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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동료 배려하려 받은 C평가…그런데 왜 마음 쓰릴까

중앙일보 2020.05.10 11:00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70)

 
마트에는 안 먹어본 라면이 많았다. 회사별 대표 장수상품부터 미역, 참깨, 부대찌개, 짜장, 짬뽕, 우동, 사리면…. ‘저런 건 누가 어떻게 알고 사 먹을까’ 싶은 낯선 제품도 많다. 가격도 제각각이다. 하나에 600원 정도라 생각했는데, 그게 가장 싼 수준이었다. 가끔 고소한 트랜스지방 맛에 빠져들기도 하지만 바쁘거나 입맛 없을 때는 두어 젓가락 먹다가 대충 남겨 버리기도 하는, 음식 가운데 가장 ‘하급’으로 대접받는 라면에도 신분 차이가 뚜렷했다.
 
물론 모든 물건의 값이 다르다. 고기의 부위별로 값이 다른 것은 물론이고, 콜라, 골뱅이, 초코파이도 선두와 2위 업체의 가격 차가 크다. 마케팅 시간에 충분히 배웠어도 볼 때마다 새롭다.
 
평소에 비슷비슷할 것으로 생각했던 라면도 저마다의 몸값이 달랐다. 누군가에겐 중요하지 않더라도 또다른 누군가에겐 소중한 한 끼의 식사일 테니 자기가 가진 약간의 특별함도 전부 몸값으로 반영된 결과다. [사진 박헌정]

평소에 비슷비슷할 것으로 생각했던 라면도 저마다의 몸값이 달랐다. 누군가에겐 중요하지 않더라도 또다른 누군가에겐 소중한 한 끼의 식사일 테니 자기가 가진 약간의 특별함도 전부 몸값으로 반영된 결과다. [사진 박헌정]

 
사람에게도 값이 매겨진다. 국내 정상급 야구선수 연봉은 20억 원이 넘고 손흥민은 100억 원, 류현진은 200억 원, 메시는 1000억 원이 넘는다. 몸값은 퍼포먼스에 비례한다지만 소위 ‘먹튀’도 많고, 실력만큼 못 받는 선수도 많다. 그 세계의 시장원리와 데이터에 따라 형성된 몸값의 단위는 피부에 잘 와 닿지 않고 오히려 “초봉 5000만 원 이래, 연봉이 1억 넘는대, 이번 달엔 기본급도 다 안 나와”하는 이야기가 더 잘 들린다. 그러니 몸값은 프로선수뿐 아니라 우리의 치열하고 고달픈 현실이다.
 
은퇴한 선배와 술을 마셨다. 얼마 전에 사업체를 정리하고 일 생기면 생기는 대로 열심히 뛰는 프리랜서, 말하자면 ‘반퇴’ 상태다. 한 달에 38만 원 벌었다고 하길래, “아니, 이제 그럴 수밖에 없지 않으냐. 자식 다 키워놓고, 누울 자리 보고 은퇴했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했다. 돈보다 ‘몸값’에 대한 향수가 더 큰 것 같았다.
 
나도 비슷하다. 인생 2막 직업은 ‘작가’이며 수입은 약간의 원고료와 약간의 강의료인데 그 둘을 합쳐봐도 역시 ‘약간’을 넘지 못한다. 설상가상 이번 봄에 계획된 강의도 다 취소돼 공식적인 몸값이 0이 되고 보니 존재의 의미도 0인 것 같은 불안한 착각이 든다. ‘값’이란 게 원래 그럴까? 눈곱만큼이라도 있는 것과 없는 것, 그 ‘눈곱’의 파괴력이 엄청나다. 생활뿐 아니라 내 존재감을 위해 빨리 얼마라도 돈이 생겨야 한다.
 
페이스북에 공유되어 올라온 건데, 자기 이름을 넣으면 몸값이 떴다. 내 몸값이 430억으로 나오니 기분은 괜찮다. 어떤 사람은 10만 원대, 심지어 10원도 있었다. 물론 아무 근거도 의미도 없는 장난이다. [사진 박헌정]

페이스북에 공유되어 올라온 건데, 자기 이름을 넣으면 몸값이 떴다. 내 몸값이 430억으로 나오니 기분은 괜찮다. 어떤 사람은 10만 원대, 심지어 10원도 있었다. 물론 아무 근거도 의미도 없는 장난이다. [사진 박헌정]

 
몸값을 몸의 가치, 그 인간의 쓸모 이런 식으로 연상하다 보면 좀 섬찟하다. 몸이란 게 한 사람에게 하나씩인데 값을 따진다? 해적에게 포박당한 채 자기 몸값 협상을 지켜보는 것도 아니고…. 인간의 몸이 지닌 물질적 가치는 몇 달러에 불과하다던 미국의 어느 해부학 교수의 언급을 두고 사람들은 ‘그러니까 인간의 능력 값이 중요한 것’이라는 산업사회에 걸맞은 논리를 만들어낸다. 몸값의 반대말은 영혼값 아닌 능력 값이었구나!
 
