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비틀스·머큐리 우상…로큰롤 개척자 리틀 리처드 87세 타계

중앙일보 2020.05.10 14:02
미국 로큰롤의 선구자 리틀 리처드가 9일 향년 87세로 타계했다. 사진은 2004년 8월 뉴욕 공연 모습이다. [AP=연합뉴스]

미국 로큰롤의 선구자 리틀 리처드가 9일 향년 87세로 타계했다. 사진은 2004년 8월 뉴욕 공연 모습이다. [AP=연합뉴스]

미국 로큰롤의 개척자 리틀 리처드(본명 리처드 웨인 페니먼)가 87세로 음악인생을 마쳤다.  
 

1950~60년대 로큰롤 선구자
비틀스·엘비스도 커버한 명곡
'신의 계시' 받고 목사 생활도
흑백 갈등 넘은 스타…양성애 고백

9일(현지 시간) AP통신, 영국 일간 ‘가디언’, 미국 음악 전문지 ‘롤링스톤’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가족들은 성명을 통해 리처드가 골수암으로 테네시주 툴라호마에서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프레디 머큐리의 우상 

리처드는 자신을 ‘로큰롤의 설계자’라 불러왔다. 1950년대 중반부터 숱한 히트곡을 남기며 전 세계 3000만장 넘는 음반 판매고를 올렸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전설적인 로커 프레디 머큐리가 10대 시절 모창하며 가수의 꿈을 키운 롤모델도 리틀 리처드였다.  
 
“Gonna tell Aunt Mary 'bout Uncle John, He says he has the blues but he has a lotta fun. Oh baby(매리 이모에게 존 삼촌에 대해 말할래. 그는 우울하지만 재밌다고 말하지. 오 베이비).”
 
리처드의 흥겨운 대표곡 ‘Long tall Sally’ 가사다. 비틀스, 엘비스 프레슬리 등 무수한 가수들이 커버하며 로큰롤의 고전이 됐다. AP 통신이 “발매와 함께 미국 전역 라디오와 전축에서 폭발음을 내며 마치 수류탄처럼 상륙했다”고 평가한 ‘Tutti Frutti’, 리처드가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의 50번째 생일에 연주한 ‘Good Golly Miss Molly’도 대표곡으로 꼽힌다.  
 

비틀스·엘비스도 커버한 명곡

리처드는 1986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1993년엔 쳇 앳킨스, 셀로니어스멍크 등과 함께 그래미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2004년과 2011년 롤링스톤 선정 로큰롤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 순위에선 레이 찰스(10위)보다 높은 8위를 차지했다.  
리틀 리처드는 폭발적인 창법과 피아노 연주로 유명했다. 사진은 2001년 7월 비버리힐스 공연 모습. [AP=연합뉴스]

리틀 리처드는 폭발적인 창법과 피아노 연주로 유명했다. 사진은 2001년 7월 비버리힐스 공연 모습. [AP=연합뉴스]

 
그는 폭발적인 샤우트 창법과 격렬한 피아노 연주로 후대 음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로이터 통신은 리처드의 전성기 기법을 “외치고, 신음하고, 절규하고, 전율했다”고 평가했다. 또 “리처드의 음악이 미국 내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시기 젊은 흑인과 백인 팬을 동시에 끌어들였다”고 했다.  
 

흑백 인종차별 넘어선 뮤지션 

리처드 자신도 과거 인터뷰에서 “로큰롤이 모든 인종을 하나로 묶는다고 생각해왔다”며 “나는 창시자이자 해방자”라 했다. 
 
로이터통신은 폴 매카트니를 비롯해 믹 재거, 제임스 브라운, 오티스 레딩, 데이비드 보위, 로드 스튜어트 등과 같은 작곡가 겸 가수들이 리처드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리처드의 짙은 마스카라 화장과 화려한 패션은 미국 팝스타 프린스가 이어받았다.  
 

'신의 계시' 받고 목사 활동…양성애자

리틀 리처드가 34세이던1966년 전성기. 그는 '신의 계시'를 받고 성직 활동을 하며 로큰롤과 함께 가스펠 음반, 공연도 활발히 했다. [AP=연합뉴스]

리틀 리처드가 34세이던1966년 전성기. 그는 '신의 계시'를 받고 성직 활동을 하며 로큰롤과 함께 가스펠 음반, 공연도 활발히 했다. [AP=연합뉴스]

1932년 조지아주 메이컨에서 태어난 리틀 리처드는 10대 때부터 약장사 쇼단에서 노래와 피아노 등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가수 데뷔 후 1957년 호주 순회공연 중 하늘을 가로지르는 불덩이를 보고 신의 계시로 받아들여 신학교육을 받고 목사가 됐다. 이 불덩이는 훗날 스푸트니크 1호 인공위성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62년 가수로 복귀한 그는 성직자 생활과 로큰롤‧가스펠을 오가며 활동해왔다. 미국 빌보드에 따르면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이 양성애자란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관련기사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