  
 
 A씨의 사연을 들은 포스코휴먼스 측이 "취업 기회를 주고 싶다"고 제안한 것이다. 포스코휴먼스는 포스코가 장애인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한 국내 1호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이다. 초봉이 약 3000만원(주거비 300만원 포함)이고, 3개월 수습 기간을 거쳐 정직원이 되면 만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되는 자리였다. 포항제철소 등에서 나오는 근로자 작업복 등 세탁물을 수거하고 배달하는 일이다. 
 
 북부경찰서 형사들은 A씨의 입사 지원서 작성부터 면접까지 일일이 챙겼다. 면접에 필요한 정장과 구두는 광주시 산하 청년일자리카페에서 빌렸다. 면접 장소인 포항까지 봉고차로 동행했다. 
 
 면접 전에는 잔뜩 긴장한 A씨에게 "엄벙덤벙하면 안 되고, 적극적으로 '일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야 한다"고 당부했다. 회사 관계자에게는 "A씨가 원래 심성이 착하고 기본이 된 청년"이라고 지원 사격했다. 면접위원 일부가 '(A씨가) 허리가 아파 세탁물 배송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고 우려를 표명하자 형사들은 "일할 의지가 있는 사람은 할 수 있다. 그 전에 노동을 많이 했고, 치료도 잘 받았다"며 안심시켰다.  
 
 A씨는 지난해 11월 1일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고, 3일 뒤 포항으로 출근했다. 석 달 뒤에는 정직원이 됐다. 이날 A씨의 경찰서 방문은 말 그대로 '금의환향(錦衣還鄕)'이었다. 전날 A씨가 온다는 소식에 비번 근무자까지 사무실에 모였다.  
 
 사건 당시 형사지원팀장으로서 A씨를 도운 김동일 북부경찰서 형사2팀장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전에는 비실비실했는데 이번에 보니 살도 오르고 얼굴도 환해졌다. 머리도 노란 물로 멋지게 들였다"며 감격스러워했다. 김 팀장은 "경찰에서는 사정이 어려운 피의자에게 외부 기관과 협업해 생계비와 쉼터·일자리 등을 지원해 주고 있다"며 "이 프로그램을 통해 그간 3~4명을 취직시켰는데 대부분 한두 달 만에 그만뒀다. 제대로 정착한 건 A씨가 처음이다. 한마디로 결실을 보았다"고 했다. 
 
 A씨는 당시 사건을 맡은 강력팀장에게 "빌린 돈을 갚는다"며 5만원을 건넸다. 그가 지난해 합격 통보를 받고 포항에 내려갈 때 강력팀장이 차비 등에 보태라고 준 돈을 돌려준 것이다. 형사들은 "착실하게 직장 생활하면서 승진도 하고, 장가도 가라"고 격려했고, A씨는 "감사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앞서 A씨는 이날 경찰서를 찾기 전 음료 한 상자를 들고 자신을 용서해 준 마트 사장을 찾아 감사 인사를 전했다. 당시 A씨의 딱한 사정을 들은 마트 사장은 경찰에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다. 경찰은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광주광역시=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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