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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서 오줌 누는 상관 싫으면…" 최초 여성 정치인의 일갈

중앙일보 2020.05.09 11:00

“앉아서 오줌 누는 사람 밑에서 일할 수 없다는 사람은 당장 사표를 써라. 나는 조국의 독립과 건국을 위해 남자 이상으로 활동해 왔다.”

최초의 여성 정치인으로 불리는 임영신 전 의원. [중앙포토]

최초의 여성 정치인으로 불리는 임영신 전 의원. [중앙포토]

 
최초의 여성 정치인으로 불리는 임영신 전 의원이 1948년 초대 상공부장관 임명 직후 남성 부하들에게 한 말이다. 그는 전례 없던 ‘여성 장관’을 무시하는 직원들에게 이처럼 단호한 일갈을 날렸다고 한다. “서서 오줌 누는 사람이 어떻게 앉아서 오줌 누는 사람에게 결재를 받느냐”고 말하는 불만 세력에게 ‘사표 권유’라는 초강수를 서슴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여성 국회의원의 등장

임 전 의원은 장관 임명 이듬해인 1949년 경북 안동을 보궐 선거에선 조선여자국민당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이후 여성의 국회 진출은 가까스로 명맥을 유지하며 조금씩 확대됐다.
 
박순천 전 의원은 1950년 2대 총선에서 임 전 의원에 이은 ‘2호 여성 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는 곧 지역구 4회, 비례(당시 전국구) 1회 당선 기록을 쓰며 최다선(5선) 여성 정치인에 등극했다. 지금까지 동점자가 여럿 나왔지만, 깨지지 않은 기록이다. 박 전 의원은 1963년 민주당, 1964년 민중당에서 당 대표(당시 총재)를 역임해 여성 정치인의 역사를 새로 쓴 인물로 평가받는다.
 
두 번째 여성 국회의원이자 최초의 여성 당 대표를 지낸 박순천 전 의원. [중앙포토]

두 번째 여성 국회의원이자 최초의 여성 당 대표를 지낸 박순천 전 의원. [중앙포토]

 

5명 중 1명…사상 최대

이달 말 출범하는 21대 국회 여성 당선인 규모는 57명(지역구 29명·비례 28명)으로 역대 최대다. 최초 여성 의원 탄생 후 71년만에 여성이 국회의 19%를 차지하는 중간 결실을 맺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정의당 내 여성 진출이 두드러진다. 당선인 6명 중 5명이 여성인데, 이 중 류호정 당선인은 최연소(27세) 여성 의원 타이틀을 달게 됐다.
 
21대 ‘맏언니’ 격인 최다선 여성 당선인은 더불어민주당 김상희·김영주 의원과 심상정 정의당 대표다. 나란히 4선 고지에 올랐는데, 이 중 김상희 의원이 21대 국회 전반기 국회부의장에 도전한다. 지금까지 전례가 없는 ‘여성 국회의장·부의장’ 벽을 깨기 위한 또 한 번의 도전이 시작됐다는 분석이다.
 
정치권에서는 여성 의원의 국회 진출 본격화 시점을 16대 총선(2000년)으로 본다. 이 때 사상 처음으로 ‘비례대표 30% 여성 할당 권고’ 조항이 생기면서 여성 의원 수가 20명을 넘어섰다. 이후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여성 할당이 제도화됐고, 비중 또한 50%까지 늘었다. 당시 39명으로 두 배 가까이 불어난 여성 의원은 18대(42명)·19대(47명)·20대(51명)·21대(57명)를 기록하며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
 

갖은 풍파에 아쉬움도

2015년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구치소에 수감되기 직전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한명숙 전 총리. [중앙포토]

2015년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구치소에 수감되기 직전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한명숙 전 총리. [중앙포토]

