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허용 오차가 0이 되면 인간은 행복할까

중앙선데이 2020.05.09 00:20 685호 20면 지면보기
완벽주의자들

완벽주의자들

완벽주의자들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인류 발전 이끌어온 ‘호모 파베르’
정밀한 물건 제작에 ‘피·땀·눈물’

자동차·제트기·망원경 등 발전사
저널리스트 감성 담긴 묘사 돋보여

공경희 옮김
북라이프
 
인류 발전의 원인 중 하나가 ‘도구의 인간(Homo Faber)’들 덕분이라고 할 때, 그중에는 더 정밀한 도구를 만들려고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사람들에 대한 얘기다.
 
런던에서 태어나 옥스퍼드대에서 지질학을 공부한 뒤 가디언에서 기자로도 활약했던 저자는 “정밀성(Precision)의 역사를 다룬 책을 집필해달라”는 의뢰를 수락한 이유로 어린 시절 정밀 공학자였던 아버지가 보여준 ‘마법의 물건’을 꼽는다. 자석도 아닌데 서로 딱 달라붙어 절대 뗄 수 없었던, 하지만 슬쩍 비틀자 감쪽같이 분리됐던 쇳덩어리 두 개. ‘계측의 거장’으로 불리던 스웨덴 발명가 카를 에드바르 요한슨이 만든 ‘요 블록’이었다. 완벽하게 평평했기에 두 조각을 붙이면 표면의 분자가 결합되어 떼어지지 않았던, 사물을 오차 없이 측정하는 도구였다.
 
이 ‘완전한 평평함’은 정밀성을 설명하는 아주 중요한 개념인데, 작업대가 정확히 수평이고 완벽하게 딱 맞는 구조를 갖고 있지 않으면 정확한 공작 기계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류가 처음 만든 정밀한 도구는 지중해 바닷속에서 발견된 ‘안티키테라 기계’라고 들려준다. 기원전 2세기 무렵 그리스의 무명 공예가가 만든 이 ‘작품’은 큰 기어의 톱니만 223개에 달하는 일종의 시계였다.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 직경이 7.3m가 넘는 이 기구는 지구에서 160만 ㎞ 떨어진 거리에서 우주의 경계 를 들여다보게 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주고 있다. [사진 북라이프]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 직경이 7.3m가 넘는 이 기구는 지구에서 160만 ㎞ 떨어진 거리에서 우주의 경계 를 들여다보게 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주고 있다. [사진 북라이프]

15세기 이후 해운업이 발달하면서 망망대해에서 배의 위치와 승선지의 시각을 정밀하게 알려줄 시계가 필요해졌는데, 요크셔 출신의 존 해리슨은 항해용 정밀시계의 원형을 만든 사람이다. 저자는 해리슨 시계가 영국에서 발명되었고 뒤이어 나온 시계들도 영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덕분에 영국이 한 세기 이상 세계 바다의 통치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정밀한 시계가 정밀한 항해를 가능하게 했고, 정밀한 항해는 해양 지식, 통치, 권력을 창출했다.”
 
제임스 와트가 증기 기관을 만들어 산업혁명의 기수로 부상한 배경에는 ‘철 미치광이’로 불리던 존 윌킨슨의 정교한 ‘철 구멍 뚫기’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라거나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의 히어로인 조지프 휘트워스가 표준화된 나사와 허용 오차 100만분의 1인치인 계측 기계를 만들어낸 과정은 기계 공학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장인들의 수작업으로 만들어내는 최고급 자동차 브랜드 롤스로이스에 관한 얘기도 눈길을 끈다. 차를 만든 사람은 헨리 로이스, 마케팅을 맡은 사람은 찰스 롤스였기에 ‘로이스롤스’로 해야 했겠으나, 기계에 대한 자부심이 높던 로이스가 이름 순서에 연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귀띔이다. 로이스는 기중기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어떤 압력을 받아도 최고 품질의 기계를 만들겠다는 결연한 각오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비용을 절감하거나 품질 수준을 낮추려 하지 않았다는 설명은 ‘명품은 어떻게 탄생되었나’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자동차왕 헨리 포드가 모델 T를 대량생산하며 대성공을 거둔 배경도 재미있다. 자동차의 모든 부품을 정확한 규격에 맞춰 놓아 바로 조립이 가능했기 때문인데,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요한손의 ‘요 블록’ 역할이 컸다.
 
이밖에 제트 엔진을 만든 프랭크 휘틀의 7전 8기 성공기, 에른스트 라이츠가 라이카 카메라를 통해 보여준 초정밀 렌즈 발달사, 허블 망원경의 끔찍한 실패와 정밀 공학의 한계에 도전하는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이야기 역시 한계 오차 0에 도전하는 인류의 노력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마지막 섹션에서 저자는 “과도한 정밀성이 오히려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묻는다. 기계적 정확성이 인간이 가진 어떤 요소를 무가치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다. 무엇을 위한 ‘호모 파베르’인지 묻는 이 질문이야말로 이 책이 일반적인 과학기술서와 차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숫자와 도면에 익숙하지 않은 ‘문과생’들도 책장을 덮지 않고 잘 따라올 수 있도록 저널리스트적 감성을 십분 살린 생생한 묘사를 내세웠다는 것도 이 책의 강점이다.
 
정형모 전문기자/중앙 컬처앤라이프스타일랩 hyung@joongang.co.kr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