그들의 논리에 따라 몸값에는 ‘평가’가 수반되는데, 여기에는 아무리 겪어도 적응되지 않는 냉랭함이 있다. 회사 홍보팀장이던 나는 사장님의 대내외 원고작성을 도맡았었다. 경영자를 직접 도우면 아무래도 승진 같은 것은 좀 유리하다.
 
어느 날 평소에 호흡 잘 맞고 나를 믿어주던, 나 역시 아직 존경하는 담당 임원이 “고민을 많이 했는데, 당신은 사장님이 직접 챙겨주시잖아”하며 연봉평가에서 C등급을 주었다. 상대평가인데 S는 탁월, A는 우수, B는 보통이고, 그 아래는 분발 촉구를 넘어 경고나 징계 성격이다. 직원을 하나라도 더 구제하기 위해 순조롭게 진급할 것 같은 내게 미안해하며 이해를 구한 것이다.
 
물론 나는 이해했다. 상사의 리더십, 지혜, 그리고 부하 사랑하는 마음을 존경했다. 다만 그것은 머릿속에서의 일이고 가슴 속에는 열패감, 서러움이 뒤섞여 부글부글하다가 나중에는 스스로 위축되었다. 물론 급여 차이는 크지 않고 누가 아는 것도 아니지만 ‘아래 등급’ 도장은 정말 쓰렸다. 삶의 의욕이 절반으로 떨어지고 가족에게 미안하고 동료가 달라 보였다. ‘저 친구는 A등급일 거야. 내 몫을 가져간….’
 
코로나 사태가 지나가고 실물경제가 침체되면 고용과 소득도 줄어들고 우리의 일반적인 몸값도 내려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내 진짜 몸값은 따로 있다는 자존감을 가져야 그나마 어려운 시대를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사진 Pixabay]

코로나 사태가 지나가고 실물경제가 침체되면 고용과 소득도 줄어들고 우리의 일반적인 몸값도 내려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내 진짜 몸값은 따로 있다는 자존감을 가져야 그나마 어려운 시대를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사진 Pixabay]

 
처음 연봉제를 도입할 때 젊은 직원은 일 많이 하고 성과 내는 사람의 몸값이 더 높다는 합리성에 끌려 자신만만하게 찬성했다. 나 역시 더 얻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내 몫 지키려면 훨씬 더 달려야 한다는, 그래도 결국 누군가는 밀려야 한다는 사실을 잠깐 잊었다.
 
나중에는 비서실장을 겸직했는데 비서실장은 눈치 보지 말고 일하라는 뜻에서 연봉이 무조건 B등급이었다. 평가에서 해방되니 정말 홀가분했다.
 
이제는 전부 추억이 되었다. 조직에서의 크고 작은 낙오는 속상했지만, 함께 잘 되기 위해 합의한 큰 약속의 일부였다. 그런데 조직에서 나오니 이 ‘몸뚱이’의 값은 하한가도 없이 쭉쭉 떨어져 등급이란 말 자체가 민망하고 황송하다. 자조적으로 말하자면 ‘자유 등급’이라고나 할까?
 
어차피 경쟁의 삶 속에서는 평가와 등급에서 벗어날 수 없고, 내 몸값은 늘 나의 희망 아래쪽에 머문다. 코로나 사태가 지나가면 당분간 실물경제에 후폭풍이 살벌하게 불어닥칠 거라 하니 일반적인 몸값은 지금보다 더 내려갈 것 같다. 그렇게 되더라도 상황이 이래서 그렇지 내 진짜 몸값은 따로 있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지키면서 살면 좋겠다.
 
속상해 봐야 나만 손해다. 외부에서 책정하는 몸값 말고, 내 안에서 책정한 따뜻한 내 몸값이 필요하다. 그게 어려운 시대에 그나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 아닐까 싶다.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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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정 박헌정 수필가 필진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 25년간의 회사생활을 정리하고 50세에 명퇴금 챙겨 조기 은퇴해서 책 읽고, 글 쓰고, 여행하는 건달이자 선비의 삶을 현실화했다. 은퇴 후 도시에 뿌리 박혀버린 중년의 반복적이고 무기력한 삶에 저항하기로 했다. 20대는 돈이 없어 못하고, 30-40대는 시간이 없어 못하고, 60대는 힘과 정보가 없어 못하던 일들, 꿈만 같지만 결코 꿈이 아닌 현실이 되어야 할 일들, 50대의 전성기인 그가 그 실험에 도전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인생 환승을 앞둔 선후배들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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