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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들 헌신으로 이번엔 코로나 간신히 진정시켰지만…

중앙선데이 2020.05.09 00:37 685호 2면 지면보기

나이팅게일 탄생 200년, 신경림 간호협회장

신경림 회장은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간호사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 을 보며 ’한국 간호사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신경림 회장은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간호사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 을 보며 ’한국 간호사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올해는 나이팅게일 탄생 200주년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을 세계 간호사와 조산사의 해로 지정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기승을 부리는 상황이라 의미가 더욱 깊다. 그 어느 때보다 간호사들의 공헌이 빛을 발하는 가운데 세계 간호사의 날(5월 12일)을 앞두고 있다. 현대 간호학의 창시자인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생일을 기념한 날이다.
 

피로 누적으로 감염되기도
21만 간호사, 2% 자원봉사자 앞장
신혼 새댁도 은퇴자들도 달려와

2차 유행 대비 전략
감염병 전담 인력 수시로 교육·훈련
갖가지 경험 모아 ‘간호백서’ 만들것

해결해야 할 숙제
신규 간호사 절반이 1년 내에 이직
근로 환경 개선, 합리적 보상 필요

간호사의 해, 간호사의 날을 앞두고 신경림 대한간호협회(이하 협회) 회장을 만났다.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코로나19에 맞서 싸운 간호사들을 이야기하며 신 회장은 애정과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는 “우리 간호사들이 국난 때마다 나섰다”고 말했다. 독립운동·한국전쟁 때도 간호사들이 현장을 지켰고, 1960~70년대 독일과 중동에 가서 외화벌이에도 앞장섰다. 신 회장은 “국가 위기 때마다 달려가 힘을 합쳤던 한국 간호사의 의기가 코로나19의 위기 상황에서도 아직 살아있다는 걸 느꼈다”고 강조했다. 이화여대 교수로 26년간 재직하다 지난해 정년퇴임한 신 회장은 앞서 세 차례 대한간호협회장을 역임한 데 이어 내년까지 네 번째 임기를 이어갈 예정이다.
  
12일 나이팅게일 생일 기념 ‘간호사의 날’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간호사들의 활약이 컸다.
“감염병과의 전쟁에서 간호사 역할의 중요성이 두드러졌다. 중환자실, 선별진료소, 확진자 병동, 생활치료센터 등 환자들이 있는 모든 곳에서 방호복을 입고 바이러스와 끝까지 싸웠다. 특히 간호사들의 자원봉사 물결은 감동 그 자체였다. 3월 한 달간 자원봉사에 지원한 간호사의 수는 3959명이었다. 전국의 의료현장에서 근무 중인 간호사 21만 명의 2% 정도에 해당하는 숫자다. 간호사 면허를 막 딴 20대 신입 간호사부터 은퇴 간호사, 신혼의 단꿈을 잠시 접고 달려온 간호사 등 사연도 다양하다. 한국의 코로나19 사태를 진정 국면으로 이끈 건 2%가 이룬 작은 기적이다.”
 
의료 현장에서 간호사들에게 가장 힘들었던 점.
“사태 초기에 마스크·체온계·방호복·음압기기 등 필수 장비의 부족으로 애를 먹었다. 처음에는 파견 간호사와 해당 지역 간호사의 일해 온 시스템이 달라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점도 있었다. 중앙 부처에서 간호사를 적재적소에 파견하는 노하우나 체계도 잡혀 있지 않아 혼선을 빚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적은 인력으로 많은 환자들을 돌보다 보니 피로가 누적되고 이로 인해 간호사까지 감염되는 사례가 나타나 가슴이 아팠다. 확진 판정을 받은 간호사는 스스로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 실정이다. 금전적으로나 명예 부분에서 적절한 보상이 필요하다.”
 
제2의 대유행을 막기 위해 지금 준비해야 할 것은.
“의사·간호사의 희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체제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임시방편일 뿐이다. 자원봉사로 파견된 의료 인력이 없었더라면 결코 성공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을 거다. 이런 상태라면 다음에 누가 또 자원해서 가겠나. 상시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감염병 전담 간호 인력을 육성해 수시로 교육과 훈련을 하고, 감염병이 발생하면 즉시 투입해야 한다. 특히 요양시설은 면역력이 낮은 환자들이 많아 감염병에 취약한데 대부분 감염병 전담 간호사가 없다. 공공 의료원들도 감염병 대응 체계를 상시적으로 갖추고, 간호사뿐 아니라 모든 직원들이 감염병 교육을 받게 해야 한다. 현재 있는 공공 의료원들과 적십자 병원들만 제대로 운영해도 감염병 대응력을 크게 높일 수 있다. 공공 의료 시스템을 키울 수 있는 지원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간호사들에게 필요한 대책은.
“합리적이고 공정한 보상 체계도 중요하다. 아무리 희생과 봉사 정신으로 시작했더라도 제대로 된 보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파견 인력과 현지 인력 간 처우의 차이도 문제다. 똑같이 집에 못 가고 쪽잠 자며 힘들게 일했는데 보상에 차이가 있어선 안 된다. 간호사들의 정신적 소진에 대한 지원 방안도 필요하다. 폐쇄 공간에서 이뤄지는 치료는 환자들도 힘들어하는데, 간호사들은 방호복까지 입고 들어가 힘들어 하는 환자를 돌봐야 한다. 이번에 협회는 정신과 근무 경력이 있는 전문가들이 상담해주는 제도를 만들었다. 간호사들의 정서적 안정을 위한 가이드북을 만들 생각이다. 또 이번 코로나 사태를 각자의 자리에서 경험한 여러 간호사들을 모아 워크샵을 할 계획이다. 병원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요양시설이나 폐쇄병동, 선별진료소 등에서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머리를 맞대 간호백서를 만들어보려고 한다. 정책간담회를 통해 정부와의 협력 체계 구축, 교육 프로그램 마련 등도 고민해나갈 계획이다.”
 
