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사태 기한연장 ‘방역부실’ 비난 직면
6일에서 31일로 연장…경제·국민생활 불편
의사협회·언론, “늑장·아날로그·부실 방역”
검사 건수 개도국 수준, 의사 결정은 늑장
한·대만, 디지털 활용…일본 아날로그 행정
코로나 환자 받을 중환자 병상 미국 7분의1
황금연휴 뒤 확진자 감소해도 ‘착시’일 수도
아베 숙원인 개헌일정과 국민여론에도 영향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5월 1일 도쿄의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앞두고 마스크를 벗고 있다. 아베 총리가 지난 4일 코로나 19로 인한 전국 긴급사태 시한을 6일에서 31일로 연장하면서 그간의 코로나 대응 행정과 리더십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중 순풍에 구미 경재재개로 日 주가 2만 회복
둘째는 미국과 유럽에서 코로나19에 따른 봉쇄가 일부 해제돼 경제활동이 재개됐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선 이번 주말까지 40여 개 주에서 부분적이나마 경제활동을 재개하기로 했다. 유럽에서도 검사 강화,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 계속 유지 등을 조건으로 봉쇄령의 단계적 해제가 이뤄지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에서 가게들이 속속 문을 열고 최대 피해국인 스페인과 이탈리아도 5월 중 경제활동 재개를 앞두고 있다.

8일 일본 도쿄 주식시장의 니케이 지수가 이틀 연속 오름세를 계속해 2만 선을 회복했음을 보여주는 전광판 앞에 사람이 지나가고 있다. 미중 경쟁의 완화와 서구의 봉쇄 해재와 경제재개, 그리고 일본의 신규 확진자 감소에 따른 조기 정상화 기대감이 상승 요인으로 꼽힌다. EPA=연합뉴스
황금연휴 중 확진자 감소로 경제재개 기대
일본의 황금연휴는 2일 토요일을 시작으로 3일 헌법기념일, 4일 녹색의 날, 5일이 어린이의 날에 이어 6일 대체휴일까지 이어졌다. 노동절인 1일은 공휴일은 아니지만 직장에 따라 유급휴가를 주는 경우가 많다. 5~6일의 황금연휴다. 일본에선 이를 가리키는 오곤슈칸(黃金週刊)이라는 용어가 있지만, 보통 영어 골든 위크(Golden Week)의 일본식 발음인 ‘고루덴 위쿠’라고 말한다. 줄여서 GW로 쓴다. 4월 29일도 공휴일인 쇼와(昭和)의 날이라 만일 30일 휴가를 내고 1일 직장에서 유급휴가를 준다면 기술적으로는 최장 8일까지 쉬면서 코로나19로 인한 피로감을 풀 기회였다.

도쿄 거리에 떨어진 마스크..아베 정권은 일본 의사협회가 지난 4월 1일 긴급사태 선언을 제안했지만 4월 7일에서야 7개 지역에 이를 발령했으며 전국적인 조치는 4월 16일에야 했다. EPA=연합뉴스
아베, 긴급사태 해제를 6일에서 31일로 연장
아베 총리는 연장 이유에 대해 “감염자 감소가 충분한 수준이라고 할 수 없으며 의료현장의 어려운 상황이 개선되려면 1개월 정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감염자 감소가 충분한 수준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 일본 정부는 하루 신규 확진자 100명을 현행 의료체계가 코로나19 사태를 적절하게 관리할 수 있는 기본선으로 여겨왔다. 그 이상이면 의료체제를 압박해 환자를 제대로 돌볼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으로 우려해왔다.

황금연휴가 끝난 첫날인 지난 7일 아침 도쿄의 출근 행렬. 일본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감소로 이른 경제재개를 기대한다. AP=연합뉴스
연휴 뒤 신규 확진 감소는 착시효과 가능성도
사망자도 만만치 않게 나왔다. 5월 3일까지 직전 7일간 하루 평균 사망자는 23명이었는데 특히 바로 4일 역대 최대치인 하루 49명이 숨졌다. 연장을 발표한 5월 4일까지 일본에서 누적 확진자가 1만5058명에 이르렀으며 누적 사망자는 536명이었다. 일본에선 코로나19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면서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있었던 셈이다. 아베는 초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방역에 실패한 지도자’로 낙인찍히는 건 정치인으로서 엄청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황금연휴 기간과 끝난 직후의 신규 확진자 감소가 검사 감소로 인한 ‘착시효과’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일본 성마리아나 의대 부속병원 중환자 병동에서 한 의료인이 근무를 준비하고 잇다. 로이터=연합뉴스
일본 코로나 중환자 병상 비율 미국 7분의 1
그런데 문제는 중환자실 병상이다. 일본의 중환자실 병상은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히 적다. 인구 10만당 중환자 병상 수는 비교적 여유 있는 미국이 35개, 독일이 30개이고 코로나19 확산으로 중환자 병실 부족 사태를 겪었던 이탈리아가 12개인데 비해 일본은 불과 5개다. 코로나19가 확산해 확진자가 늘어난다면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개인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코로나19 중환자실에 근무 중인 일본 의료인.로이터=연합뉴스
일 의사협회, 꾸물거리는 아베 정권 질타
의사협회가 정부 당국에 문제를 지적하고 신속한 조치를 촉구해야 의사결정권자인 아베 총리와 관료조직이 뒤따라 움직이는 형국이다. 아베 정권은 정부의 긴급사태 선언도 지난 4월 1일 의사협회가 촉구한 지 1주일이 지난 4월 7일이 되어서야 7개 도부현을 대상으로 발령했을 뿐이다. 전국적인 긴급사태 선언은 다시 9일이 더 지난 4월 16일에애 내려졌다.

