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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아이 눈 속에 부모의 성적표가 보인다

중앙일보 2020.05.10 07:00

[더,오래] 김명희의 내가 본 희망과 절망(31)

 
우리가 바이러스에 감금된 사이, 봄은 절정에 치닫고 있다. 이렇게 감옥 아닌 감옥에 살다 보니 불과 작년에 남편과 다녀온 중국여행과 딸과 다녀온 캄보디아 여행이 꿈처럼 아득하다. 작년에 나는 딸아이의 대학 졸업 기념으로 모녀여행을 다녀왔다. 어제는 딸과 작년에 다녀왔던 캄보디아 여행이 떠올라 그날의 살인적 더위를 떠올리며 깔깔 웃었다. 딸의 기억에 편승해 나도 그날로 돌아가 보았다. 작년 여행에서 만난 일행 중 지금도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가족이 있다.
 
패키지로 떠난 여행이었기에 그 가족도 우리와 같은 숙소에 머물렀다. 그 집 세 남매는 큰아이가 중1이 아들이었고 그 아래 큰딸이 초등학교 5학년, 막내딸이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아이들은 보기 드물게 구김살 없고 서로서로 화목했다. 다섯 식구가 함께 여행을 온 가족이었는데 아빠가 아이들 챙기는 모습을 보니 세 아이의 얼굴이 특히 밝았던 이유를 알만했다. 아들 하나 딸 둘, 대개는 엄마가 주로 하는 일을 그 집은 아빠가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었다. 섭씨 37도 무더운 날씨다 보니 나와 딸아이도 물을 계속 달고 살았다. 그 집의 세 아이는 모처럼의 가족 여행으로 사방으로 뛰고 달리고 신나 보였다. 그 가족의 아빠도 아이들이 더위 먹을까 걱정되었는지 물병을 들고 연실 세 아이를 졸졸 따라다니며 시원한 물을 먹여주는데, 그 모습이 참 오래 기억에 남았다. 아빠는 큰아이인 아들부터 두 딸까지 나란히 줄 세워 놓고 입을 벌리게 하고는 마치 노랑 병아리 물을 먹이듯 물을 한 모금씩 정성껏 입에 넣어주고 삼키게 했다. 행복하게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물을 받아 마시는 세 아이를 보니 아빠의 그런 챙김이 늘 일상이었음이 한눈에 느껴졌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자 인생의 첫 스승이라는 말이 있다. 아이들은 부모가 입으로 하는 말보다 부모의 몸에 밴 행동을 먼저 보고 배운다. [사진 Pixabay]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자 인생의 첫 스승이라는 말이 있다. 아이들은 부모가 입으로 하는 말보다 부모의 몸에 밴 행동을 먼저 보고 배운다. [사진 Pixabay]

 
다음날은 공식 일정이 없었고, 숙소 야외 수영장에서 그들과 마주쳤다. 부모는 근처 시장에 갔다고 했고 세 아이는 숙소에 남아 텀벙거리며 물놀이 중이었다. 나와 딸아이도 함께 수영하며 더위를 식혔다. 잠시 후 그 집 맏이가 물놀이를 멈추고 두 여동생을 물 밖으로 불러냈다. 두 여동생은 오빠 말을 아주 잘 따랐다. 물 밖으로 나간 세 아이 행동을 우연히 본 나는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중학교 1학년이라는 그 아들아이는 요즘으로 봐도 아직 철없고 사춘기를 앞둬서 까칠할 나이다. 그런데 그 아이가 자신의 여동생 둘을 나란히 서게 하고는 하늘을 향해 병아리처럼 입을 벌리게 한 후 시원한 생수를 두 모금씩 천천히 마시게 하는 것이었다. 동생들이 생수를 삼키다 목으로 흘러내린 물을 자신의 손등으로 쓱 닦아주고 비치 수건을 어깨에 덮어주는 등 동생들을 챙기고 바라보는 얼굴에 오빠의 사랑이 철철 넘쳤다. 그것은 부모가 시켜서 억지로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몸에 깊이 배어 있고 묻어나는 손길이었고 지극한 동생 사랑이었다. 나는 속으로 ‘어쩜 저렇게 동생들을 잘 챙길까. 참 대견하고 잘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한참을 더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나는 어제 본 그 집 아빠의 행동이 아들에게서 똑같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았다. 그 아이는 부모가 자리를 비우면 자신이 어떻게 동생들을 안전하게 챙기고 보호해야 하는지 너무 잘 알았고, 그것이 행동에서 배어났다. 그런 오빠를 곁에 둔 두 동생은 부모가 잠시 자리를 비웠음에도 더없이 안전해 보였고 행복해 보였다. 그런 아이들 뒤에는 견고한 사랑과 믿음, 책임을 생활 속에서 보여준 건강한 부모가 있었다. 그 후로도 우리와 그 집 가족은 숙소를 마주하고 오가며 많은 대화를 했고 아이들과도 즐겁게 지냈다. 여행이 끝나고 인천공항에 함께 와서 서로 인사 나누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자 인생의 첫 스승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에서 자식 농사처럼 힘들고 어려운 것도 없다. 그러나 내가 본 세 아이의 미소를 보면 부모가 맑은 거울이 되고 첫 스승이 되어주면 충분히 가능한 것이었다. 아이들을 완성하는 것은 매일 반복되는 부모의 까칠한 잔소리만이 아니다. 일상에서 따뜻하게 전달된 반복된 부모의 손길이, 부모의 눈빛과 행동이 아이들을 만든다. 아이들은 부모가 입으로 하는 말보다 부모의 몸에 밴 행동을 먼저 보고 배운다. 아이들은, 어른이 아이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눈으로 보고 생각하고 느낀다. 다만 그 모든 것을 말로 다 표현할 줄 모르는 것뿐이다. 나의 두 아이는 장성해 이미 어른이 되었다. 나는 과연 내 두 아이에게 어떤 거울이었고 어떤 스승이었을까.
 
시인·소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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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 김명희 시인·소설가 필진

[김명희의 내가 본 희망과 절망] 희망과 절망은 한 몸이고, 동전의 양면이다. 누구는 절망의 조건이 많아도 끝까지 희망을 바라보고, 누구는 희망의 조건이 많아도 절망에 빠져 세상을 산다. 그대 마음은 지금 어느 쪽을 향해 있는가? 우리는 매 순간 무의식 속에 희망과 절망을 선택하며 살아간다. 그 선택은 눈금 하나 차이지만, 뒤따라오는 삶의 결과는 엄청나게 다르다. 희망도 습관이다. 절망을 극복하게 만드는 희망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최대 원동력이다. 그동안 길 위에서 본 무수한 절망과 희망을 들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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