국민들이 의료진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덕분에 챌린지’도 나왔다. 시민들이 소셜미디어(SNS)에 응원 메시지와 함께 #덕분에캠페인 #덕분에챌린지 #의료진덕분에 등 3개 해시태그를 붙이는 캠페인이다.
“별 것 아닌 거 같지만 의료진들에게 심적으로 굉장히 힘이 된다. 생명을 살리고 있다는 뿌듯함이 앞으로 살아가면서도 뇌리에 남을 것이다. 국민들의 응원에 감사드린다. 지난달 7일 보건의 날에 문재인 대통령도 ‘간호사는 국민을 지키는 일등공신’이라고 언급해 큰 위로가 됐다. 아직 코로나19가 종식된 건 아니기 때문에 국민들이 일상에서 생활방역 수칙을 잘 따라줬으면 한다.”
  
복지부 산하에 간호정책 전담 부서 설치를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앞으로 협회가 해결해야 할 숙제는.
“간호사 근로 환경 개선이 첫 번째다. 우리나라 간호사들은 살인적인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이걸 개선하지 않고는 더 이상 간호사들이 견딜 수 없다. 의료법에 간호사 정원 기준이 분명히 정해져 있지만 이 법을 지키지 않아도 처벌이 미약하다. 사실상 대형병원을 제외하고는 법정 간호사 인력 기준을 준수하는 병원은 거의 없다. ‘벌금 내고 말지’라는 식이다. 우리나라 신규 간호사 증가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지만 실제 활동하는 간호사의 수는 OECD 평균의 3분의 1 수준이다. 신규 간호사의 절반 정도가 노동 강도를 버티지 못하고 1년 안에 이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해결하려면 1951년 제정된 의료법과 별도로 간호법을 만들고 보건복지부에 간호 정책을 전담하는 부서를 설치해야 한다. 간호 인력이 우리나라 전체 의료 인력의 67%를 차지하는데 전담 부서가 없다는 건 창피한 일이다. 지금은 간호정책 태스크포스(TF)팀이 임시 운영되고 있는데 이걸 정규 조직으로 만들어야 한다.”
 
70년 된 의료법 현실에 안 맞아…별도 ‘간호법’ 만들어야
간호법 제정은 간호사들의 숙원 사업이다. 70년 된 기존 의료법과는 별도로 독립적인 간호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1970년대부터 나오기 시작했지만 번번이 좌절됐다. 대한간호협회는 2013년부터 100만 대국민 서명운동을 펼치는 등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어내려는 노력도 기울였다. 지난해에는 ‘간호법’과 ‘간호·조산법’이 발의되기도 했지만 끝내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한 채 20대 국회가 회기 종료를 맞게 됐다.
 
신경림 대한간호협회 회장은 “간호법은 간호사만을 위한 법이 아니다”며 “국민의 건강 증진과 생명 안전을 위해 실정에 맞는 법과 제도가 반드시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급격히 늘어나는 노인 인구를 케어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 내 돌봄 시스템이 필수다. 앞으로 지역사회에서 돌봄 시스템을 마련하려면 간호사의 역할이 핵심이다. 하지만 현재 의료법의 틀 안에서는 손을 대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간호법 제정을 통해 간호사와 간호 보조 인력(간호조무사·요양보호사·간병사 등)의 역할과 체계를 법으로 명확하게 규정하는 일이 선행돼야 돌봄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게 신 회장의 진단이다. 실제로 최근 거론되고 있는 원격 의료에서도 환자를 직접 만나는 간호사의 전문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신 회장은 “일본·중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 등 아시아 주요 나라들에는 간호법이 다 있다”며 “늦었지만 우리나라도 빠르게 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한간호협회
1923년 조선간호부회로 발족해 1948년 지금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현재 회원 수는 44만여 명. 세월호 침몰 유가족을 위한 심리지원 봉사활동(2014), 강원도 산불 피해 주민을 대상으로 한 지원 활동(2019)과 같은 간호사들의 사회봉사를 돕는 한편, 한국 간호 역사를 발굴하고 간호 국제 교류를 추진해 왔다. 간호사들의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서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은혜 기자 choi.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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