 
여성 정치인이 연루된 사건·사고 증가는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국회 내 여성의 역할이 커지면서 각종 풍파가 그들을 거쳐갔다. 여권에서는 2009·2010년 각각 대한통운과 한신건영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두 차례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 사례가 회자된다. ‘최초 여성 총리’ 타이틀이 화려했던 한편으로 한 전 총리의 정치 인생이 굴곡졌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대한통운 건은 3년여 만에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지만 한신건영으로부터 정치 자금을 수수한 혐의에 대해선 대법원이 징역 2년, 추징금 8억8300만원을 확정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정치적 시련이 더해졌다. 2012년 민주통합당 대표로 19대 총선을 총괄 지휘했던 한 전 총리는 당시 새누리당에 단독 과반을 내준 뒤 사실상 정계 은퇴 수순을 밟았다.
 
지난 2014년 ‘사상 첫 여성 원내대표’ 이름표를 달았던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역시 취임 147일만에 자리에서 물러나 아쉬움을 남겼다고 평가받는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에 올랐던 박 장관은 여야 협상 실패, 소통 부재 등 리더십 논란이 겹쳐 당 내 친노·86 그룹 등의 거센 비판 끝에 직을 내려놓았다.
 
30일 오후 국회운영위원장실에서 당시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대화를 나누던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손님을 만나러 잠시 자리를 비운 이 원내대표를 기다리다 운영위원장실을 나서고 있다. 박원내대표는 "협상이 결렬된것은 아니고 아직 진행중이라 중간에 말하기는 그렇다"며 입을 다물었다. [중앙포토]

30일 오후 국회운영위원장실에서 당시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대화를 나누던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손님을 만나러 잠시 자리를 비운 이 원내대표를 기다리다 운영위원장실을 나서고 있다. 박원내대표는 "협상이 결렬된것은 아니고 아직 진행중이라 중간에 말하기는 그렇다"며 입을 다물었다. [중앙포토]

 
21대 여성 당선인 일부가 겪는 논란·구설수는 현재진행형이다. 더불어시민단 양정숙 당선인은 부동산 실명제 위반·명의 신탁 위반 의혹 등으로 당에서 제명 처리된 뒤 맞고소 대응했다. 같은 당 윤미향 당선인에 대해선 시민단체 활동 당시 후원금 유용 및 한일 위안부 합의 사전 인지 의혹 등이 불거진 상태다.
 

더 평등한 국회를 위해

여성 의원이 늘었지만, 지역구에서 여전히 상대적 열세인 점은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21대 총선 비례대표의 경우 전체 47명 중 28명(59.6%)이 여성이지만, 지역구는 253명 중 29명(11.5%)에 그쳤다. ‘여성 할당제 의무 적용’이란 장치 없이는 여성이 여전히 정치권의 비주류, 소수라는 현실이 여실히 드러난다는 분석이다.
 
때문에 최근 국회에서는 “여성의 정치 진출 방법이 의무할당, 가산점 등 원초적 방식에 머물러선 안 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당사자 격인 여성 보좌진·당직자들 사이에서도 “제도적 배려 필요성을 무시할 순 없지만, 유능한 여성 정치인 양성 풍토 등 질적 개선이 병행돼야만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주를 이룬다.
 
더불어민주당 전국여성위원, 여성 국회의원들이 지난 3월 'N번방 사건 재발금지 3법' 20대 국회 통과와 해당자에 대한 처벌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전국여성위원, 여성 국회의원들이 지난 3월 'N번방 사건 재발금지 3법' 20대 국회 통과와 해당자에 대한 처벌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정치권에서는 아직도 1963년 당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비아냥거린 남성 의원들에게 “암탉이 낳은 병아리가 저렇게 꼬꼬댁거리니 키워서 쓰려면 아직도 멀었다”고 되받아쳤다는 박순천 전 의원의 말이 회자된다. 그가 남긴 다음 말이 이랬다고 한다. “나랏일이 급한데 암탉, 수탉은 가리지 말고 써야 한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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