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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에서 만난 불안한 영혼들

중앙선데이 2020.05.09 00:20 685호 21면 지면보기
플로리다

플로리다

플로리다
로런 그로프 지음
정연희 옮김
문학동네
 
미국 남동쪽 끝자락에 자리한 플로리다주는 세계적 관광지이긴 하지만 그곳에서의 일상생활은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에겐 낯설다. 로런 그로프의 단편소설 11편을 묶은 『플로리다』는 제목 그대로 플로리다를 직·간접적인 배경으로 한 스토리 모음집이다. 그로프가 12년 동안 플로리다에 거주하면서 쓴 작품들이다. 그의 단편소설들을 통해 우리는 그들의 삶과 작가의 인간관, 세계관, 자연관 나아가 우주관을 엿볼 수 있다.
 
『플로리다』의 단편소설들은 플로리다라는 공간적 배경뿐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닮은 점을 갖고 있다. 소설집은 삶과 죽음, 생사의 경계, 생명의 불확실성,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 사이의 경계, 폭력과 구원, 진실의 역할, 모성과 인류애, 선과 악, 불안과 공포, 안전과 돌봄, 부재와 고립 등 많은 주제를 공통으로 다루고 있다. 인간의 관점뿐 아니라 모든 생물, 심지어 집과 같은 무생물, 달이나 바다와 같은 자연물의 관점에서 광활한 우주를 탐험한다. 자연현상과 생명과 물질에 대해 품게 되는 경외감이 곳곳에서 배어난다. 이곳에서의 경이로운 체험과 관찰을 통해 사고가 우주적으로 확장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동네 산책길에서도 뱀이나 도마뱀, 앨리게이터 같은 파충류를 거의 매일 만날 수 있고 온갖 동식물이 눈길을 붙잡는 플로리다에서도 인간은 늘 가슴 속 깊이 불안을 안고 있는 존재다.
 
코로나 사태로 인적이 끊긴 플로리다 키 웨스트 하버의 지난달 모습. [AP=연합뉴스]

코로나 사태로 인적이 끊긴 플로리다 키 웨스트 하버의 지난달 모습. [AP=연합뉴스]

“비 올 때 만난 작은 싱크홀이 무섭다. 그것은 훨씬 더 큰 싱크홀로 들어가는 두려운 첫걸음일 것이다. 싱크홀에 빗방울이 모이지 않는다. 그것은 물이 그 아래 작은 균열을 통해 똑똑 흘러든다는 말이고, 물이 빠져나갈 통로가 있다는 말이며, 거기 구멍이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들도 무섭다. 아이들은 이미 이 세상에 왔기에 그녀는 가능한 한 이곳에 오래 머물러야 할 텐데, 그래도 아이들보다 더 오래 머물 수는 없기 때문이다.”(‘꽃 사냥꾼’)
 
‘유령과 공허’에서 주인공은 “내 특별하고 어둡고 가시 같은 불안” 때문에 매일 밤 산책을 하러 나가지만 거리 자체도 강간 사건이 일어났고 언제라도 폭력이 발생할 수 있는 불안한 곳이다.
 
“이 땅엔 살아 있는 멍청이들과 불안정한 영혼들이 가득하고 이 영혼들은 시끄럽고 불행해서 이 장소를 악으로 채우며 그 영혼들은 죽은 스페인 선교사들, 뱀에 물려 죽은 세미놀족, 굶어 죽은 크래커들로 이루어져 있다.”(‘위와 아래’)
 
불안이 우리의 영혼을 잠식하기 때문에 우리는 안전하게 숨을 수 있는 무엇을 갈망한다. 하지만 그 무엇도 우리를 채워 줄 수는 없다. “너는 너무 지나치다 싶을 만큼 인류를 사랑해. 하지만 사람들은 늘 너를 실망시키지.” “누군가가 너희를 구해 주기를 기다리는 건 그만둬. 인류는 저 자신도 구원하지 못해.”(‘꽃 사냥꾼’)
 
작중 인물들은 거의 혼자다. 우주의 한 존재에 불과하다. 달도 바다도 우리에게 연민의 정을 품어 주지 않는다. 시간은 우리가 떨어져 나가도 상관하지 않는다. 각자도생의 답을 찾는 여정이 인생이다.
 
소설집 『플로리다』의 단편들은 산문이라기보다는 시어들로 가득 차 있다. 언어의 마술사가 그려 내는 맛있고 화려하면서도 디테일이 살아 있는 표현력은 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켜 준다. 그러면서도 문득문득 작가가 던지는 깊은 질문은 사색에 푹 빠지게 한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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