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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의 빅피처] 하늘은 어떤 때 ‘말실수’ 정치인을 돕는가

중앙선데이 2020.05.09 00:30 685호 31면 지면보기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세상 만물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서로 닮았다. 좌파·우파, 진보·보수의 생각도 면밀히 따지고 보면 대동소이다. 모든 댓글인, 네티즌은 서로 극렬히 싸우는 것 같지만, 모두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잘 되기를 공통적으로 열망한다.
 

때로는 ‘전략적 말실수’도 필요한
‘악마적’ 정치 세계의 승자는 누구?
시대 정신 읽고 진정성 담아내야
정치라는 ‘화법 전쟁’의 승자된다

축구와 정치도 매우 유사하다. 축구와 정치는 경쟁이고 싸움이다. 많은 민족국가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정치 형태를 통해 성립됐다. 여러 아프리카 국가가 축구라는 전쟁을 통해 민족국가를 만들어가고 있다.
 
‘지지 않는 축구’ ‘수비형 축구’는 공격형 축구 못지않게 승률이 높지만 좀 답답하다. 아무래도 공격형 축구가 시원하다. ‘사이다’다.
 
‘이기는 게 장땡’이라는 판단에서 ‘침대 축구’나 ‘심판 매수’(정치의 세계에서는 부정 선거다)나 말꼬리 잡기에 탐닉하는 것은 좀 그렇다. (이번 총선에서 심각하고도 결정적인 부정은 없었다. 부정 주장은 보수를 망치는 ‘희망 고문’이다. 월터 미베인 교수의 논문을 모든 서구 언론이 외면하고 기사화하지 않았다. 왜냐? 선거부정 가능성이 0%기 때문이다.)
 
축구의 ‘슛’에 해당하는 것은 ‘말’이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을 수 있고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고기는 씹어야 맛, 말은 해야 맛”이라고 했다. 정치인·정치가는 국민·유권자를 향해 할 말을 한다. 그러다 보면 ‘막말 정치인’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
 
이번 미국 대선은 흥미롭다. 공화당 트럼프와 민주당 바이든은 설화(舌禍)·구설수(口舌數)로 치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들이다. 왜 그런지 몰라도 미국 공화당·민주당은 한국 민주당·통합당과 마찬가지로 여당복·야당복을 타고났다.
 
빅피처 5/9

빅피처 5/9

말실수·막말·실언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대권을 쥐고 어떤 이는 대권 1m 전에서 탈락한다. 어떤 규칙이 있을까. 진인사대천명이다. 진인사가 부족해 천명을 받지 못했다는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다.
 
정치의 세계는 일반인이 모르는, 정치부 기자도 모르는 오묘한 세계다. 정치의 세계는 천사적이면서도 악마적이다. 때로는 ‘전략적’ 실언이나 행동상의 실수도 필요하다. 실수가 자산이 될 수도 있다. 예컨대 어떤 사례가 있을까.
 
대표적인 예로 김대중이 있다. 대체로 진보 그리스도교 신학에 관심이 많았던 김대중은 예수를 믿는 다른 것은 예수의 형제·자매가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한때 ‘예수 동생 김대중’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김대중은 또한 “민주주의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 토머스 페인을 인용했다. 많은 국민·유권자가 ‘김대중=빨갱이=피’라는 등식을 받아들이는 상황에서 왜 DJ는 굳이 토머스 페인을 인용했을까. 아마도 할 말은 해야 할 필요성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김대중의 후계자인 노무현도 ‘이상한’ 말을 했다. 노무현은 굳이 “반미면 어때”라고 말했다 “반미면 어때”라고 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노무현 대통령은 결코 반미 지도자가 아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신호만 좌회전하고 실제로는 항상 우회전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노무현 대통령만한 친미 국가지도자가 과연 있었을까.
 
"반미면 어때”에 이어 "사회주의자면 어때”라는 말로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는 사람도 나올 것 같다. 가장 근접한 인물로는 조국이 있다. 그는 자신이 ‘자유주의자이자 사회주의자’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버니 샌더스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많은 이들에게 잔잔한 영감을 주었다. 언젠가는 미국에서나 대한민국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자’가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아직은 아닌 듯. 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민중은 정치인들보다 훨씬 진보적이면서도 동시에 훨씬 보수적이다. 민중의 마음을 읽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
 
민중은 배신을 사랑한다. 민중은 배신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전임 대통령을 ‘배신’했다. ‘상당히 위대한’ 전두환은 노태우에게 자신을 밟고 가라고 했다. 현재 최고 유력 차기 대통령 후보인 이낙연을 비롯해 차기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들은 문재인을 ‘배신’해야 한다. ‘배신’의 또 다른 이름은 극복이요 발전이다.
 
이낙연의 언사를 모니터링해보면 그는 이미 문재인을 아주 아름답게 ‘배신’하고 있다. 미묘하고도 극명한 메시지의 차이가 있다. 홍준표나 안철수 못지않게 이낙연은 시대 고민과 시대 정신을 항상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호남은 ‘적자’인 김대중에 이어 ‘양자’로 노무현·문재인 정권을 창출했다. 이낙연은 뜨거운 감자요 유혹이다. 이낙연을 합당한 명분 없이 무력화시키는 것은 그래서 굉장히 어려울 것 같다. 현재로서는 이낙연의 ‘까칠 화법’ ‘미꾸라지 미끈미끈 화법’을 제대로 대적할 주자가 보이지 않는다. ‘이낙연 vs 이재명’은 그림이 좀 된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보수·우파기 충분히 대비하면 충분히 승자가 될 수 있다. 홍준표·김세연을 비롯해 우리 보수·야권의 진용도 충분히 해볼 만 하다,
 
좌파·우파와 진보·보수가 튼튼해야 국민이 편하다. 대체로 우리 국민·유권자는 당분간은 편하게 잠 잘 수 있는 듯.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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