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더오래]노후에 부부 둘만 살 단촐한 집, 정하셨나요?

중앙일보 2020.05.09 09:00

[더,오래] 박영재의 은퇴와 Jobs(69)

박현오(58)씨는 부인과 함께 주택청약통장 가입에 대해 의논했다. 박씨는 수도권에 5억원 상당의 99㎡형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데, 학교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딸(30)과 아들(28)이 있다. 아직 미혼이어서 박씨 부부와 함께 살고 있지만 몇 년 내에 결혼해 분가할 것이고, 그러면 박씨 부부가 굳이 넓은 아파트에 살 이유도 없고 5억원이라는 돈을 깔고 앉아있는 것도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노후수입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이 전부인데 아무리 검소한 생활을 한다 해도 부족한 감이 있다.
 
박씨 부부는 자녀 결혼 후에 살던 집을 정리하고 무주택 여건을 만들고 주변에서 전세로 살다가 노인들을 대상으로 분양하는 임대주택에 입주할 생각이다. 33㎡에서 50㎡ 안팎의 임대주택은 시설도 좋고, 입지도 괜찮은 곳이 많으며 주거비용에 대한 부담도 확 줄어든다. 이렇게 확보한 현금은 부족한 노후자금으로 활용할 생각이다. 친구들에게 이런 계획을 이야기하니 “아니 자녀나 손주들이 오면 하룻밤 자고 갈 방은 있어야 하고, 집에서 한 끼 식사라도 하려면 너무 좁지 않겠냐”고 한다.
 
1990년대 후반 분양가 자율화, 분양권 전매 허용, 저금리 상황으로 인해 주택가격이 크게 상승했다. 집은 자연스럽게 재테크 수단으로 인식되었고, 대출을 받아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시 되었다. [사진 pixabay]

1990년대 후반 분양가 자율화, 분양권 전매 허용, 저금리 상황으로 인해 주택가격이 크게 상승했다. 집은 자연스럽게 재테크 수단으로 인식되었고, 대출을 받아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시 되었다. [사진 pixabay]

 
그러나 선배들을 보면 자녀가 부모 집에 방문하는 것이 일 년에 많아야 두 세 번에 불과하고, 또 자녀가 왔을 때 굳이 집에서 재우는 것보다는 빨리 집으로 보내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것 같다. 만일 어쩔 수 없다면 집 근처의 고급스러운 호텔에서 재우는 것이 더 폼날 것 같다. 번거롭게 집에서 복작거리는 것보다는 집 근처의 맛집이나 찾아가서 식사하고 헤어지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비용은 더 들겠지만 쓸데없이 집을 가지고 있으면서 부담하는 관리비, 세금 등을 고려하면 이편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판단이다. 당장 실행할 것은 아니고 5년이나 10년 후의 일이지만 노후 계획은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의 중장년층의 부동산에 대한 사랑은 남다르다. 이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한 1980년대부터 베이비붐 세대의 사회 진출로 주택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었다. 1990년대 후반 분양가 자율화, 분양권 전매 허용, 저금리 상황으로 인해 주택가격이 크게 상승했다. 집은 자연스럽게 재테크 수단으로 인식되었고, 전세는 2년 단위로 이사를 해야 하는 계약 특성 때문에 주거 안정을 위해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시 되었다.
 
이러한 경험 때문인지 은퇴를 앞둔 50대 중장년은 내 집 소유의 애착이 크다. 다행인 것은 그동안 집값이 빠르게 오르면서 자산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이대로만 집값이 계속 오르면 노후에 큰 걱정은 없을 것 같고, 나중에 자식에게 꽤 많은 자산을 물려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자녀에게 자산을 상속하는 것도 좋지만, 대부분이 그럴 수 없는 현실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금융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50대 가구주는 4억 8000만원의 자산을 가지고 있으며, 이중 금융자산이 27%, 1억3000만원에 불과하다. 이 금액으로 30년 또는 40년간 노후생활비로 사용해야 한다. 아무래도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준비된 금융자산은 너무 부족하다. 결국은 어느 시점이 되면 가지고 있는 자산의 대부분인 부동산에 손을 댈 수밖에 없다.
 
본인이 원하는 노후생활을 보내기 위해서는 내 집을 소유하는 것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본인의 라이프스타일, 재무상황, 삶의 목적 등을 고려해 집을 줄이는 것에서부터 주택연금을 활용하고 거주지역을 바꾸거나 귀농·귀촌, 임대주택 활용, 실버타운 거주 등 다양한 주거형태의 대안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은퇴 후에 주거환경을 결정하는 것은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부부 중 일방의 생각만을 고집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가장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귀농·귀촌이다. 많은 중장년 남성들에게 귀농·귀촌은 일종의 로망이다. 하지만 부인은 다른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남편이 퇴직 후 고향으로 귀농하겠다고 하지만, 부인의 입장에서는 뒤늦게 나이 들어 시골로 가는 것도 부담스럽고 아는 사람도 없고, 불편한 것도 많기 때문에 싫다. 이런 이유로 혼자 귀농한 남성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미리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신중하고 사려 깊게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한국은퇴생활연구소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박영재 박영재 한국은퇴생활연구소 대표 필진

[박영재의 은퇴와 Jobs] 잘나가는 광고인이었다가 IMF때 35세에 강제로 잘려 일찌감치 백수생활을 경험했다. 이른 나이에 험한 꼴을 당한 뒤 월급쟁이에 염증을 느끼고 PC방 창업, 보험설계사 등 자영업 세계를 전전했다. 지금은 저술과 강의를 통해 은퇴의 노하우와 정보를 제공한다. 좋아하는, 평생 할 수 있는 일, 평생 현역으로 사는 방법을 모색해 본다.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