일본의 아베신조 총리(왼쪽)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지난 4일 도쿄의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니케이, ‘아날로그 행정이 발목’ 칼럼 1면 게재
이 칼럼은 일본 정부가 검사 확충도, 의료체제의 강화도 하지 않아 경제재개에 필요한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는 경직된 행정 시스템 때문이라고 질타했다. IT나 민간협력의 도입이라는, 21세기의 세계표준을 따르지 않고서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빅데이터와 스마트폰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대만과 한국을 예로 들었다. 대만은 건강보험 자료와 출입국 자료를 활용했으며 스마트폰으로 건강 상태를 감시했다. 한국은 인공지능 등을 활용해 검사를 대폭 확대하고 접촉자 관리에 스마트폰을 활용했다고 소개했다. 반면 일본은 보건소 직원이 전화로 환자에게 질문해 감염경로를 조사하다 보니 초기에 감염자가 급증했다. 검사는 하루 2만 건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

도쿄 시부야에서 한 여성이 마스크와 장갑, 그리고 비닐 보호복까지 착용한 채 건물 안에 들어오고 있다. EPA=연합뉴스
경제대국 日 검사자, 100만당 건수, 개도국 수준
563만인 싱가포르(17만5604건)나 보다 약간 많은 수준이다.
일본의 인구 100만당 검사 건수는 선진국이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다. 카리브 해에 있는 인구 9만6000의 미니국가인 앤티가 바부다(1562건)나 북아프리카에 있는 인구 3600만의 모로코(1587건), 139만이 사는 카리브 해의 섬나라 트리니다드 토바고(1593건)보다 적다. 88만이 거주하는 남태평양의 섬나라 피지(1450건)나 2160만이 사는 인도아대륙의 스리랑카(1426건)보다 약간 많은 정도다. 인구는 물론 경제 규모에서도 일본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나라들이다.

지난 4일 일본 도쿄의 한 편의점 전광판에 코로나19로 인한 긴급사태가 31일까지 연장됐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검사 데이터는 아베 정권의 방역 성적표
결국 아베 정권의 코로나19 행정은 검사 데이터에서 드러나는 아베 정권의 부실 방역, 의사협회의 질타에 뒤늦게 움직인 늑장 조치, 첨단기술 대신 관료주의에 짓눌린 아날로그 행정으로 요약할 수 있다. 아베 총리가 코로나19사태에 대한 정치적 추궁과 책임론에 시달릴 가능성이 커지는 이유다. 아베가 정치적으로 입지가 약해지면 본인이 추진해온 ‘전쟁할 수 있는 일본’으로 가는 개헌도 여의치 않을 수 있다.
집권 자민당은 올해 6월 17일까지 통상국회(정기국회) 기간 중 중의원과 참의원의 헌법심의회에서 개헌을 논의하고, 국민투표법 개정안을 심의한 뒤 헌법심의회에서 개헌안 등을 논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모든 일정이 멈춰서는 바람에 이 시간표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

8일 도쿄에서 마스크를 연 한 여성이 조화로 '싸워라'라는 응원구호를 만들어 적은 유리문 앞을 지나고 있다. AP=연합뉴스
아베 ‘개헌 시간표’ 코로나로 덜컹…시간 촉박
해를 넘겨 내년 1~6월의 통상 국회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내년 사반기에 맞춰 헌법심의회가 개헌안을 심의하고 국회에서 이를 발의해 국민투표를 거쳐 개정 헌법을 확정하고 시행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 7~9월엔 도쿄 올림픽과 패럴림픽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 세계의 코로나19 사정상 도쿄올림픽과 패럴림픽이 내년에 치를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기는 하다. 하지만 올림픽도 연기되는 상황에서 개헌 일정을 진행하는 건 아베 정권에 정치적으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황금연휴가 끝난 지난 7일 도쿄 거리에 사람들이 다시 돌아왔다. 방역에 주의해야 할 시기다. EPA=연합뉴스
아베 총리의 재임 기간 중에 개헌을 마무리하자고 주장하는 정당도 자민당과 유신회 정도다. 연립 여당인 공명당조차 어중간한 입장이다. 결국 아베 총리는 방역 학점을 제대로 받지 못한 데 이어 보수파의 지지를 확보하는 핵심이던 개헌에서도 일을 제대로 못 한다는 평가를 받게 될 상황이다. 그야말로 코로나19로 인해 정치적으로 사면초가의 상황에 처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비상상황은 국민이 지도자의 리더십을 재확인할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정치적인 명운은 어디까지일까.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